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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탄식
leed2017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위는 한국의 데카당(decadent) 시인 손로원의 탄식에 불세출의 작곡가 박시춘이 멜로디를 달고 가희(歌姬) 백설희의 고운 목소리로 음반에 담은 <봄날은 간다>의 첫 번째 절이다. 내가 한국 E 여자대학교에 있을 때였던가. 시(詩) 계간지 <시인 세계>가 전국의 내노라하는 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봄날은 간다>가 애창곡 가사로 가장 많은 지명을 받았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대한 것은 대학교 때였지 싶다. 그러나 이 노래는 주인을 잘못 만났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애상적이고 섬세한 것에는 무조건 고개를 돌리는 것이 사나이의 예의라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가정을 버리고 평생을 돌아다니다가 70고개를 넘자 그제서야 슬며시 본처에게 돌아온 난봉꾼마냥 내가 이 노래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 것은 세월이 흘러 내 머리에 흰 머리칼이 부쩍 늘어난 때부터였지 싶다.


 어머님의 가사(歌辭)에 자주 나오는 문구 "슬프다 나의 연광(年光) 일흔이 넘었구나. "처럼 이제 내 연광도 일흔이 넘었으니 꽃이 피었다고 웃을 일도, 꽃이 졌다고 울 일도 없는 감정적으로 무뎌진 하루하루가 아닌가.


 봄이 왔다. 봄은 오면 가는 것을 먼저 걱정하는 계절. 내가 알기로는 여름이나 가을, 겨울이 가는 것을 슬퍼하는 시를 남긴 시인은 없다. 그러나 봄이 가는 것을 탄식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노래한 시인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리만큼 많다. 봄을 여읜 슬픔을 가장 애절하게 노래한 시인은 남쪽 훈픙이 불어오면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남보다 먼저 보내오는 전라도 강진 땅에서 태어난 영랑(永郞) 김윤식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이 찬란한 슬픔의 봄 시심(詩心)에 이르기까지는 당시 신문학의 요람 휘문의숙에 입학하여 박종화, 홍사용, 정지용, 이태준같은 뒷날 문단의 큰 별이 된 선후배들의 영향이 컸지 않을까.


 ‘간밤 비에 피어서/아침 바람에 지누나/가련다 한 봄 일이/풍우 속에 오가네’ (和開昨夜雨 . ?來風雨中)


 비바람에 꽃이 피고 지고는 한 해가 후딱 지나가버린다고 세월무정을 노래한 조선 중기의 문신 운곡(雲谷) 송한필의 탄식이다. 아마도 운곡의 비바람이란 실제 비와 바람이라기보다는 남을 모략중상으로 얽어매어 사화(士禍)를 꾸민 주인공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 당나라 때 우무릉이란 시인은 <권주가> 한 수로 비바람에 흩어지는 꽃잎을 인생 별리(別離)에 빗대어 한숨지었다.


 ‘그대에게 황금의 술장으로 권하니/이 술을 사양 말고 들게/꽃이 비바람에 흩날리니/인생도 만나면 헤어지는 것’ (勸君金屈? . 人生足別離)


 아무리 좀 더 있다 가라고 울며불며 매달려도 봄은 연자방아처럼 한바퀴 빙 돌아서 왔다가는 가고, 갔다가는 다시 오는 것이다.


 봄이 오면 고등학교 고문(古文) 시간에 배운 두시언해의 주인공, 천추만대의 시성(詩聖) 두보의 <춘망(春望)>을 잊을 수 없다.


 ‘나라는 망하였으나 산과 강은 그대로 있고/봄이 찾아온 성에는 풀과 나무만 깊었구나’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


 안록산의 난 때문에 촉으로 피란을 간 당나라 임금 현종이나 정처 없이 떠다니던 시인 두보도 수 백리에 뻗친 피난민의 대열과 쑥대밭이 된 수도 장안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어찌 전쟁의 슬픔을 아니 느낄 수 있었으랴.


 봄이 오면 생각나는 것은 춘원(春遠) 이광수의 <할미꽃>이다. 늦봄 농촌의 서정과 인생유전을 콧등이 시큰할 정도로 서럽게 묘사한 시(詩)가 곧 <할미꽃>이 아닌가.


 ‘보리밭 가에/찌그러진 무덤-/그는 저 찌그러진 집에/살던 이의 무덤인가/할미꽃 한 송이/고개를 숙였고나/아아 그가 살던 밭에/아아 그가 사랑턴 보리/푸르고 누르고/끝없는 봄이 다녀 갔고나/이 봄에도/보리는 푸르고 할미꽃 피니/그의 손자 손녀의 손에/나물 캐는 흙 묻은 식칼이 들렸고나/그 변함없는 농촌의 봄이여/끝없는, 흐르는 인생이여’


 옛날 어렸렸을 때 어른들이 봄을 탄식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때는 왜 그런 탄식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제는 알겠구나. 모든 생물이 다시 살아나는 봄의 향기에 뒤따라 온 무너져버린 자기의 청춘에 대한 회한(悔恨) 때문이란 것을! 달이 두세 번 차고 기울다 보면 어느덧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 (201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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