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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
leed2017

 

 둘째 아이가 집에 있을 때 쓰던 방에는 우연한 기회에 토론토 K 화랑에 들렀다가 눈에 띄어 집어 들고 온 다음과 같은 흘림으로 쓴 대련(對聯) 한 폭이 걸려 있다. "得好友來如對月 有奇書讀勝看花 (좋은 벗이 있어서 나를 보러 오는 것은 밝은 달을 대하는 것 같고, 좋은 책이 있어서 읽는 것은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보다 낫다)."


 이 글씨는 토론토에 사는 C 선생이 썼다. C 선생은 S대 법대를 나와서 외교관직에 오래 몸담았다가 벌써 오래전에 은퇴를 하고 지금은 "靑春扶社稷, 白首臥江湖 (젊어서는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늙어서는 한가로이 강호에 누워있네)"의 유유자적한 만년을 즐기고 있는 어른이다.


 속기(俗氣)를 벗어나려는 욕심은 서예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붓[筆]을 드는 사람들의 공통된 염원이다. C 선생의 글씨는 정통 서법(書法)을 익힌 것은 아니지만 기운차고 완숙한 노필(老筆)은 탈속(脫俗)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나는 그의 글씨를 무척 좋아한다.


 내가 C 선생의 글씨를 벽에 걸 때는 그 시구의 작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몰랐다. 그런데 몇 주 전에 시조 시인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의 수필집 [차(茶) 한 잔의 갈증]을 읽다가 우연히 그 작가가 청나라 초기의 기구(紀?)라는 사람의 대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기구는 누구인가? 내 서가에 꽂혀 있는 한(漢) 시집들은 한결같이 두보(杜甫)나 소식(蘇軾) 같은 당송(唐宋) 대의 작가를 소개한 것들이어서 기구의 이름은 눈에 띄질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타향살이하는 불편을 뼛속까지 겪는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한국에 있었으면 기구가 누구인가 하는 정도는 그 방면에 '석학' 친구들에게 물어보든지, 아니면 도서관이나 가까운 서점에 가서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여기는 타향, 이 방면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드물뿐더러 설사 있다 해도 그를 찾아내는 것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런저런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객지에서 수필을 쓰는 것도 고국을 떠난 지가 오래돼서 시어(詩語) 잊어버린 시인이 시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의 고통스러운일이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세월에 시정(詩情)을 싣고]라는 제목으로 옛시조에 얽힌 이야기를 신문에 연재한 적이 있다. 옛글 시간처럼 옛시조를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하려고 문법적인 해석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 시조에 얽힌 역사적 배경이나 일화를 야사(野史) 형식으로 설명하는 그런 흥미 위주의 글이었다.


 그런데 어느 특정 시조 작가에 대한 나고 죽은 연대같이 별것 아닌 것도(별것 아니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참고하는 대여섯 권의 책마다 서로 다르게 적혀 있을 때가 있어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어떤 책은 어느 시조 작가가 63세에, 또 어떤 책은 59세에, 64세에 죽었다고 제각기 다르게 적혀있으니 도대체 어느 것이 옳다는 것인지, 평균치를 낼 수도 없는 일이라 난감할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나서 죽은 연대같이 비교적 사소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느 시조의 작가가 A도 되고 B도 된다는 기록에는 놀랄 수밖에 없다. 예로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 하는 시조는 나는 어려서 정몽주의 어머니 이씨가 그의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지은 노래로 배웠다. 


 그러나 어떤 책에는 이 시조의 작가가 정몽주의 어머니로 되어 있으나 또 다른 책에는 김정구나 이정구로, 혹은 작자 미상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작자가 모두 넷이라는 말이다. 이런 경우는 한국에 있었으면 좀 더 권위 있는 답을 얻으려고 애라도 써볼 수가 있었을 것이나 이러한 자료의 황무지인 북미대륙에서는 별도리가 없는 것이다.


 기구(紀?)에 대해서는 다른 대학의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몇 해 전 한국 어느 서점에서 [중국 대표 시선]인가 하는 두툼한 책이 눈에 띄길래 들었다 놨다 하다가 돌아오는 짐 보따리가 무거워질까봐 겁이 나서 놓고 온 적이 있는데 그것이 지금에 와서 이처럼 큰 후회가 될 줄이야!


 할 수 없어서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다 한들 내가 급하지 부탁받은 제가 급할까, 자료를 찾아 복사하고, FAX로 보내는 것도 여간한 수고가 아닐 것이니 적어도 두세 달은 기다려야 하지 싶다. 그러나 기구의 14자 대련만큼은 내 벗이 된 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 (19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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