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5 전체: 18,573 )
사진
leed2017

 

 벌써 10년이 넘었다. 큰누나가 당신이 가지고 있던 내 얼굴이 들어가 있는 사진을 모두 나한테 되돌려 보냈다. 서른 장은 될까? 그 사진 뭉치는 우리 부부가 아이들과 노는 장면, 식구 생일날 찍은 것 등 캐나다에 살 때 우리가 사는 모습을 한국에 있는 큰누나에게 알리는 것들이었다. "갈 날이 머지않은 사람이 사진을 가져 뭘하노, 다 주인한테 돌려줘야지.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할 때다."는 요지의 설명까지 붙이셨다. 분명한 기억은 나지 않으나 그때 누나 나이 일흔 살은 훨씬 넘었지 싶다.


 언제부터인지 나도 사진기 앞에 서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요사이는 누가 사진 찍자고 팔을 잡아끌기 전에는 카메라 앞에 좀처럼 서질 않는다. 2004년 여름에 학생들과 미국 심리학회에 참석하느라 호놀룰루에 간 적이 있다. 학생들은 공항에서부터 발 한짝 떼어 놓을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나도 들어오라고 하도 성화를 하길래 그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카메라 앞에 선 적이 여러 번 있다.


 하와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는 내가 들어간 사진이 모두 30장은 넘었지 싶다. 꽃다운 청춘, 추억을 남기고 싶은 나이다. 학생들이 처음 밟는 하와이 땅, 그들에게는 보는 것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이요,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런 추억의 장면을 한 장의 사진에 '영원히' 담고 싶은 욕망이 왜 없을까.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영원이란 것도 기껏해야 6, 70년을 넘지 못하는 영원인 것을. 나는 학생들의 젊음을 몹시 부러워한다. 어떤 때는 학생들 행동을 보면 '아니, 꼭 그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게 바로 젊음의 특권인데. '를 생각하면 이내 풀이 죽고 만다.


 우리 집에는 100년 세월이 흘러 색깔이 누렇게 바랜 사진 한 장이 있다. 그 사진에는 20대의 한 젊은이가 사냥총을 어깨에 메고 있고 그 옆에는 사냥 몰이꾼 서너 사람과 그날 사냥한 멧돼지 한 마리가 있다. 사냥총을 멘 젊은이는 나의 아버님이다. 사냥한 멧돼지를 '영원한' 기념으로 남기려는 사진이었을 것으로 우리 집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진 중의 하나이다.


 큰누나는 당신 얼굴이 있는 사진도 버리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사진 찍는다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 않다는 말뿐이다. 그러니 아직까지 찍은 사진은 정성스럽게 보관한다. 언제고 나도 누나처럼 가지고 있는 사진 모두를 버리고 싶을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지금부터 한 5, 6년이 지나면 그때일까?


 1966년 9월 12일, 이날은 내가 유학을 떠나기 하루 전이요, 아내의 생일임과 동시에 우리의 약혼 날이기도 했다. 그날 우리는 을지로 입구에 있는 어느 양식집에서 약혼식을 마치고 길 건너 사진관에 가서(허바허바 였던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그 약혼 사진을 노트장 만하게 확대해서 침실 벽에 걸어두고 아침저녁 들여다본다. 내 머리 스타일, 넥타이에는 촌티가 줄줄 흐르지만, 얼굴은 활짝 피어난 청춘이다. 만일 그때 이 기념사진을 찍질 않았더라면 오늘 무엇이 남아있을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상황을 기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이란 것이 결혼식이나 첫아기의 돌잔치 같은 것도 있고 '내가 언제 이런 장소에 있었던가?' 할 정도로 자신은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고 나서야 '아, 그때. ' 를 회상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을 찍고 난 그 순간부터 그 상황에 얽힌 사연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사진기 앞에 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먼길을 떠나는 연인에게 포옹하는 것이 관례라고 해서 마음에도 없는 포옹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결혼 피로연에서도 신랑신부가 함께 사회자는 술잔을 치켜들고 "축배"를 외치는데 결혼식에 온 손님들은 술은커녕 술잔도 없을 때가 많다. 코카콜라나 따라 마시는 빈 종이컵을 들고 소리치는 그야말로 텅 빈 축배다. 기억에 남는,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결혼은 이렇게 사진 찍기 위한 행사로 시작되어 사진 찍기 위한 행사로 끝나는 것이다.


 추억 속에서 사는 사람보다는 추억을 남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오늘도 침실 벽에 걸린 38년 전의 약혼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의 정(鄭)양이 오늘의 정 씨 할머니가 되었고 촌티나던 내 머리에 백발이 왔다. 세월. , 그것이 한 짓이다. (2004.11)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