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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고향의 봄’
leed2017

 

 해외에 사는 동포 여러분들의 협조를 바라면서 펜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새벽,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긴 밤입니다. 


 협조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 해외동포들이 애국가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이원수 노랫말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로 시작되는 [고향의 봄]이 작곡자가 친일했고 또 학생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뺐다는 것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로 시작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 윤극영의 [반달]도 마찬가지 이유로 뺐다는 것입니다.


 망년회만 되면 손에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 노래를 부르는 동포 여러분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글을 씁니다. 사실을 좀 더 자세하게 적겠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고향의 봄]을 홍난파가 친일했고 학생들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에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뺐대. " "일부 미친놈들의 의견이지 설마 뺐을라고, 애국가는 어디 아이들 정서에 맞아서 부르나. " "아니 뺐다고 하던데. " 다음날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초등학교 C 교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C 교감은 최근 한국 아동 음악상 본상을 탄 어른입니다. C 교감의 말이 '그게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믿기지 않아 나와 친하게 지내는 청주교육대학의 P교수에 물어보았더니 P 교수의 답이 '그 말이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 요사이는 흘러간 동요를 빼고 최근에 곡을 붙인 용감하고(북한을 닮았는가?) 명랑한 최근 창작동요를 집어넣는 게 유행인 데다가 홍난파는 친일 음악가인 데다 [고향의 봄]이 아이들 정서와 잘 맞지 않아서 빼게 된 것이랍니다."


 나는 [고향의 봄]과 [반달]을 뺐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 모욕을 당한 것처럼 분노를 느낍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을까. 나는 이제 믿는 것은 해외에 사는 우리 동포들뿐입니다. [고향의 봄]을 당장 초등학교 교과서에 다시 집어넣어 달라는 탄원서를 보내자는 것입니다. 분명 버스 지나간 뒤에 손드는 격이지만 교통순경이 버스가 승객을 놓고 간 사실을 알면 버스 운전사에게 돌아가서 승객을 태우고 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도저히 [고향의 봄]이나 [반달]을 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세한 이유는 여기 쓰기에는 글의 내용이 지루해질 것 같아 여기에 쓰지는 않겠습니다. 이 [고향의 봄]이나 [반달] 작곡자가 친일했다고 빼면 춘원의 [유정] [사랑의 죄]도 빼야 할 것입니다. 육당의 [독립 선언서]도 학생들이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친일하지 않은 시인, 친일하지 않은 소설가, 친일하지 않은 화가, 친일하지 않은 동요 작곡가의 노래가 어느 것인지 가르쳐 주어야지요. 백범 말마따나 일제 당시 이 땅에 사는 2천만 동포가 다 친일했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물리학을 얘기하며 아인슈타인을 뺄 수 없으며 낭만파 음악을 얘기하며 베토벤을 뺄 수 없고 인상파 그림을 얘기하며 모네를 뺄 수 없습니다. 이 [고향의 봄]이나 [반달] 같은 노래는 우리 민족과 같이 울고 같이 웃고 한 노래이지 않습니까? 어느 노래를 초등학교 교과서에 넣고 안 넣고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학생 정서와 맞느냐 안 맞느냐로만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이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노래에 담긴 중요성이랄까 역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아이들 정서와 맞아서 부르는 것이 아니고 아이를 치과에 데려가는 것은 아이가 치과에 가기를 좋아해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비슷한 시기에 나온 동요 [반달]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작동요 80년]의 저자 한용희의 말을 빌리면 "1924년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 [반달]은 나라 잃은 백성의 마음을 달래 주는 듯 어린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애창하게 되었다. 1993년 5월 김영삼 대통령은 이달의 문화 인물로 [윤극영의 달]을 선정하였다." 


 내 생각에는 [고향의 봄]도 해외에 사는 동포들에 있어서는 [반달] 못지않은 민족적 정서가 배어있고 겨레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홍난파의 [고향의 봄]과 윤극영의 [반달]을 뺀다는 것을 보니 사람들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고 분탕질을 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현대창작동요 작곡가들은 이 [고향의 봄]이나 [반달]이 없어지면 자기가 작곡한 동요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것이라고 희망하겠지요. 내가 틀렸습니까? 그러나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 대부분이 부르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것은 [고향의 봄]이나 [반달]이지 최근에 창작한 동요는 아닐 것입니다. 


 [고향의 봄]을 사랑하는 해외 동포 여러분, 무식한 이 문화정책에 동포들의 줄기찬 저항을 기대하면서 펜을 놓습니다.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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