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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leed2017

 


 글보다 말이 먼저 나왔다는 것은 어느 인간사회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27년 전에 <우리글 바로 쓰기>라는 좋은 책을 남기고 간 이오덕 님을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초원을 갈아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려 거두어 먹고 사는 농사꾼이었다. 산과 들, 마을과 고개 이름을 짓고 땔감과 과일을 줍고 개천에 사는 물고기를 잡으면서 이들에 필요한 여러 가지 말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가 농민의 말이었다는 것.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재산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나오고 문자를 쓰는 지식인들이 나왔다. 곧 나라가 생기고 벼슬아치가 생겼다. 이들 벼슬아치는 글을 모르고 소박하고 착한 농사꾼 앞에서 이들을 호령하며 떵떵거렸다. 이들은 자기들만이 안다고 뽐내는 문자, 즉 글을 통하여 농사꾼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의 한문이 들어와서 벼슬아치와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이 중국 문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내게 들려주신 이야기, 벌써 여러 번 써먹은 이야기지만은 또다시 한 번 하겠다. 이야기는 이렇다.


 원산호근산래(遠山虎近山來 : 먼 산에 있는 호랑이가 가까운 산에 와서)하야/가아생포거(家兒生捕去: 우리집 아이를 물어갔으니)하니/오호통재(嗚呼痛哉 : 아 슬프고 원통하도다)로다/지봉자지봉(持棒者持棒 : 몽둥이를 가진 자는 몽둥이를)하고/지부자지부(持斧者持부 : 도끼를 가진 사람은 도끼를 가지고)하고/속래(速來: 빨리 오라)하라. 무식한 농부들이 이런 유식하기 짝이 없는 말을 알아들을 리가 있겠는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산으로 가서 냠냠 별식을 끝내버렸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고을 원님은 그 선비가 한 짓이 너무나 얄밉다는 생각이 들어 선비를 잡아다가 볼기를 치면서 꾸짖었다. "이놈, 네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유식한 문자를 쓰다가 네 아이를 죽였지 않느냐." 아픔을 견디지 못한 선비는 부르짖었다. 아지둔(我之臀 : 아이고 내 궁둥이야)아/차후불용문자(此後不用文字 : 이후에는 절대로 문자를 쓰지 않으리로다)로다!"


 나라 운명이 기구하여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가 있었다. 시간으로 보면 36년이지만 360년이나 되는 것처럼 일본말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 깊숙이 파고들었다. 오늘날까지도 어떤 분야, 이를테면 건축 분야에서는 일본말 찌꺼기가 많이 쓰인다. 신문이나 방송, 언론에서 예사로 쓰고 이는 ‘오월에의 초대’니 ‘어느 노배우와의 인터뷰’ ‘나의 집 정원’ 같은 데서 공연히 ‘의’를 집어넣는 것은 일본말이 남기고 간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


 말은 곧 그 나라의 혼(魂)이요 정신이다. 우리말(우리 정신)을 빼앗아 가려고 한 일본을 두고 일본이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느니 아니니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고 있다. 해방과 더불어 일본 말이 물러가고 영어가 들어왔다. 우리는 처음에는 영어를 받아들이는 데 약간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1950년 한국전쟁 시작과 함께 영어와 미국 풍습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우리를 덮쳤다. 


 영어는 이제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배어 들어와서 “아침 잡수셨습니까?”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같은 정겨운 인사는 밀려 나가고 “좋은 하루 가지세요.”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생각은 하는 것이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영어를 바로 옮긴 말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온전한 영어가 아닌 영어를(예: 멘트) 주저없이 써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북미대륙에서는 들어보기가 힘든 말, 이를테면 서머리에이(sommelier : 고급 식당의 포도주 담당 웨이터) 같은 말을 그것이 무슨 유식의 상징인 양 입에 올리는 것을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한 나라의 말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될대로 되라고 그대로 버려 둬서도 안 된다. 언젠가 남한에서 북한은 우리말만 쓰기를 권장한다고 나무라던 적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잘못하면 종북세력이라고 비난받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북한의 한글정책에서 배워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국문과 심재기 명예교수가 펴낸 책 <남북통일 말사전>을 보니 예쁘고 정답게 들리는 우리말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산책로는 거닐 길, 개간지는 일군 땅, 야행성 동물은 밤 동물, 수면제는 잠약으로 되어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문으로 된 단어를 우리말로 바꿔 놓은 것들이다.


 우리말이 이 지경이 된 데는 몇몇 사람이나 기관, 혹은 몇몇 단체만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교육부 책임도, 대학 국문과 책임도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말을 오염시킨 장본인들은 말이나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대학 선생들이나 신문, 방송 등 언론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신기하고 멋있는 외국말이라고 가져와서 마구 우리말과 섞어 쓰지만 안했어도 이 정도로 오염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문, 일본말, 영어가 우리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러다가는 우리나라에 앉아서 ‘우리 말 쓰는 날’을 제정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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