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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
leed2017

 

 우연한 기회에 요즈음 한국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대중가요의 샛별 두 사람, L씨와 C씨가 같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선배 가수 L씨가 C씨에게 "참 한(恨)을 잘 풀어가네요." 하면 극구 칭찬을 했다. 한(恨)이 무슨 말인지 꼭 집어 말하기는 세상에 어려운 일이지만 나도 C씨의 노래를 들으면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그는 한(恨)을 노래하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한(恨)의 뜻은 무엇인가. 내가 가진 민중서관에서 펴낸 <국어대사전>을 보면 한(恨)과 그 말의 동의어가 된다 싶은 원(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한(恨) = 원한, 한탄(원통한 일이나 후회스러운 일이 있을 때 한숨짓는 탄식)
    원(怨) = 원한(원망스럽고 한이 되는 생각), 원망.

 

 우리 민족은 한(恨)의 민족이다. 민요 같은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구구절절 한이요 원망이다.


 한(恨)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생리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둘 중에서 나는 생활환경적인 요소를 가장 흔한 한(恨)의 원인으로 꼽는다. 그렇다면 어떤 생활환경일까. 힘들고 억울하고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현재 상황은 바꿔지  않는 생활환경이다. 내가 생각해본 한의 생성은 다음과 같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동굴 속에서 살며 먹이를 구하고 짐승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다. 이때 가난한 자와 부자의 차이란 기껏해야 힘이 더 센 사람이 더 많은 수확을 차지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행동 말고는 없었을 게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며 백성들을 돌보는 정부 조직이 들어서고 정부에 소속된 벼슬아치들은 백성에게서 세금은 물론 그 이외에 다른 물질적 지원도 기대하였다. 나중에 이 소수의 벼슬아치는 백성들 위에 누르고 앉아 백성들의 절대복종과 지나친 협조를 요구하는 특수층이 되었다.


 나라의 최고 위정자가 탐욕스럽고 잔인한 사람일 때는 벼슬아치들은 백성을 대상으로 인정사정없는 가혹한 약탈자로 변했다. 정부는 백성을 위한 조직이라기보다 백성을 착취하여 자기네 배를 불리는 특수 집단으로 전환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역사를 봐도 진정 백성을 위한 정부는 드물었다. 벼슬아치들은 마적떼가 되고 백성들의 삶은 날로 도탄에 깊이깊이 빠져들었다. 벼슬아치들이 비합법적이고 무자비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아가도 백성들은 울부짖는 것 외에는 항의 한번 제대로 못 해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억울한 경험은 쌓이고 쌓여서 원(怨)이 되고 한(恨)이 되어 우리의 핏줄 속에 남아 있다는 얘기다.


 간추려 말하면 한이 배양되자면 억울함과 제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발버둥 쳐 봐야 일어날 것은 일어나고야 만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예로, 10만 원이 없어서 딸아이가 눈앞에서 죽어 가는 것을 보는 부모가 한이 안 생길 수가 있을까. 자기 재산을 이유 없이 빼앗아 가는 것을 보고도 억울하다는 감정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한의 생성에 관해서 얘기하다 보니 제법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것으로 한의 생성을 일반화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예로, 정부가 백성을 착취하고 억울한 감정을 갖도록 한 것은 비단 우리 민족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웃 중국을 보면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고 백성들은 위정자들의 학정 밑에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암울한 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된 때가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 민족만 한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을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마 우리 민족은 고생스럽고 억울한 결과의 원인을 나의 실수. 아마 우리 민족은 고생스럽고 억울한 결과의 원인을 나의 실수, 나의 잘못으로 일어난 내적(內的) 요소로 귀인(歸因)하는 경향이 있는지 모른다. 되풀이 되는 상실, 억울한 일, 굶주림 같은 부정적인 결과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 한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있자, '청춘의 한(恨)' 같은 말은 착취도, 약탈도, 억울함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이 곧 한이 된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꾼 C씨는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이 어느 강촌, 어느 무대 위에서 이 민족의 한을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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