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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환향(錦衣還鄕)
leed2017

 

 나는 '고향'이라는 말에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고향이 어딥니까?"하는 내 질문에 경상북도 어디라는 대답이 나오면 나는 그 사람에 대해 10점을 더 주고 들어간다. 고향이 경북 안동이라는 대답이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인다. 이 말은 내가 지방색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랄까, 사랑이 유난히 크다는 말일 뿐. 어차피 나는 심심산골에서 태어난 시골뜨기가 아닌가.


 사실 따지고 보면 나만 그런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다 그런 것 같다. 박근혜가 대구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김대중이 목포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김영삼과 그의 아들이 거제도에서 어떤 지지를 받는지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의 경우는 무척 흥미롭다. 문재인은 세상에 나오기 전 그의 부모는 흥남부두에서 철수하는 미군 군함을 타고 남하, 거제도로 피난, 문재인을 잉태했다. 그러니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곳, 즉 그의 고향은 경상남도 거제다. 그러나 이 엄연한 사실에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문재인이 비록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해도 그의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이북 사람들이니 문재인도 이북 사람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거지 이동이 거의 없었던 조선왕조 때, 아버지의 고향=나의 고향이라는 생각으로 보면 문재인은 이북사람이지 경상도 사람이 아니다.


 며칠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두 나라 간에 무역을 더 활발하게 해야 한다는 구실로 아프리카 대륙 사하라 사막 남쪽에 있는 케냐(Kenya)를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 태생 흑인으로 미국에 유학 와서 당시 학생이던 오바마의 어머니(백인)와 결혼하여 그 둘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그러니 오바마의 고향은 하와이. 미국 대통령이 된 그는 이번에 아버지의 나라, 그의 고향을 찾아갔다. 그야말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 아닌가.


 옛날 조선왕조 때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출세의 유일한 길이었다. 과거에 급제해서 조상을 모신 사당(祠堂)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는 것은 조선에서 태어난 모든 사내아이들의 꿈이요 소망이었다. 그러나 요새 세상에는 출세하는 길도 여러 가지, 공부를 잘해서 출세한 사람도 있고, 돈을 많이 벌어서, 운동을 잘해서, 글[文筆]로 이름을 날려서, 아니면 특정 예술이나 기능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 출세를 한 사람 등 수십 가지이다.


 이번 케냐 방문은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는 처음 방문인 것으로 안다. 아무리 공적(公的)인 일로 방문한다 해도 한국 같았으면 언론에서 대서특필, 흑인 아버지의 아들로 인종차별에서 오는 서러움을 이기고 대통령 자리에 올라서 자기 아버지 나라에 가는 금의환향에 관해 별별 흥미로운 기사가 다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예로, 오바마가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는 광경, 아직까지 살아있을 아버지의 옛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 배다른 형제들과 이야기하는 장면 등 자질구레한 장면을 내보내느라 언론이 무척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대는 빗나갔다. 북미 언론들이 내놓은 기사는 무역활성화를 위한 업무중심(business talk)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왜 북미의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케냐 방문에 관계된 센티멘털한 면을 외면했을까? 내 생각으로는 '출세'라는 말이 두 개의 다른 문화권에서 쓰이는 뉘앙스(nuance) 때문인 것 같다. 한국같은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출세라는 말에 더없이 무거운 비중을 둔다. 출세를 하면 우선 가문이 빛나고, 어려운 집안을 도와주고, 무한한 사회적 존경과 찬사가 따르고 나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물질적, 사회적 대우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확률이 크다.


 그러나 북미사회는 집단주의 사회가 아니라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 출세한 사람이 남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은 한국에 비해 극히 적다. 북미대륙에서 출세란 그저 교육 잘 받고, 안정된 직장 얻어서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누리며 자녀교육 잘시키고 국가에 세금 부지런히 내며 좋은 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네들에게 고향이란 단순히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낸 곳. 그러니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우리 한국 사회의 절반도 못된다.

 


 ‘...타국이 좋다 해도 청춘행락 꿈같으니 고국 천륜 잊지 말고 수년내로 돌아와서 다시 보기 부탁한다. 할 말은 무궁하여 민권지 부족하나 마음도 아련하고 문필이 부족하여 이만 그치니 부디부디 건강하게 잘 있다가 금의환향 돌아오라.’ -계축 추 팔월 십칠일 어미

 


 내가 학위를 받고 노트르담(Notre Dame)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한국에서 우리 사는 것을 보러 오셨던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써두고 가신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다. 금의환향은 옛말이 되고 나는 이제 비행기 탈 기운부터 걱정해야 하는 실로 초라한 행색의 늙은 첨지(僉知)가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자기 아버지의 나라 케냐를 방문한다는 부러운 뉴스를 들으니 문득 어머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날 써주고 가신 금의환향하라는 편지구절이 생각나서 적어 보았다. "나 벼루에 먹 좀 갈아다고." 말씀하시던 광경이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같이 생생하다.(2015,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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