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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갈채
leed2017

 

 사람으로 태어나서 일생에 박수갈채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또한, 애당초 박수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박수에는 찬성이나 지지한다는 의미가 배어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면 박수갈채를 싫어할 사람은 없지 싶다.


 인류 역사에서 언제부터 손뼉을 치기 시작했을까. 나는 모른다. 내 생각으로 박수갈채는 어느 인간 사회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 싶다. 우리 인생에서 '잘했다'와 '잘못했다'의 구별이 있는 한 이를 구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박수갈채는 있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박수갈채는 인정(認定)의 욕구와 직결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일상생활에서 이쪽에 붙었다가 어느새 저쪽으로 옮겨붙는, 소위 기회주의자라거나 간사한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밑바닥에는 끝없는 인정의 욕구가 깔려 있다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남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싶거나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은 어린아이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아니 호호백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욕구에는 큰 변화가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박수갈채가 박수를 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아부나 아첨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일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박수를 받으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일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박수를 받는 사람은 그 순간만은 인정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한없이 어리석고 우매한 인정(認定)의 노예가 되어 버린 그는 그 박수의 진의(眞意)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이런 유(類)의 거짓 박수를 쳐 본 적도 있고 받아 본 적도 있다. 박수를 거짓으로 쳤을 때 박수를 받는 사람이 턱없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니 내게도 떡고물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민족의 박수갈채를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으나, 나는 한글을 만들어 펴낸 세종대왕을 맨 첫 번째로 꼽는다. 우리 민족 모두에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생각할 도구를 준 어른이 세종대왕 말고 또 누가 있는가. 두 번째로는 잃어버릴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한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세 번째로는 우리 민족에 가장 창의적인 살 길을 제시하며 많은 실사구시(實事求是) 학문적 업적을 남긴 다산(茶山) 정약용을 꼽는다.


 토론토 한인회관에 가 보면 입구에 애국자들 초상화가 여럿 걸려 있다.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를 비롯해서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이 있고, 앞으로 유관순을 비롯한 다른 애국지사의 초상화도 걸릴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일본에 항거해서 싸운 투사들이다.


 나는 '애국자' 하면 적과 대항해서 싸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을 몹시 안타깝게 생각한다. 세종대왕이나 장영실, 정다산이나 지석영 같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막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은 왜 애국자로 생각하지 않을까.


 박수갈채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사람은 대중가요 가수를 비롯해서 성악가, 연극인, 무용가, 운동선수 등 대중 앞에서 서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일 게다. 이들의 생존은 거의 전적으로 관중의 박수갈채에 달려 있지 싶다. 박수갈채가 없는 공연 예술이나 운동경기를 상상하기란 퍽 어렵다.


 박수갈채를 받고 싶어서 안 해도 좋을 행동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남이 한 것을 자기가 했다고 끌어 대든가, 여럿이 함께 한 일을 저 혼자서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남의 박수갈채를 갈망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의 무드(mood)에 사로잡혀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직업이 선생이다 보니 박수를 받아 볼 기회는 무척 적다. 강단에 선다는 것은 박수갈채 따위의 천박한(?) 인기와 영합해서는 안된다는 말인가. 강의가 끝났을 때 박수 같은 것은 없다. 박수갈채가 그리워서 그럴까. 대학교에서 백묵을 쥐고 있는 선생 중에는 마음은 딴 데 가 있어서 틈만 있으면 일반 대중의 박수갈채를 받기 위해 강단을 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 강단이 무슨 소도(蘇塗: 삼한 시대에 천신을 제사 지내던 성지)인가, 박수소리가 멎으면 이들은 철새처럼 또다시 강단으로 슬며시 돌아오는 것이다.  (201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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