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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자크 교향곡
leed2017

  
 내 서재(書齋)가 만원이다. 벌써 몇 번이나 '구조조정'을 해서 버릴 책은 다 빼냈다 싶은데도 책을 얹어 두는 시렁의 공간이 워낙 비좁다 보니 몇 달만 지나면 또 책 한 권 더 꽂을 자리도 없게 된다. '이 책은 도저히 내 손으로는 못버리겠다.'고 속으로 수없이 다짐한 책도 어느 때 가서는 퇴출당하고 만다. 그래서 나는 가끔 책시렁 앞에 서서 '더 빼낼 책은 없나?' 하고 한 권 한 권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2014년 초여름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꽂으려고 책시렁을 훑어보는데 우연히 시렁 한구석에 옛날 축음기(蓄音機) 시절의 레코드판 한 장이 끼여 있는 것이 눈에 띄는 게 아닌가. 표지를 보니 <드보르자크(Dvorak) 교향곡 4번>이었다. 순간 내 마음은 그 옛날 풋풋하던 학창 시절, 눈 내리는 어느 겨울밤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음반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담겨 있다.


 내가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은 1960년, 나는 대학교 3학년, 아내는 나와 같은 과에 갓 입학한 병아리 신입생이었다. 신입생 서른 명 중에 여자 하나니 홍일점, 주가가 턱없이 높았다. 나는 경상도 황소고집으로 마구 몰아 붙였다. 그해 겨울 우리 둘은 당시 명동에 있던 시공관에서 열리는 KBS인가, 시립교향악단 정기 연주회에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하였다. 두 젊은이들의 구식 데이트였다. 연주곡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4번>-. 


 그런데 그때까지 나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4번>을 라이브 콘서트에 가서 들어본 적도, 레코드로도 들어본 적도 없는 순 맹탕이었다. 궁리 끝에 대학 도서관에 가서 <음악 대사전>인가, <교향곡 대사전>인가 하는 목침만한 두께의 책을 빌려 왔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4번>은 물론 그날 연주할 다른 작은 곡(지금 생각하니 생상스(Saint Saens)의 <동물 사육제>도 있었던 것 같다.) 네 곡인가 다섯 곡에 대한 해설을 찾아 달달 외워 버렸다. 그때는 내 기억력이 펄펄 날던 시절, 무엇이든 두세 번만 읽어 보면 가히 외울 수 있던 그런 왕성한 기억력을 뽐내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밥풀로 잉어 낚으려는 녀석이 이 정도 수고도 않고서야..." 하는 생각을 하며 자못 성실한 태도로 준비했다. 이 지극한 정성에 감복한 월하노인(月下老人: 남녀의 인연을 맺어 준다는 전설의 노인)이 병아리 규수 정옥자의 사랑의 새끼줄(因緣繩)을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부포동 역동 이동렬 도령댁 대문에 걸어 놨지 싶다.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의 연주는 한 곡이 끝나고 나서 한 1~2분 있다가 연주를 계속하던 때였다. 곡이 끝날 때마다 나는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햇병아리에게 실로 전문성이 넘쳐나고 해박하기 짝이 없는 해설을 들려주었다. 물론 도서관 책에서 읽었던 알레그로(allegro)니 모데라토(moderato)니 하는 전문용어도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내 '해설'이 다 끝났는데도 연주할 곳은 하나가 더 남아 있지 않은가. 이상하다. 분명 첫 단추를 잘못끼었구나. 그러나 내 옆자리에 있는 햇병아리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통 말이 없었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4번> 음반을 내게 보내준 사람은 대학 동기동창 K였다. 녀석과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새벽>이라는 종합잡지를 창간, 둘이서 함께 공동편집인으로 일했다. '사내 녀석이 이렇게 보드랍고 사근사근한 아(아이)도 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곱고 양순한 아이였다. 


 나는 학교에 다닐 때 안국동 풍문여고 근처에 있는 K의 집에 가서 이틀이고 사흘이고 묵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K는 미국에 와서 어느 여의사와 결혼하여 한쌍의 원앙새처럼 사이좋게 살더니 12년 전에 병마(病魔)로 아깝게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내가 그날 미스 정과 함께 시공관에 드보르자크 교향곡 연주를 들으러 간 것을 알고 이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우리가 캐나다에 와서 결혼을 하자 선물로 보내 준 것이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4번>을 듣던 소녀는 앞서 말한 '드보르자크 해설의 대가'와 동거하며 아이 둘 낳고 결혼 생활 47년째로 접어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드보르자크 <교향곡 4번> 음반은 행복과 불행을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행복하다는 것은 내 손에 들어온 후 밴쿠버(Vancouver)에서 넬슨(Nelson)으로, 넬슨에서 에드먼턴(Edmonton)으로, 에드먼턴에서 레드디어(Red Deer)로, 레드디어에서 런던(London)으로, 런던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캐나다 토론토(Toronto)로 왔으니, 참으로 길고 긴 여로(旅路)에 있으면서도 우리 부부로부터 신주(神主) 모시듯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불행하다면 아직까지 한 번도 우리 부부가 한자리에 같이 앉아서 그 음반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라 할까.


 첫 단추를 잘못 낀 54년 전의 쓰라린 과거로 돌아가서 내게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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