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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야기(67)
leed2017

 

 

다음 2회에 걸쳐서는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무명씨(無名氏)의 작품을 몇 수 소개할까 한다. 지은이를 모른다고 해서 문학적 가치가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무명씨의 시조라 할지라도 문학성은 조금도 뒤지지 않는 작품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보자.

 

닻들자 배 떠나니 이제 가면 언제 오리
만경창파(萬頃蒼波)에 가는듯 돌아오소
밤중만 지국총 소리에 애끊는듯 하여라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무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 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위와 같은 시조는 무명씨의 작품이다. 그러나 시조가 퍽 아름답고 다른 어느 시조와 비교해도 문학성이랄까 시어(詩語)의 수준은 결코 뒤지지 않는 시조다. 그런데 이름을 남기지 않는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내 궁금증은 매우 크다. 

 

약산 동대(東臺) 이지러진 바위 틈에 왜철쭉 같은 저 내 님이
내 눈에 덜 밉거든 남인들 지내보랴
새 많고 쥐 꾀인 동산에 올조 간듯하여라

 

※해설: 영변 약산 동쪽 누대 이지러진 바위틈에 왜철쭉 같이 서 있는 내 님이 내 눈에 그다지 밉게 보이지 않으면 남인들 지나쳐 보겠는가? 새 많고 쥐 들끓는 동산에 이른 조(곡식 이름)간 듯 하여라. 

 

 님 타령이다. 선비 중에도 임금을 님으로 생각해서 마치 남녀가 그리워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도 있으나 대부분 님을 그리워하는 상사시(相思詩)는 많은 남자들을 상대하는 화류계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점잖은 양반 가정의 아낙네나 규수가 누구를 그리워하는 얘기를 밖에 내놓을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일찍이 조선 중종 때의 선비 김정국은 호가 사재(思齋)였는데 기묘사화 때 벼슬에서 쫓겨나서는 여덟가지가 넉넉하다는 의미의 팔여거사(八餘居士)로 바꾸었다. 그의 친구가 새 호의 뜻을 물었더니 토란국과 보리밥을 배불리 먹고, 온돌에서 잠을 잘 자고, 땅에서 솟는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뽑아 읽고, 봄에는 꽃을 가을에는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들의 지저귐과 솔바람 소리를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의 향기를 맡고,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복이기에 팔여거사라고 했다고 하였다. 21세기 도시에 살면서 팔여거사의 멋을 부리며 살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만수산 만수봉에 만수정이 있더이나 
그 물로 빚은 술을 만수주라 하더이다
진실로 이 잔 곳 잡으시면 만수무강 하오리다

 

※해설: 개성 서문 밖에 있는 만수산 만수봉에 가면 만수정이라는 우물이 있지요. 그 우물물로 빚은 술을 만수주라 합니다. 이 술 한 잔 잡수시면 만수무강할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은 저 태곳적 동굴생활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문화적 전통. 탁석산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전통적 사상이 현세주의라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을 믿지 내세(來世)는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살 때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어보고, 구경하고 싶은데 다 가보고?. 하여튼 이 세상에서 후회없는 생활을 만끽하라는 것이다. 

 

내 옷에 내 밥 먹고 내 집에 누웠으니
귀에 잡말 없고 시비에 걸릴소냐
백년을 이리 지냄이 그 분수인가 하노라

 

※해설: 내 옷 입고 내 밥 먹고 남의 일 상관 않으니 잡말이 없어 가십(gossip)에 휘말릴 일도 없네. 이렇게 백년을 살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어느 얌체의 심보를 적은 글이다. 

 

 사회적인 일, 남의 일에는 일체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기 앞만 보고 살아가는 어느 사회적 고립아의 자화상이다. 이런 사람이 남편이 되었을 경우를 상상해 보라. 휴가나 연휴가 와도 문 밖에 나갈 생각은 아예 않고 집안에만 처박혀 있으며 “오늘은 갈비탕 먹고 싶다” “냉면 먹어본 지가 1년이 되었네” 따위의 잔말만 하며 부인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 좁쌀 남편일 확률이 높다. 가정적이라는 사람 조심하라. 

 

소원(小園) 백화 중에 다니는 나비들아
향(香)내를 조히 여겨 가지마다 앉지 마라
석양에 숨꾸즌 거미 그를 걸려 온다 

 

※해설: 작은 동원 수많은 꽃이 피는데 날아다니는 나비들아 향기 좋다고 자꾸 가지 마라. 해질 무렵에 심술궂은 거미 녀석이 와서 그물을 걸어 너를 잡으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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