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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야기(45)
leed2017

 

 

 순조 때부터 시작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철종 때에 이르러 그 절정에 달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안동 김씨가 계속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순조의 부인 순원왕후의 공이 크다. 순조의 부인은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조대비의 풍양 조씨가 자기네 마음에 드는 왕을 세울까 염려하여 황급히 임금이 될 후보를 정했다.


 역사학자 박영규 교수에 따르면 후대의 왕은 본래 항렬로 따져 동생이나 조카뻘 되는 자로 왕통을 잇게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종묘에서 제사를 올릴 때 항렬이 높은 사람이 항렬이 낮은 사람에게 제사를 올릴 수는 없다는 법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동 김씨들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헌종의 7촌 아저씨뻘이 되는 강화도령 원범이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렇듯 안동 김씨들은 자기네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왕가의 법도도 무시하는 전횡을 저질렀다.


 사도 세자의 증손이자 정조의 동생 은언군의 손자인 이원범은 강화도에서 나무하고 농사짓는 농사꾼으로 살던 중 어느날 갑자기 왕통을 이으라는 교지가 내려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철종이다. 그러니 철종은 왕이 되기 위한 학문도, 실력도 그 어떤 준비도 안 된 그야말로 나무하고 밭가는 농부에 지나지 않는 사람, 자질로는 현감도 못 될 사람이었다. 거짓말 같은 참말이다.

 

님 그린 상사몽이 실솔(??)의 넋이 되어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해설: 님을 사랑하고 사모해서 꾸는 꿈이 귀뚜라미의 넋이 되어 긴 가을 밤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어갔다가 나를 잊어버리고 곤하게 잠든 님을 깨워볼까나.

 

 위는 철종-고종 때의 가객 운애(雲崖) 박효관의 노래다.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가깝게 지냈으며 운애라는 그의 아호도 흥선대원군이 지어준 것이다. 고종 13년에는 제자이자 친구 사이던 안민영과 더불어 <가곡원류>를 편찬했으며 자작시 15수가 전한다. 


 그는 언제 보나 기쁨만 있고 성내거나 근심하는 모습은 그에게서 찾아 볼 수 없다는 의미로 무수태평옹(無愁太平翁) 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인생무상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 많다. 

 

꿈에 왔던 님이 깨어보니 간데 없다
탐탐히 괴던 사랑 날 버리고 어디 간고
꿈속이 허사라망정 자주 뵈게 하여라

 

※해설: 꿈속에 나를 찾아왔던 임이 꿈 깨어보니 간 데가 없네. 몹시도 사랑하더니 나를 버리고 누구한테 갔는고? 아무리 꿈은 헛된 일이라 해도 꿈에서라도 자주 뵈올 수 있었으면 좋겠네.

 

 왕통을 이으러 한양으로 오라는 교지를 받은 강화도령 이원범은 나이는 당시 19세, 학문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정치수업도 한 시간도 받은 적이 없는 농부였다. 나이가 어리고 학문을 닦은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일부러 학문이 없고 경험이 없는 허수아비 왕 후보를 찾고 있었는데 ‘이상적’인 왕 후보 원범이 걸려든 것이다. 


 순원왕후의 친정 안동 김씨 김문로의 딸을 왕비로 데려왔으니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만세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과 마찬가지. 세도정치가 계속되는 것은 그래도 괜찮으나 문제는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말할 수 없이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벼슬을 팔고 사는 세상이 되었고, 탐관오리가 백성들의 살림을 착취해 가서 전국의 여러 곳, 특히 진주 같은데서는 대규모의 민란이 일어났다. 안동 김씨들은 왕족 중에서 나중에 왕위에 올라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사람이 있으면 가차 없이 미리 제거해 버렸다.


 철종은 이 거대한 안동 김씨의 횡포와 맞설 지혜도, 조직도, 용기도, 그 어느 것도 없는 평범한 농부였다. 이 허수아비 임금은 자포자기로 술과 여색에 빠져 33살을 살다가 죽었다. 후손이라고는 그가 낳은 옹주 하나, 나중에 친일파 박영효에게 시집간 옹주 하나 밖에 없다. 망국의 수렁은 깊어만 간다.

 

내 본시 남만 못하야 한 일이 바히 없네
활 쏘아 할 일 없고 글 읽어 인 일 없다
차라리 강산에 물러와 밭갈이나 하리라

 

※해설: 내 본래 사람이 남만 못하여 이룬 일이 전혀 없네. 활을 잘 쏘는가, 글을 많이 읽었는가, 아무 것도 이룬 일이 없네. 차라리 시골로 물러나서 밭이나 갈며 살아갈까나. 

 

오늘도 좋은 날이요 이곳도 좋은 곳이
좋은 날 좋은 곳에 좋은 사람 만나이셔
좋은 술, 좋은 안주에 좋게 놀미 좋도다

 

※해설: 날도 좋고, 경치도 좋네. 좋은 날, 좋은 경치에 좋은 사람 만나서 좋은 술과 좋은 안주 먹고 잘 노는 것이 좋도다.

 

 위의 시조 2수는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무명씨들의 노래이다.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조선 말기에 나온 작품, 게다가 첫 번째 시조는 활을 쏴 봐도 시원찮고, 책을 읽어도 시원치 않으니 초야에 가서 농사나 짓겠다는 내용이다. 


 둘째 시조는 술이나 마시고 재미있게 놀아 보자는 내용의 노래로 보아 도탄에 빠진 민초들의 퇴폐풍조[decadent] 냄새가 나지 않는가. 나의 선입감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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