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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야기(43)
leed2017

 

문 닫고 글 읽은 지가 몇 세월 되었관대
정반(庭畔)에 심은 솔이 노용린(老龍麟)을 이루었다
명원(名園)에 피어진 도리(桃李)야 몇 번인 줄 알리요

 

※해설: 문 닫고 글 읽은 지가 몇 십 년이 되었기에 뜰 가에 심어둔 소나무가 커서 나무껍질이 용의 비늘을 이루었구나. 그러니 정원에 핀 복숭아와 오얏나무야 몇 번을 피고 지는 세월이 흘렀겠는가.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우네
산채(山菜)를 맵다는가 박주(薄酒)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해설: 매미는 맵다 울고, 쓰르라미는 쓰다 우네. 산나물은 맵다하고, 맛이 좋지 못한 박주는 쓰다고 하지마는 우리는 초야에 묻혀 사니 맵고 쓴 줄을 모르겠네.

 위의 시조 2수는 영조 때 현감을 지낸 가인(歌人) 백회재(百悔齋) 이정신이 지은 시조로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초야에 묻혀 세상 명리 모르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정경이 눈에 보이듯 한가로운 노래들이다. 

 

감장새 작다 하고 대붕아 웃지마라
구만리 장공을 너도 날고 저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一般飛鳥)니 네오 긔오 다르랴

 

※해설: 굴뚝새가 몸집이 작다고 하여 한숨에 9만 리를 난다는 대붕새야 비웃지 마라. 구만리 넓고 넓은 하늘을 너도 날고 감장새도 날아다니지 않느냐. 다같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이니 네나 굴뚝새가 다른 것이 무어냐.

 숙종 때 사람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평안 병사를 지낸 이택의 시조다. 몸이 약하다는 것을 이유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한가한 직책으로 옮겼다가 얼마 안가서 죽었다. 위의 시조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해학적으로 옮겨 논 시조로 볼 수도 있고, 문인은 떠받들고 무인은 멸시하던 당시의 시대풍조를 빗댄 노래로 볼 수도 있다. 아마 후자일 것 같다.


 서울 강남 같은 부자 동네 사는 사람들아, 달동네에 사는 우리들을 비웃지 말아라. 너나 나나 하루 세끼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냐. 이 시조에서 보여주는 두둑한 배짱과 패기만만한 생각은 금력과 권력이 판치는 사회에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데 매우 필요한 기상이라고 생각된다. 


 내게 있었던 일화 하나. 내가 한국 E여대에 간 것은 1999년 9월부터 1966년 봄까지였으니 꼭 6년 5개월. 강서구 등촌동 봉래산 아래 어느 작은 콘도미니엄에 살았다. 나는 매 학기 초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내라고 하여 보관한다. 학생 중에 내 책을 빌려가서 안 가져 오거나, 비상시 연락을 취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내가 E여대에 있는 동안 강서구에 산다고 적은 학생은 그 많은 학생 중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왜 그럴까? 내 해석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강서구에 있는 학교들이 좋질 않아서 E여대에 합격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둘째, 강서구에 산다는 사실은 자랑스러운 것이 못되어서 떳떳하게 어디 산다는 것을 밝히기 싫어서 그렇다. 우리가 처음 서울에 이사를 가서 아내가 동창들을 만나서 “어디 사느냐?”고 묻기에 등촌동이라고 했더니 “왜 그런데 사니…. 당장 딴 데로 옮겨.”라는 말을 5~6번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의 2번째 해석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어쨌든 위의 노래 “감장새 적다 하고…”는 나같이 강서구 등촌동에 사는 사람들이 자존심과 사기를 올리기 위해 외쳐 볼 수 있는 노래다.


 정조 치세기에 일어난 가장 큰 문화 사업의 하나는 실학(實學)사상의 융성이었다. 실학은 조선 후기에 일어난 일련의 현실 개혁적 사상체계를 말하는 것으로 정주, 성리학에 바탕을 둔 사회체제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현실 속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창출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수광, 유형원 등의 선구로 시작된 실학은 이익, 안정복, 박세당, 홍대용을 거쳐 박지원, 이덕무, 정약용, 박제가 등 중앙정계에서 소외된 남인 계열의 학자들에 의해서 그 절정을 맛보았다.


 이렇듯 이덕무, 박제가 등 서자로 태어나 능력은 있으나 출세길이 막힌 불우한 처지에 있는 선비들을 기용하고 후원해 주었던 정조가 죽자 정권을 장악한 노론 벽파는 천주교 금지를 명분으로 남인 일파를 숙청하고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실학파 학자들을 대거 제거해버렸다.

 

옥(玉)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알 이 있으지니 흙인 듯이 있거라

 

※해설: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려져 있으니 오는 사람이나 가는 사람들이 모두 흙으로만 아는구나. 아는 사람은 알 것인즉 흙인 듯이 가만히 있거라.

 

 조선 3대 시조 시인의 하나로 불리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증손 윤두서의 시조이다. 윤두서의 호는 공재(恭齋), 문인임과 동시에 이름난 화가로 현재(玄齋), 겸재(謙齋)와 더불어 조선 삼재(三齋)라 일컫는다. 실학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다산(茶山) 정약용의 외할아버지다. 다산이 젊었을 때 서울에 있는 그의 외가를 자주 찾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장서가로 유명한 증조할아버지 윤두서의 집에 소장된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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