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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씨의 전자우편
leed2017

 

 벌써 몇 주가 지났습니다. 하루는 자기 자신을 내 글의 독자 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L씨로부터 긴 전자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L씨의 편지는 내가 [부동산캐나다]에 연재하고 있는 <옛시조 이야기>에서 두 개의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편지였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내가 L씨에게 보내는 공개답장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첫번째 오류는 조선 중기의 무신 유포(柳浦) 구인후가 지은 다음의 시조 한 수와 관련된 것입니다.


어전에 실언하고 특명으로 내치시니
이 몸이 갈 데 없어 서호를 찾아가니
밤중만 닻 드는 소리에 연군성(戀君誠)이 새로워라


 나는 이 시조의 풀이를 이렇게 했습니다. “임금님 앞에서 실언을 하고 물러가라고 내치시니 이 몸이 갈 데가 없어 서호(西湖)로 갔다. 밤중에 닻 드는 소리를 들으니 임금님 그리워 하는 마음이 더 새로워지는구나.”


 L씨의 주장으로 서호는 어디까지나 호수라는 것, 그것도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고 중국에 있는 것이니 내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L씨는 조선시대에는 한강을 다섯 개의 강(한강, 마포, 용산, 지호, 서호)으로 나눠 부르던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시조에서는 한강의 서호를 끌어대기보다는 그냥 ‘자연’이란 말로 대치하는 것이 더 좋은 풀이가 됩니다.


 다음 설명에서 곧 밝혀지겠지만, 여기서 서호는 내가 애당초 해석한대로 한강의 서호로 봐도 좋고 L씨의 말마따나 중국에 있는 서호로 봐도 좋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서호로 봐도 좋습니다. ‘서호’가 나오는 시조가 이것말고도 몇 수 더 있다는 것은 서호=강호(江湖)=자연으로 연상하는 시인들이 많다는 말이지요. 남포=이별과 마찬가지입니다.


 <한시 미학 산책>이라는 좋은 책을 펴낸 정민 교수를 따르면 옛날 시(詩)에서는 저명한 문필가, 이를테면 도연명같은 사람이 한번 특정 지명을 그의 글에 올리면 후세 문인들도 그와 비슷한 문학적 정취를 느낄 때는 그 선배 문인이 썼던 그 장소를 무조건 따라 올리는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예로 고려 때 시인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들 수 있지요.


비 개인 긴 방축 풀빛 고운데
남포에서 님 보내는 슬픈 노래여!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지는 걸.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위의 시에서 2째줄, “남포에서 님 보내는…”을 눈여겨 보십시오. 정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굴원이 일찍이 이별의 장소로 남포를 노래한 후로는 많은 후세 시인들은 실제로 헤어지는 포구가 동포든, 서포, 남포, 북포든 남포=이별의 장소로 노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갈 데가 없어 서호로 갔다는 서호가 이 세상 어디에 있건, 실제로 존재 않는 곳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요. 서호=자연으로 보십시오. 


 두번째 오류는 제주도에서 군량미를 실어 왔다고 적은 ‘오류’입니다. L씨의 주장으로는 먹을 것도 없는 제주도에서 군량미로 가져올 양식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나도 이 주장에 반론을 펼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디에서 그런 이야기를 적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만일 내가 했다면 충무공의 <난중일기>, 진중(陣中) 보고서인 <임진장초>, 아니면 유성룡의 <징비록> 어디에서 읽은 것을 인용했겠지요. 위의 책 세 권을 앞에 두고 하루종일 뒤졌으나 성공을 못했습니다. 내가 만약 그런 구절을 인용했다면 며칠만 더 찾아보면 그 구절을 찾아낼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찾으려고 그 많은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에 이르러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오자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공비토벌’하듯 안달하지 말고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찾으면 찾고 못 찾아도 그만이다.’ 생각하면 눈에 띄는 날이 있겠지요.


 좌우간 나는 L씨가 내 글을 읽고 전자우편을 보내준 것에 무척 놀라고 고마왔습니다. 누가 맞고 틀렸다는 차원을 떠나서 이런 편지를 받을 때는 누군가 내가 쓴 글을 꼼꼼히 읽는다는 사실이 무척 흐믓하고 또 내가 쓴 글에 내가 책임을 져야겠다는 다짐을 새로 합니다. 어떤 장르(Genre)의 문학이고 예술이건 간에 예술가로서 완벽(excellence)을 지향하는 마당에서는 동료들과 접촉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나의 오래된 지론입니다.


 좌우간 L씨 덕분에 충무공의 <난중일기>, 와 <임진장초>는 물론, 서애의 <징비록>도 여러번 읽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하루 종일 뒤졌습니다. 나의 <옛 시조 이야기>가 몇 회 남지 않았는데 이런 편지를 받을 기회가 또 한번 온다면 얼마나 화려하고 흥분된 시조 이야기의 끝마침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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