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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탄로가(嘆老歌)
leed2017

 

 2014년 4월 중순, 한국 방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하루는 E여대 Y교수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이번에 한국에 오면 특강을 한번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내 마음으로는 무척 하고 싶었지만 사양하고 말았다. 2006년에 E대학에서 은퇴를 했으니 은퇴한 지가 올해로 8년, 그 사이에 논문 한 편은커녕 전공서적 한 권 읽지 않고 매일 빈둥빈둥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한 녀석이 뭣을 안다고. 나의 '최신' 지식이 벌써 8년은 넘은 '낡은' 지식이 아닌가. 


 나는 E대학교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출간된 지 5년이 지난 심리학책은 낡은 것이니 될 수 있는 대로 읽지 말라고 충고해왔다. 내가 8년을 놀다가 지금 와서 특강을 한다는 것은 '학문에 대한 모독'이라는 안 해도 좋을 말까지 해가며 사양하고 말았다. 그래도 학생들을 보고 싶은 욕심에서 특강 대신 인생 이야기나 해주기로 했다.


 이 '인생 이야기'를 준비하는 데 꼬박 이틀이나 걸렸다. 이런 일을 준비하면서 "내가 늙었구나." 하는 생각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녀석이 왜 이렇게 잊어버린 건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척척 나오던 것이 지금은 사람 이름이고 책이고 학설 이름이고 도대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무리 '인생 70부터'니 '80 청춘'이니 떠들어도 70은 70, 80은 80이다. 전에는 밥 먹듯이 쉽게 생각나던 것들이 이제는 생각이 날듯 날듯하면서도 나지 않는 경우를 몇 번 당하고 나면 "내가 늙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나의 늙음은 밖에 나가서 나돌아 다닐 때의 신체적 건강을 이전과 비교하는 데서 온다기보다 사람 이름이나 책 이름 같은 것을 옛날처럼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소위 기억력 감퇴에서 오는 것이다. 책을 두 번째 읽을 때는 "내가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나?" 스스로 의심이 갈 때가 많다.


 늙음은 사람이 태어나서 정상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로에서 반드시 한번은 넘어야 할 고개. 늙음이 왔다는 것은 죽음이 그리 멀지 않다는 예고다. 늙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믿음이 두터운 사람들 중에는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을 누리는 축복받는 삶을 산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족 친구들도 다시 볼 수 없는 영생은 누려서 뭣을 하겠는가. 나는 죽어서 영생을 누리는 것보다는 이승에서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늙어 가는 것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죽는 것이 겁나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용기가 있다기보다는 아직 젊었다는 얘기다.


 조선 인조 때 선비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 나온다는 이야기라는데 <어우야담>을 뒤져도 찾질 못했다. 여하튼 우홍적이라는 일곱 살 난 아이가 쓴 연구(聯句)가 있다. 어떤 노인이 老(늙을 로)자와 春(봄 춘)자를 주며 연구를 하나 지어 보라고 하니, 홍적은 "늙은이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老人頭上雪,春風來不消)."라고 적었다. 율곡, 다산, 김시습 같은 세기의 신동들은 그들이 열 살이 되기 전에 지은 연구(聯句)들이 있지만, 우홍적처럼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 같은 직설적인 구절은 처음 본다. 송강(松江) 정철 같은 대문호가 이 연구(聯句)를 봤다면 어린 홍적을 등에 업고 방을 몇 바퀴 도는 축하의 세레모니(ceremony)를 펼쳤을 것이다.


 늙음에 '정면 돌파'를 외치는 소리가 점점 커져 간다. 늙음이 뭐가 잘못 됐느냐는 항의다. 일흔은 청춘의 시작이라느니 여든에 배우자를 바꾸는 '비극'은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몸부림이라느니, 백살은 살아야 사는 것같이 산 것이라느니..., 매일 내 컴퓨터에 올라오는 늙음의 기쁨을 찬양하는 순례자들의 대열은 끊이질 않는다.


 언젠가 청중 대부분이 쉰 살은 넘었을 사람들의 노래자랑에 가본 적이 있다. 무대에 선 가수가 무슨 노래를 들려줄까 청중에게 물었더니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제목의 노래를 들려 달라는 요청이 압도적이었다. 젊은 시절 같았으면 "왜 저런 제목의 노래를 청할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겠지만 이제 내 나이도 고희를 훌쩍 뛰어넘은 일흔넷. "늙은이들이 친로(親老) 계열 출정식을 하는구나." 생각하니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201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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