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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캐나다의 칼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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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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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미국에 오면 모두 이방인이다. 원주민을 제외하면 모두가 이민자다. 심지어 같은 한국 사람끼리도 어설프고 낮설다. 반가움과 경계의 사이에서 선 이방인들이다. 한국 식품점 가게 문을 열고 나오다가 파아! 하고 놀라움의 비명을 터뜨렸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내 시선이 멈춘 곳에 ‘다방’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한글 아래에 한문으로까지 쓰여 있는 다방이 유리창 한쪽에 붙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만 웃고 말았다. 


너무나 반가운 단어였다. 대체 다방이라는 간판을 얼마 만에 보는 건가? 미국에 다방이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트럭을 향하던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다방을 향하여 돌아섰다. 이건 뭐, 7080 세대에 읍이나 시골동네에서나 봄직한 광경을 여기 매사추셋주의 조그만 타운에서 보게 되다니? 이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반드시 다방커피를 맛보고 가야한다. 응답하라 1988! 미국버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커피향이 풍겨왔다. 타운에 흔히 있는 작은 커피숍이나 다름없었다. 던킨, 스타벅스같은 체인점이 아닌 작은 동네 커피숍으로 테이블이 일곱 개 그리고 키친을 마주하고 있는 스탠드 바에 동그란 의자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마침 저녁시간이라서 손님은 없었다. 카운터 앞에서 메뉴가 적힌 간판을 올려보았다. 메뉴에 커피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라떼도 적혀 있지만 한쪽에 생강차, 홍차, 인삼차 그리고 아메리카노라고 한글로 적혀 있어서 절로 행복한 웃음이 소름 돋듯 흘러나왔다.


“뭘 드릴까요?”


젊은 아가씨, 옷차림으로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젊은 한국아가씨가 상냥하고 애교가 넘치는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메리카노 블랙으로 하나 주세요,” 


한국말로 커피를 주문하려니 묘한 어색함이 흘렀다. 테이블보다 카운터가 주방을 향해 마주 앉는 바를 택해 그 가운데에 자리잡고 앉았다.


“이 타운을 뭐라고 발음합니까?”


커피 머신 앞에 서 있던 그녀가 고개만 돌리며 미소를 보였다.


“에어, 다들 그냥 에어라고 불러요.”


아이어나 에이레보다는 에어라는 발음이 쉽고 친근감 있게 느껴졌다.


“에어에는 한국 사람이 많이 살아요?”


아가씨는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잔에 따르고 수저를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예, 많이 살아요. 그런데 아저씨는 처음 오신 거 같은데…”


“네, 지나가다가 들린 거예요. 저 길가에 세워둔 트럭 보이죠. 트럭 운전사입니다.”


내가 유리창 너머로 길가에 주차한 트럭을 가리키자 그 아가씨가 한층 높은 밝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저렇게 큰 트럭을 운전하세요? 힘들지 않아요?”


“힘이야 들지요.”


“대단하시다. 앞이 저렇게 큰데, 안에 뭐 있어요?”


“별거 다 있지요. 냉장고도 있고 전기밥솥으로 밥도 해먹고. ”


“와, 신기하다. 주로 어디로 가세요?”


“미국 아무데나 가요. 그러니까 북미대륙을 며칠씩 돌아다니지요.”


“오, 정말 재밌겠다. 아저씨는 좋겠다. 나도 가보고 싶은 데가 많아요.”


“어디를 가고 싶은데요?”


“음, 샌프란시스코요, 금문교를 보고 싶어요. 그런데 갈 수가 없어요.”


“가면 되지. 왜 못가요?”


아가씨가 갑자기 주위를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어서 빠르게 속삭였다.


“나는 여기서 아무데도 못가요.”


나도 덩달아서 슬그머니 주위를 살폈다. 주방 안에 그림자가 비쳤다가 사라졌다. 


“여기서 하루 종일 일하고 이 건물 2층에서 먹고 자요.” 


조그만 목소리로 얼른 덧붙였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낌새였지만 주방 쪽에서 나는 소리에 몸을 돌려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뭐지?’


서늘한 공기가 커피의 진한 향기 속에서 느껴졌다.  


아가씨는 혼자 주방과 홀을 오가며 혼자 일했다. 손님도 없으니 그렇게 바쁘지 않았다. 가끔 내 앞에 와서 이것저것 물어오기도 했다. 특히 트럭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이렇게 트럭 운전하는 한국 사람이 이런 조그만 타운의 커피숍에 오는 일은 드문 일일 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자동차 부품 회사에 픽업하러 갑니다.” 


“아, 그 회사 본 것 같아요, 요 기지 아래에 있는 큰 공장!”


“맞을 겁니다. 그런데 기지가 뭐죠?”


“군 기지 말예요. 미군부대, 여기 사람들은 그냥 기지라고 불러요.”


“아하, 그래요?”


바로 의문이 풀리며 이해가 되는 느낌이 왔다. 왜 이 조그만 마을에 한국식품이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미국이나 캐나다의 어떤 도시나 작은 마을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국기업이 진출해서 현지 공장이 있는 곳은 물론, 한국직원이 연수나 파견을 자주 나오는 원자력 발전소 같은 곳에서도 많이 보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미군 기지가 있는 도시 주변에 유난히 한국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버지니아 주에는 노포크 해군기지, 리피몬드 공군기지, 콴티코 해병대 기지가 몰려 있어서 한국계 미군이 많이 있다. 그리고 샌 안토니어 텍사스, 워터타운 뉴욕주, 캐나다 온타리오주 펨브록까지, 군 기지 주변에서 종종 한국인을 만났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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