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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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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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인민을 위한 피의 혁명과 32년 동안의 희생 다음에 3만5천명의 사제라니!” “흥분하지 말게, 동무.” 돈 까밀로가 말했다.


“숫자에 놀랄 건 없네. 러시아 사제들은 정부 고용인일 뿐이라네. 그 사제들은 교황을 ‘평화의 적’이라고 부른다네. 그리고 노주교, 알렉시는 말하기를, 스탈린이 하느님의 사자라고 했다네. 그러나 공산주의가 사제들을 정복했을지는 몰라도 종교와의 싸움에선 졌다네. 다른 두 개의 전쟁에서도 졌지. 즉 농민과의 전쟁, 부르조아와의 전쟁에서 말이오. 


소비에트 연방은 40년간 투쟁한 끝에 원자력을 소유했고 달나라를 정복했소. 소비에트는 미신적인 사교 대신에 과학이 일어 났고 본토 국민과 위성 국가의 국민을 복종하게 만들었지요. 소비에트 연방은 농업 개혁의 과정에서 1천만 명이나 되는 농민들을 죽여 없앴고, 구시대의 중산층도 없애 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러시아인들은 하느님을 찾는 일을 하기 위해, 그들이 힘들여 번 돈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농산물은 혁명 전의 수준 아래로 떨어졌고, 정부는 농민들의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들의 농산물을 자유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도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는 부르주아 계급이 생기게 마련이었지요. 동무, 화내지 말고 들어요. 짙은 푸른색의 더블 양복을 멋있게 맞춰 입은 당신 말이오, 그리고 상원의원과 당 지도자로서 받는 이중의 봉급, 당신의 은행구좌, 힘이 좋은 차를 사고자 하는 당신의 계획, 이 모든 게 부르주아의 싹이 자라고 있는 증거라고요. 그걸 부인할 수 있겠소?”


“힘이 좋은 차라니, 무슨 말씀이오? 난 중고차나 한 대 사려고 했는데요.” 돈 까밀로는 고개를 흔들었다.


“중요한 건 힘이 좋다는 것에 있는 게 아니고 원칙이 문제요.”


빼뽀네는 주머니에서 가죽 케이스를 꺼내어 커다란 투스칸 형의 여송연을 끄집어 냈다. 돈 까밀로 역시 어제 오늘 이틀 동안이나 그와 비슷한 향기를 그리워했던 터라,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는 가시 같은 말을 뱉었다.


“자네 말일세! 인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터에 혼자서 부르주아의 환락을 누릴 텐가?”


빼뽀네는 화를 내면서 그 여송연 담배를 둘로 잘라서 반 쪽을 돈 까밀로에게 내밀며 중얼거렸다.


“이 땅엔 사제들이 3만5천 명 가지고는 모자라는군. 동무까지 와서 합세해 줘야겠소!”


바로 이때, 뱃고동 소리가 울려왔다.


빨치산 호는 가벼우면서도 힘이 센 최신형 선박이었다. 배는 가볍고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항해가 시작되고 처음 한 시간 동안은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악마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거대한 파도에 밀려 배가 바위투성이의 해안가 쪽으로 밀려가지 않게 하려고 선장은 좀 더 잔잔한 날씨를 찾아 배를 더 먼 바다 쪽으로 항해했다. 그러나 폭풍우는 점점 더 심하게 불어왔고 배는 곧 위태롭게 표류하기 시작했다. 한 선원이 객실로 내려와 삼베 뭉치 같은 것을 마룻바닥에 던졌다.


“선장의 지시입니다. 구명 조끼를 입고 갑판으로 올라가십시오.” 페트로프나 동무가 알려주었다.


갑판 위에는 지옥이 무너져 내린 듯했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고 파도는 뱃전을 사정없이 때렸다. 하늘은 먹물같이 새까맣고 바람은 더 세차게 불어왔다. 키는 제멋대로 마구 돌아갔으며 구명보트는 두 척이나 쓸려나갔다. 


사람들의 모든 눈동자가 난간에 매달려 서있는 선장에게 쏠렸다. 그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 힘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배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의 꼬리 쪽을 들어 올리자 배의 앞머리가 바닷속에 가라앉는 듯했다. 파도가 갑판에서 부서지고 다시 배가 균형을 잡게 되자, 사람들은 주위를 돌아보며 인원을 세어보았다. 모두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빼뽀네와 그의 일행, 오리고프와 페트로프나, 선장과 6명의 선원들.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손에 잡히는 대로 꽉 잡고 기적적으로 첫 번째 파도로부터 살아 남았다. 그러나 다음 번에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막막하기만 했다.


배는 두 번째 파도를 맞아 물 속으로 쑥 내려갔다가 바다 위로 다시 떠올랐다. 창문이 깨져나가 선창 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빼뽀네는 절망을 느끼며 돈 까밀로를 돌아 보았다.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려면, 뭔가 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가 소리쳤다. 돈 까밀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을 억제하고 있었다. “예수님,”


돈 까밀로가 말했다.


“주님의 종으로 일하다 죽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그리고 타롯치 동무라는 가명은 빼뽀네를 제외한 그의 동료들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의 머리에 썼던 당원 모자를 벗어 버리고 주머니에서 만년필 속에 감춰둔 십자가를 찾아냈다.


그는 그 십자가를 그들의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들이 모두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페트로프나 동무와 선장과 선원까지도 그랬다. 다만 오리고 프 동무만이 그의 모자를 눈 밑에까지 푹 눌러쓰고 층계에 매달린 채 그 광경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예수님,”


돈 까밀로가 기도를 올렸다.


“이 불쌍한 자녀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가 기도하는 동안 파도가 뱃전에 밀려왔다. 또 다른 큰 파도가 갑판을 부술 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원하오니,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돈 까밀로가 폭풍우 속에서 성호를 그었다. 사람들도 성호를 긋고 십자가상 앞으로 기어와서 입을 맞추었다. 산더미 같은 물결이 갑판 위로 부서져 나갔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들을 위해서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다. 파도가 그들을 휩쓸어 버리는 일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갑자기 최악의 사태가 지나가 버렸다는 확신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은 모두 오리고프 동무가 모자도 벗지 않았고 무릎도 꿇지 않았음을 눈치겠다. 그러니 그들은 지금 믿을 수 없는 그 결과에 대해서 마음 속으로 의문을 품을 뿐이었다. 


오리고프는 입을 꽉 다물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페트로프나 동무와 선장과 선원들은 그의 위협에 가득 찬 눈빛에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이태리 사람들은 살아남게 된 것만도 너무나 기뻐서 그런 것쯤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배는 아직도 파도에 흔들렸지만, 선원들이 펌프마다 달라붙어 물을 퍼냈고, 승객들은 그들의 젖은 옷을 짜내고 있었다. 오리고프의 태도 같은 것은 곧 잊어버렸다. 폭풍우가 차차 가라앉자 배 위의 생활도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두 시간쯤 지나자 사람들은 보통 때처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결국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맹렬한 기세의 바다, 파도에 씻겨나간 갑판, 부서진 현창, 쓸려나간 두 개의 구명보트 정도는 해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배가 항구에 닿자 페트로프나 동무가 오리고프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까지 아무도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다. 건널 판이 제자리에 놓여 있었고, 빼뽀네와 그의 일행이 막 걸어 내려가려 하자, 페트로프나가 길을 가로막고 나섰다.


“우리는 오리고프 동무가 오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때 선장이 따라오더니 그녀를 갑판으로 데리고 갔다. 몇 분 후에 선장은 그녀를 다시 데리고 나온 다음, 얼굴에 웃음을 띠고 돈 까밀로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Kak trevoga,    tak do Boga.”


“이제 내립시다.” 페트로프나가 설명했다.


“불행하게도 마지막 파도가 오리고프를 쓸어 갔습니다. 당은 유능하고 헌신적인 사람을 잃은 것입니다. 한 용감한 용사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육지에 발을 딛게 되었다. 돈 까밀로는 점점 낮게 드리우는 구름장과 폭풍이 쓸어간 바다 사이로 오리고프 동무의 영혼이라도 보일까 하고 걱정스럽게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느님께서 동무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비네!”


그는 선장이 했던 이야기와 그 사실에 대해서 자신에게도 확신을 주려는 듯 혼잣말을 했다. 만일 선장이 그의 항해 일지에, 두 개의 구명 보트와 오리고프 동무가 항해 중에 행방불명 되었다고 쓴다면 그를 의심할 이유가 없게 된다.


베를린행 비행기의 이륙은 폭풍우 때문에 늦어지게 되었다. 비행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돈 까밀로는 스카못지아와 마주 앉아 있었다.


“자, 동무,” 돈 까밀로가 말했다.


“작별할 시간이 왔군요. 우리가 떠나버린 다음에도 동무는 계속 머물러 있겠지요.”


“싫습니다. 나도 동무와 함께 가겠소.” 스카못지아가 대답했다.


“페트로프나 동무가 당신이 남아 있도록 설득하지 못했구려.”


“그런 가능성은 말도 꺼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이태리 공산당이 나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좋소, 동무. 충실한 당원은 사랑보다 의무에 먼저 복종해야 합니다.”


스카못지아 동무는 한숨을 내쉬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버스가 공항 입구에 서자 사람들이 모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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