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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의 하고픈 이야기

"윤치호영문일기-유니스 윤경남 譯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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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제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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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호전적인 사람을 징계한다는 게 어렵진 않았나?” 즐거움에 반짝이는 빛이 어거스틴의 어두운 눈동자에 비쳤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주교님.”


 “어째서 어렵지 않았나?”


 “주교님께서 언젠가 강의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더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복수의 정신으로 싸우지 않고 사랑의 정신으로 싸운다면 사람의 명예를 지키는 적절한 명분이 된다’구요. 저는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주교님에 대한 저의 사랑이 주교님을 비방하는 자에 대한 저의 분노보다 더 컸습니다.”


 “아, 고맙네, 헤라클리우스. 이제 가보게.”


 성직자의 명예를 걸머진 홀쭉한 몸매의 그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마자 어거스틴은 그의 손을 양쪽 허리에 얹고, 몸을 흔들며 소리 안 나게 웃었다. 그의 눈엔 눈물이 고였고, 행복감이 그의 고달픈 영혼 위로 밀려왔다. 

 

 

∽ 39 ∽

 


영혼을 괴롭히는 것은 육신이 아니고 육신의 부패다. - 하느님의 도성

 

 

 

 

 

 

 415년 가을, 어거스틴의 주치의는 그가 활동을 중지하고 히포를 떠나 어딘가 조용한 곳으로 가서 쉬도록 권했다.


 “주교님은 일 때문에 몸을 버리고 계십니다. 제 말씀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몸을 못 쓰게 되어 다신 일어나지도 못하실 거에요.” 의사는 말했다. 


 어거스틴은 그 주치의의 말이 옳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피곤이 밤낮으로 그를 떠나지 않았다. 직무로 시달리는데다가 고질이 된 후두염과 심한 요통과 두통이 겹쳐서 밤이면 잠을 못 이루었고 따라서 식욕도 떨어졌다. 음식을 보기만 해도 토할 지경이었다.


 그를 극도로 피곤하게 만드는 두 가지의 불안한 일이 있었다. 410년에 일어난 로마의 몰락은 전 세계에 중대한 파문을 일으켰지만, 어거스틴에겐 정치적, 사회적 변화보다 더 큰 의미를 주었다. 문명국을 삼키고 있는 반달 야만족의 물결이 교회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물결이 아프리카 제국까지 뻗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알라릭의 뜻밖의 죽음도 고딕의 야망을 막지는 못했다. 조만간 침략은 오고야 말 것이었다. 어거스틴은 그 일이 일어났을 때의 결과를 상상만 해도 진저리가 났다. 그래서 로마가 붕괴된 다음 아프리카 교회에 올 충격을 대비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또 한 가지 관심사는 펠라기우스의 교리와 싸우는 일이었다. 어거스틴은 거의 혼자 힘으로 마니교와 도나티스트교의 중추를 부숴버렸다. 이 싸움에 승리한 그는 역사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을 적극적으로 해설하는 일에 몰두하고 싶었다. 그런데 펠라기우스와는 싸움의 성질이 달랐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점점 확대되어 그는 다시금 성직자의 싸움터로 나가야만 했다. 


 그 운동의 중심을 이룬 펠라기우스는 경건한 수도사였다. 어거스틴 출생 직후에 브리타인에 태어난 그 역시 고전을 배웠으며 어거스틴과는 달리 그리스 문화에 몰두했다. 그는 이미 동양 학문의 샘물을 깊이 들이 마셨다.


 그에게 어거스틴이 주장하는 인간 원죄와 은총의 교리는 저주일 뿐이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한 것이며 단지 한정된 신성의 도움으로만 인격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가르쳤다. 


 펠라기우스는 로마에 정착했다가 알라릭의 침략 소식을 듣고 위협을 느껴 북아프리카로 피신했다. 그 곳에서도 그는 카르타고에 친구이자 추종자인 코엘레스티우스를 아프리카 제국의 교리 옹호자로 남겨놓고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새로운 적과의 초반전에서 붙은 충돌은 그에게 신나는 결과를 갖다 주었다. 황제가 소집한 연석평의회에서, 원리를 부인하고 인간 본성에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구속을 위해 인간이 신의 은총에 의지하는 것을 거부하는 펠라기우스의 교리가 공공연하게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그 승리 덕분에 정통파의 기수에겐 값비싼 희생이 따랐다. 어거스틴은 너무나 많이 얻어터져 기력을 잃고 피를 많이 흘린 군사처럼 그 싸움에서 물러났다.


 몸이 그런데도, 그의 주치의가 쉬라고 경고했을 때는 화를 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내 양들을 버릴 순 없소.”


 “주교님이 돌아가시면 누가 그 양떼를 보살핍니까?” 의사가 찌르듯이 말했다.


 “그 때 가봐야 알겠지요. 아직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까요.”


 주치의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주교님만 고집 피우지 않으신다면, 크리스마스 안에 이 관구의 새 지도자를 낼 수 있다고 장담하겠습니다. 교회엔 유능한 사제들이 많으니까요. 그 사람들이 몇 주일 간만 주교님을 대신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내가 어디로 갈 수 있겠소?”


 “제가 적당한 곳을 알고 있습니다. 내 친구 하나가 자마로 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오아시스에 작은 별장을 갖고 있어요. 주교님을 모시게 된다면 영광으로 여길 겁니다.”


 마지못해 어거스틴은 이에 승복하고 말았다. 이틀 후 그는 하인 한 명과 헤라클리우스를 데리고 휴양지로 떠났다. 오아시스는 쓸쓸한 사막 위에 톱니자국을 내면서 삼각의 녹지대를 이루고 있고, 히포에 직장을 둔 사람들의 소유인 여섯 채의 작은 별장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집들도 해마다 그 때가 되면 모두 비었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낮이면 활활 타오르는 태양 아래, 밤이면 반짝이는 별빛 아래 쉬면서 카시키아쿰 이래로 처음인 휴가에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그에게 짧은 휴식을 가져도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해주지만, 조용히 속삭여오는 양심의 소리는 그의 포도넝쿨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게 아닌가 비난해 왔다. 


 어느 날 오후 그는 버드나무 아래 다리를 쭉 펴고 잔디 위에 누워 있었다. 사막의 따뜻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어거스틴의 옷깃을 너풀거리게 했다. 햇볕이 나뭇가지 사이로 그의 지친 몸 위에 스며들었다. 


그는 눈을 감고 누워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옛날에 타가스테 근처 사막을 거닐며 야인의 꿈을 키웠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누르려고 애를 썼다. 그것은 헛된 일이었다. 그 시절의 어둠이 그의 마음속에서 다정한 추억들을 지워버리고 마음을 무겁게 했다. 


 헤라클리우스가 오아시스 한가운데 있는 샘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가지고 왔다. 헤라클리우스는 물바가지를 땅에 내려놓고 주교께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으심을 알아차리고 발 밑에 조용히 누웠다. 그 젊은 사제는 어거스틴과 함께 소란한 세월을 고생과 갈등으로 지내는 동안 이와 같은 무언의 친교를 배운 것이다.


 그는 어거스틴 주교의 병이 육체의 병이 아니라 정신의 병이며, 이 축복받을 휴양지에 와 있는 것도 어거스틴이 현실세계의 소용돌이 속에 돌아가기 전에 잠깐 조용해진 기간임을 알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 침묵이 깨어졌다.


 “헤라클리우스.”


 “네, 주교님?” 사제는 고개를 들었다.


 “물 좀 마셔볼까?”


 헤라클리우스가 “물을 다시 떠오지요” 하면서 튀어 일어났다. 조금 후에 그는 물을 다시 떠가지고 나타났다. 그는 물바가지를 그에게 들어올렸다. 어거스틴은 조금씩 천천히 마셨다.


 “고맙네, 친구.” 환자는 잔디 위에 다시 누웠다. 


 “헤라클리우스, 그 물은 샘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이로군. 탱크 속에 모아두는 물은 생수가 못되네.”


 “그렇습니다.” 헤라클리우스는 열심히 대답했다. 그는 어거스틴에게서 철학적인 기질이 나타날 때가 가장 즐거웠다.


 “그래서 로마도 멸망한 것일세. 로마는 생수를 주지 못했네. 솔로몬의 말대로, 로마는 샘이 마르고 우물 구덩이가 막혀버리게 되었네. 그건 비극이지. 로마는 특권을 누린 도시였네. 로마는 진리와 지식의 샘이 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탐욕과 색욕과 불의의 야심이 모든 미덕을 쫓아내버렸네. 그러니 이 세상에 그게 무슨 불행한 결과인가 말일세!”


 “주교님은 로마를 퍽 사랑했지요.”


 “지금도 사랑하네.” 그는 어두운 눈으로 버드나무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네. 헤라클리우스, 자네한테 내 속을 얘기해볼까?”


 “무슨 말씀이든 받들겠습니다.”


 “난 다시 건강해 지면 내가 쓰고 있는 책의 저술을 계속해 볼 생각이네. ‘하느님의 도성’이라고 제목을 붙였네. 책 속에, 궁극에 가선 두 개의 사회, 두 개의 도시가 있는 걸 보여줄 셈이네. 둘 다 사랑으로 구성되어 있지.”


 “사랑으로요?” 헤라클리우스는 그의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경건한 마음으로 얘기를 들었다.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지.” 어거스틴이 계속해서 말했다.


 “지구라는 사회가 있네. 로마가 바로 그 상징이지. 그런데 그 도시는 하느님을 경멸하면서까지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형성되어 있네. 두 번째의 다른 도시는 하늘나라의 도시인데, 자기를 멸시하면서까지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형성되어 있네. 전자의 도시는 오직 자기 자신 속에서만 기뻐하고 후자는 하느님 가운데서 기뻐하네. 전자는 인간에게서 명예를 구하고, 후자는 하느님의 인정을 바라네. 전자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운데 우세하고, 후자는 서로 자비로써 형제에게 봉사하고 하느님의 율법에 복종하네.”


 헤라클리우스의 눈이 반짝였다. 


 “하나는 인간의 도시이며 또 하나는 하느님의 도시란 말씀이지요?”


 “물론 그렇지.”


 어거스틴은 등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여 몸을 웅크렸다. 이것을 알고 헤라클리우스가 무릎을 세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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