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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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제48회)
knyoon

 

∽ 35 ∽

 


악한 것을 보면 분격하십시오. 그러나 인간을 생각하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 마르셀리나에게

 

 

 “우리 교회도 자네가 필요하네. 우린 자네가 꼭 필요하네. 이리 와서 동의하게. 자네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말일세.” 그 노인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마지못해 어거스틴은 고개를 숙이고 주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거스틴은 순박하고 아름답고 불타는 정열로 올리는 발레리우스의 성직안수 기도가 그의 분노를 삭혀버리고 그의 영혼을 무한한 행복으로 넘치게 해주는 듯 했다. 


 발레리우스가 어거스틴에게 성직 안수를 하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노주교는 그를 불러 엄숙하게 말을 꺼냈다.


 “여보게, 난 자네가 부활절까지 내 대신 설교를 해 주었으면 하네. 이번 겨울은 몸이 좋지를 않네그려. 현재 내 힘으론 회중에게 봉사할 수가 없을 것 같네.”


 어거스틴은 소리를 지를 뻔하다가 참았다. 이것도 뭔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주교들만이 제단을 지켜왔던 것이다.


 “하지만 주교님, 전 설교에 경험이 없습니다.” 그는 이의를 말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부르셨을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게. ‘누가 그대의 입을 만들었는가?’”


 “그렇지만 주교님. ”


 히포의 주교는 성급하게 그의 턱수염을 잡아당기며 논쟁을 얼버무렸다.


 “이제부터 자네가 내 보좌로 봉사해 주는 것이 내 소망일세. 따라서 예비신자에게 세례도 주어야 하네.”


 사제의 마음속에 불안이 스쳐 지나갔다. 타가스테를 떠나온 게 다시 한 번 후회스러웠다. 그가 동요하는 빛을 보고 노주교는 부드럽게 타일렀다.


 “자넨 잘 해낼 걸세. 두려워하지 말게. 천국의 제단에서 가져온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주셨던 하느님께서는 자네의 입술에도 대주실 걸세.”


 그의 말은 예언자다운 데가 있었다. 다행히도 어거스틴은 설교를 시작하는 일이 냉욕탕에 뛰어드는 것 같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첫 번 충격이 사라진 마음의 반응은 굉장한 활기를 주고 있었다. 훈련을 받은 웅변가인 어거스틴은 이미 쉽고 유창하게 연설을 했던 것이다.


 그의 고질병인 후두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법이 세련되어서 수사학자들의 시기를 샀다. 반면에 그의 라틴어 구사력은 발레리우스를 훨씬 웃돌았으므로 회중의 찬탄을 받았다. 군중들은 주교의 새 보좌관의 설교를 들으려고 피이스 대성전에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그 해 사순절이 끝나갈 무렵 알리피우스가 친구를 만나러 북방에 왔다. 여러 달 만에 만난 그들은 성직자의 위엄을 벗어버리고, 서로 껴안고, 웃고, 장난으로 주먹질 하며 마치 어린 학생들 같이 굴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 자네가 설교하는 것을 듣게 되었네 그려!” 알리피우스는 여전히 아기 천사처럼 천진하고 애정 어린 밝은 얼굴로 말했다. 


 어거스틴의 모습은 더 야위었지만 학교 시절 이후로 그 활기를 조금도 잃지 않았다. 갑자기 그는 상을 찡그리며 몸을 틀었다.


 “난 자네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보이는 설교를 할까 봐 걱정이네.”


 “그건 왜?”


 “순교자 묘소 옆에서 벌이는 사랑의 축제라는 아가페 잔치를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네도 알지?”


 “응, 알고 있네.”


 어거스틴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했다. “이 히포에선 타가스테에서보다 더 난잡하더군. 한때는 천진난만한 잔치였는데 요란한 주연으로 악화되었지. 내일 나는 ‘환희의 날’의 죄상을 공공연하게 비난해야겠네.”


 환락과 주연으로 원래의 의도를 잃고 해마다 보내는 축제도 지나고 승천주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성행위를 즐기며 죽은 자의 무덤 옆에서 축제를 벌였던 것이다.


 그 날은 참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이 교회 밖에 있는 이교도들과 제멋대로인 축하식에서 손을 잡은 공휴일이었다. 어거스틴이 보좌직에 임명된 날부터 그는 그 문란한 행위를 물리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결심을 했던 것이다. 


 다음날 성전은 사람들로 붐볐다. 어거스틴은 바울서신에서 한 구절을 인용했다. 


 “너희는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들은 하느님의 성전을 무시하느냐? 그리고 갖지 않은 자를 부끄럽게 하려느냐?” 그는 이 구절을 두 번 읽고 설교 전에 회중이 따라 읽게 했다. 


 그는 웅변가의 수사적인 화려한 말을 피하고, 교실에서 강의하듯이 대화체로 말을 이었다. 알리피우스는 지방의 수도승들과 함께 서서 친구의 설교를 자랑스럽게 듣고 있었다. 그는 저 끝에서 들려오는 따뜻한 음성 가운데서 길고 신성한 음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음성이 금새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알리피우스는 어거스틴이 비난 설교를 하기 전에 청취자의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풍부한 지략을 보고 놀랐다. 어거스틴은 창백한 얼굴로 제단에 앉아 남자석에서 부인석 뒤의 계단극장까지 날카로운 시선을 두루 던졌다.


 그는 쉬운 말을 골라서 문맹자들도 잘 알 수 있는 비유로 표현하며 말씀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생한 영상이 떠오르도록 기술을 다해 설교의 요지를 전했다. 


 “낙타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걸어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은 포식하지 않고는 이 세상의 사막을 건너갈 수 없습니다. 아, 바카스의 제자들이여, 하느님 나라에선 주정뱅이에게 줄 유산이 없다는 걸 언제 깨달을 것입니까? 현대의 거짓말쟁이들이여, 생명은 그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물 이상의 것이며, 육체는 육신의 옷감 이상의 것임을 언제 깨달을 것입니까? 하느님께서는 간음하는 자들을 성스러운 정의의 계율로 심판하시리란 것도 언제쯤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까?” 그는 열변을 토했다.


 알리피우스는 갑작스런 분노의 물결이 사람 사이에 술렁거림을 곧 알게 되었다. 히포 사람들의 폭발하기 쉬운 기질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뚱뚱하게 살찐 붉은 얼굴의 사내가 옆에서 오른손을 치켜들고 소리지르자 회중의 항의가 언제 터질지 걱정스러웠다. 


 “‘환희의 날’은 베드로 성당에서도 거행되었소. 만약 그것이 나쁘다면 왜 허락했습니까?”


 다음엔 뒤에 있는 다른 남자가 주의를 끌기 위해 발을 구르며 말했다.


 “어째서 교회는 카르타고에서 춤추는 일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합니까? 그게 나쁜 짓이라면 말입니다.”


 “그래요, 왜 그렇지요?” 회중이 소리쳤다. 뒤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발을 구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왜지요? 왜 그렇습니까?”하고 떠들어댔다.


 알리피우스는 공포심이 생겼다. 타가스테에선 이런 일로 교회가 소란스러운 적이 없었다. 이 혼란을 어거스틴은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까? 여기서 당장 설교를 끝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주교보(主敎補) 어거스틴은 제단 뒤에 태연히 앉아있었다. 속으론 어떤 걱정이 일어나고 있건만 겉으론 침착하기만 했다. 장군이 부대를 사열하듯이 분노한 얼굴들을 훑어보며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평온해졌을 때에도 그는 설교를 하지 않고 몇 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제야 그는 제단 위로 몸을 굽히고 두 손으로 단상 모서리를 꽉 잡고 침착하게 말했다.


 “여러분께 얘기를 하나 하고 싶은데, 들으시겠습니까?”


 분노로 중얼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도 반박하지는 않았다. 어거스틴은 똑바로 앉았다.


 “어떤 대중 웅변가가 아주 열심히 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웅변을 하는 동안에 자기의 연설 내용에 자기가 취해버렸습니다. 그는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한 것처럼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발을 구르고, 서커스 하는 사람처럼 자기 몸을 내던지고 했습니다. 주먹으로 벽을 두들기고 부수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니 청중이 지칠 때까지 고함을 질렀습니다.” 


어거스틴은 말을 중단하고, 검은 눈으로 회중을 둘러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는 다시 몸을 앞으로 굽혔다. 


 “마침내 한 점잖은 남자가 청중 가운데서 앞으로 나오더니 바울이 빌립보의 간수에게 한 말을 그 웅변가에게 던졌습니다. 너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우리는 다 여기에 있노라.”


 침묵이 계속되더니 드디어 웃음소리가 종소리처럼 잇달아 울려 퍼졌다. 알리피우스는, 그렇게 전격적으로 분위기가 달라지는 건 처음 보았다고 혼자 말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원한이 호의로, 분노가 환희로 바뀌었다. 예배자들은 갈채를 보내며 옳소 하고 소리쳤다. 처녀들은 베일 속에서 킬킬거렸고, 이가 없는 노인들은 히쭉 웃었다. 한편, 군인과 선원들은 무릎을 치고, 관리는 우습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교회가 다시 조용해지자 어거스틴은 설교를 계속했다. 로마나 카르타고에서 그리스도교가 ‘환희의 날’을 인정한 것은 이교도에게 일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므로, 지금은 그것을 없애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제는 그런 타협을 버릴 수 있는 진실한 신앙이 일어나고 있다, 히포가 이러한 개혁에 앞장선다는 것은 큰 자랑이 될 것이다. 이렇게 그는 말했다.


 나머지 설교를 하는 동안 그 이상의 방해는 없었다. 어거스틴이 축도를 마쳤을 때 청중은 마음을 억제하며 생각에 잠겨 회당을 빠져나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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