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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향 김수잔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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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를 닮은 모니카 언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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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를 닮은 모니카 언니(상) 

 

 

 


이른 봄부터 힘들게 싹을 피워 태양아래 무성하게 자라서
봄 여름 가을꽃을 아름답게 피워주는 자연의 순리는
우리 인간에게 주신 한없이 고마운 하느님의 섭리(攝理)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아름답던 잎들도 꽃들도 스산한 가을바람에 곱게 물든 잎도
하나씩 떨어지고 마르고 하면서 많은 날을 즐겁고 기쁨을 안겨주었던
그들이 곧 이별 준비를 하는 요즘의 밤 기온 2-3도에는
견디기 힘든지 시들시들 힘이 없어 보이고
서서히 늦가을로 들어가는 요즘 정원 꽃들의 모습
꽃다운 청춘에서 노년으로 우리 인생사와 무엇이 다르랴
무서리가 내려도 견디는 국화향이 우리 곁에 아직 남아 있어 
서정주의 국화꽃 옆에서가 생각나며
가을 향기를 지닐 수 있음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지

 


6-10월 사이 아름답게 피었던 코스모스도 힘없이 쓰러지는
몸뚱이를 짤라 버릴 때 아련한 추억에 잠기면서
허전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코스모스를 유난히 좋아했던 둘째 언니 모니카가 생각나서다 
그 언니는 우리 칠 남매 중에 셋째로 위로 맏언니와 오빠, 아래로는
여동생 셋과 남동생 하나가 있었다

 


우리 형제 중 공부를 제일 잘해서 늘 일등을 놓치지 않았고
교리공부도 열심히 잘 해서 공소 판공 때마다 
신부님께서 칭찬도 하셨고 상도 많이 탔고 모범이 되어
신부님께서 수녀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한다
그 당시 우리 집 농사는 일꾼이 주로 하고 우리 아버지는
늘 배우고 싶은 열정이 대단하셔 무엇을 배운다고 일본을 자꾸 드나드셨다 한다

 


한문 신력이 상당한 수준이셨고 삼백여 가구 되는 우리 동네일도 보시고
동네 사람들이 한문으로 공문이 오면 우리 아버지께 왔고 대서(代書)도 하셨다
면소 일로 근무도 하시면서 늘 바쁘고 부지런하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딸이 많아 우리 엄마를 구박하는 할머니 때문에 엄마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보이시는 
일본서 사 오신 귀한 비단 주머니도 이불속에서 전해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당시에 아버지가 엄마 선물을 사 오셨다는 것
참 자랑스러운 우리 아버지로 최고의 존경심을 가졌다
당시 일본에서 영세 하셔 천주교 신자가 되신 아버지는 동네 공소를
우리 집 마루에서 공소 예절 보시면서 예비자를 모아 들이며 교리를 가르쳐
판공 때 신부님 오시면 영세자를 많이 내신 분이다.

 


모니카 언니는 성격이 꼭 아버지 닮았고 머리도 좋다는 말을 어릴 적에 들었는데
그런 언니가 그 때 사정으로 동생들에게 양보하느라 공부는 중학교 밖에 못 하고 
수녀가 되고 싶어 여러 수녀원에 지원했으나 지금에 비하면 아주 엄격해서
몸이 약하고 특히 심장이 안 좋다고 가는 곳마다 불합격이 되어 튼튼해지면 다시 
지원하라는 통지를 받을 때마다 실망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언니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교리를 열심히 배워 교리 선생으로
평생을 독신으로 동정을 지키겠다 선언해서 중매가 들어와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꽃을 유난히 좋아한 언니는 우리 엄마가 정원을 잘 가꾸었는데 모니카 언니가 좋아하는
코스모스도를 정원에 또 구석구석 많이 심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코스모스가 피면 꽃 속에서 방긋이 웃는 사진 한장 찍고 싶다고 했는데
그때는 카메라가 귀해서 어떻게 사진 한 장 못 찍고 언니가 소녀 시절을 훨씬 
지난 후에 코스모스와 찍은 사진이 몇 장 남아 있을 뿐이다

 


언니도 코스모스처럼 가냘픈 몸에 청초한 모습이 꼭 닮은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찍부터 아버지께 배운 교리를 이웃에게 가르치고
소문이 어디까지 갔는지 후에 본당신부님이 부르셔서 전교회장으로 교리를 가르치라고 하셨다
우리 공소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영세 신자를 내게 되어 
그 당시 영세신자가 얼마 안되니 대모(代母 godmother) 서줄 사람이 한계인 
사정이라 영세 할 때마다 그 누구임을 또 나이를 불문하고 대모를 서게 되어 
대녀 숫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도 교우들이 우리 언니 명칭을 대모님 아니면 회장님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신부님 순명으로 먼 다른 성당으로 발령을 받아
전교 교리 회장으로 집을 떠나 팔도 강산을 언니를 필요로 하는 성당은 
다 가서 열정을 다해 교리가르치는 모습에
여름 방학 때면 엄마가 만들어 주신 된장 고추장 싸 들고 
언니 있는 성당에 열심히 일을 도와 드리고 용돈도 받고 서로 얼마나 좋아했는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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