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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 침묵 피정 3박4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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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5일(금요일). 제네시(Genesee) 피정 3일째 날이다. 아침기도 (Laudo Mass)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나서는데 손전등 두 개 중 한 개만 작동되어 되는 것은 수녀님들께 드렸다.


조그마한 손전등인데 수녀님 바로 뒤에 따라가면 불편하실 것 같아서, 우리는 조금 떨어져 몇 발자국 가니 깜깜해서 도저히 길을 가늠할 수가 없어 차를 탔다. 걸어서 5-6분 거리를 차를 타면 둘러서 가기 때문에 겨우 미사 시간에 도착했는데, 라틴어 미사를 애써 따라 하려는 토마스의 모습이 신기하고 참 고맙게 생각되었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숲 속으로 하느님을 만나러 토머스 머턴의 "침묵 속에 만남"이란 영적 독서 한 권 갖고 갔다. 어제 보았던 오솔길인데 간밤의 바람에 삭정이와 단풍잎이 여기 저기 떨어져 있고 가을 향기가 물씬한 산책길이 아주 좋았다.


중간쯤 자연석 위에 원죄 없으신 성모님 상이 모셔있었는데 그 앞에서 한참 머물면서 감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기도 지향을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를 위해서 영육간 건강과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했다. 아는 분들의 이름은 일일이 호명하면서, 또 아무도 돌보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바치면서 모든 성인의 통공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시간에 위로와 감사의 시간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요한 작은 호숫가에 아담한 의자가 있어서 피곤한 다리를 쭉 펴고 쉬었다. 잔잔한 호수 위로 하루 살이 벌레인지 날아다니고 고운 물결이 비단결처럼 펼쳐지며 예쁜 잠자리도 사뿐사뿐 여기저기 보이고, 아름답고 조용해서 내 마음이 아주 고요에 머무는 시간이 되었다.


돌아오는 다른 길에서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를 만났고, 나무 사이 사이로 맑은 청잣빛 하늘 아래 산속 어디서 모터(motor)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저 멀리서 수사님 한 분이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계셨다. 토막을 잘게 또 부수는 작업이 아마도 거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가까이는 못 가고 일하시는 수사님을 향해 손 흔들면서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소서, 속으로 주모경과 화살기도를 바쳐드렸다.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베네딕도 성인의 정신을 따르는 기도와 노동을 통해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완덕의 길로 나아간다. 새벽 2시 15분에 기상하여 기도와 묵상 그리고 아침 식사 후 6시 아침기도(일반인이 참석할 수 있는) 후,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일하시다가 시간에 맞추어 성당에서 함께 기도하며 하루의 일과를 보내신다. 


수도자들을 볼 때마다 세상 죄인들의 보속을 대신 하시는 것 같아 어느 영성 가의 말에 '수도원은 세상을 벗어나서 살아가는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이 거처하실 수 있는 자리로 세상의 중심부이다'라고 하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관상하시는 천상적인 모습에 한없는 존경심이 갔다.


나는 그간 수도원의 묵직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그 안에서 기도하시는 거룩한 수도자의 모습에서 거친 한 토막나무 같은 내 모습을 돌아보며 무거운 나무문을 매번 조심해서 밀고 들어선다.


저쪽 산책길에 사슴과 노루 같기도 한 큰 짐승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이 낙원이 이런가 생각이 들었다. 헨리 뉴엔 신부님의 글 속으로 또 걷는 것 같았다. 신부님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어떤 새의 노래인지 알 수 있다 했는데 감수성과 관찰 그리고 순수한 마음에서만이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참으로 꿈같은 사실이다.


가다가 다람쥐 만나면 줄려고 빵을 갖고 갔는데 사람이 옆에 가도 꼼짝도 안 하던 놈들이 오늘따라 몇 마리가 잽싸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 버렸다. 이따 먹겠지 하구 그냥 땅바닥에 쏟아 두고 그들도 만나는 피정객에 호강 하리라 생각이 든다.


넓고 숲 속 공기도 경치도 좋은 수도원에 30여 명의 수도자 중 노인이 많아서 성소자가 줄어드는 요즘 앞으로 이 수도원을 누가 이끌어 갈 것인가? 내 작은 머리로는 걱정이 되었다. 


문득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이사야 55,8)는 말씀이 생각나서 걱정했던 나의 어리석은 생각을 부끄럽게 접으면서 그 말씀이 나의 큰 묵상이 되기도 했다.


짜인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나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이번 침묵 피정을 통해서 '말은 침묵으로부터 성장하여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어느 영성 가의 말이 생각나서 늘 수없이 쏟아낸 내 말 중에 무미건조한 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피상적으로 되지 않도록 많은 침묵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 동안 제대로 생각지 못한 것들 또 기억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침묵 중에 조용히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은혜로운 이 시간이 뼈까지 스며드는 감사다.


1시 30분에 유진 신부님께 고백성사 보도록 연락이 왔다. 긴 시간으로 두 수녀님들 마치고 토마스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니 너무 긴장해서인지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차분하게 영적 말씀을 잘해 주셔서 마음이 아주 평화롭고 은혜의 시간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4:30 오후 기도(Vespers)에 수녀님들이 일찍 나가시는 기척이다. 우리도 서둘러 나가는데 식탁 위에 쪽지가 보였다.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토마스 수산나 부부님!
4:30 기도에 우리는 먼저 갑니다.
문 잠그시고 열쇠는 집 앞에 있는 가운데 사철나무 밑에
잘 넣어두시면 먼저 오는 분이 문을 열 수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은총의 시간 되십시오.


- 김 이시도라 수녀, 손 레오 수녀 드림

 

기도 후, 우린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 잠깐 드라이브 나가서 가게에도 들려 몇 가지 과일과 좋은 와인도 한 병 샀다. 남편 토마스의 마지막 저녁이라는 말에 술도 한잔 마시면서 저녁 식사를 하자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할 수 없다고 웃어 버렸다.


오는 길에 트라피스트 주위 다른 피정 집도 구경하고 오다가 수녀님들을 만나 산책하러 함께 갔는데 숲 속으로 자꾸 들어가서 돌아오는 길에 수도원을 찾을 수 없어 좀 헤맸지만, 수녀님들은 피곤도 모르고 내일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섭섭하다며 며칠 더 머물고 싶다 하시며 갑자기 침묵이 풀려 토마스가 좋아했다.


이제 살겠네! 며칠 말을 못 하고 지내니 답답해서 힘들었다 한다. 더 머물고 싶어도 다른 피정자들의 예약이 되어 있어서 우리는 내일 오전에 방을 비워야 한다.


저녁 식사 시간에 와인을 토마스가 따랐다. 피정 와서 술이 어디서 나왔냐고 수녀님들이 깜짝 놀라셨다. 토마스가 미안하게 웃으면서 피정기간이지만 마지막 저녁이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잔하고 싶다 하니 수녀님들도 웃으시며 좋다고 축하의 잔을 높이 들었다.


와인을 마시는 저녁 식사가 참 좋아서 나는 속으로 토마스가 와인 준비를 잘 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저녁을 더 맛있게 먹었고 창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이 쏟아지는 제네시 언덕을 바라보며 은혜의 밤이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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