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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Genesee) 3박4일 침묵 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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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bbey of the Genesee, 3258 River Rd. Piffard, NY 14533. 


2007년 10월 3일(수요일) 위 주소를 손에 들고 지도를 보면서 우리 일행(김 이시도라 수녀님, 손 레오 수녀님, 우리 부부)은 캐나다에서 약 4시간 운전해 트라피스트 봉쇄 수도원에 도착했다.


몇 주 전 김 수녀님께서 저희와 같이 피정 갈수 있느냐고 문의해 오셨을 때, 너무나 뜻밖의 일이고 또 다른 사정도 있어서 즉시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 저의 남편 토마스가 봉쇄 수도원에서 침묵 피정을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해서다.


일단은 남편 토마스에게 수녀님의 말씀을 전하니 한참 생각 후 부족한 저희와 함께 가자고 하신 말씀은 너무나 고맙지만 자기는 3박 4일이나 봉쇄수도원에서 무거운 침묵 피정을 할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먼 거리라 그곳까지 당신이 운전하기 힘드니 운전만 해주고 돌아와 있다가 끝날 우리 일행을 픽업해 주겠다”는 대답이었다.


모처럼 수녀님의 귀한 부탁인데 토마스의 거절을 어떻게 전해 드릴까, 고민을 하다가 일단은 토마스의 마음이 열리도록 나의 가장 큰 힘이 되시는 주님께 기도를 드려보기로 하고 수녀님께 거절한 이유를 말씀 드렸더니, 수녀님도 절대로 강요하지 말고 아직 2주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같이 갈 수 있게 우리 열심히 기도 드리자고 하셨다.


매일 열심히 기도 드리면서 나는 남편 몰래 갈 준비(반찬 등)를 하나씩 하면서 기도의 응답을 은근히 기다리며 그 이의 눈치만 보았다. 침착하게 기도로 기다린다 했지만 날짜가 차츰 가까워져 오자 조바심과 동시에 한편으론 만약을 위해 내가 운전해 갈 수 있는 준비로 찾아 가는 길을 열심히 익히면서 대답을 기다리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떠나기 며칠 전 저녁 식사 시간에 남편이 함께 가서 머물겠다고 한다. 너무나 고맙고 반가워서 즉시 수녀님께 전화 드리니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주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전화의 목소리가 아주 밝으셨다.


우린 약속이나 한 듯이 큰 소리로 함께 행복한 웃음소리를 얼마나 크게 냈는지, 옆에 있던 남편 토마스도 그렇게 좋으냐며 큰 웃음과 함께 저녁식사 시간이 온통 행복한 분위기가 되었다.


우린 수녀님들과 함께 피정을 할 수 있는 것만도 무척 감사했다. 토마스가 방향감각이 좀 좋아서 처음 길인데 잘 찾았고, 수녀님들은 차창 밖의 캐나다 가을 경치를 보시면서 좋아하셨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제네시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P 신부님에게 들으셨는지 수사님 한 분이 “Welcome Sisters and Thomas and Susan”하시며 친절하게 맞아 주셨고, 나중에 알고 보니 숙소가 여러 곳에 있는데 우리를 수도원에서 가까운 곳에 안내해 주셨다.


숙소에 짐을 내려 놓고 받은 안내문을 읽고는 숲 속에 있는 제네시 풍경이 하도 좋아서, 맑은 햇살에 황홀한 가을단풍 숲이 너무 아름다워 숲을 잠깐 거닐었다. 알맞은 온도에 익어가는 가을 향을 마음껏 마시며 나무 사이사이 보이는 하늘이 얼마나 맑고, 파랗고, 높은지 첫날부터 숲 산책길에 푹 빠졌다.


잠깐의 산책에서 돌아와 부엌을 둘러보니 먼저 피정을 하고 간 사람들이 두고 간 올리브 기름, 파스타, 스파게티 소스재료, 양파, 종류별 Soup, 허브차, 소금, 밀가루, 여러 가지가 조금씩 남아 있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냉장고 안에는 몇 가지 음료수와 빵과 쨈 등 당장 요기와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우리도 집에 갈 때는 다음 사람들을 위한 마무리를 눈과 가슴으로 해야겠다는 산 교육을 받았다.


배에서 쪼르륵 신호가 연달아 나왔다. 우선 준비해 온 것 먹기로 했다. 오면서 간식은 대충 했지만, 오후 3시로 들어가니 배가 고파서 밥맛이 꿀맛이었다. 식후 따끈한 허브차를 마시면서 애기를 나누다가 안내서를 찬찬히 읽어보니 기도 시간이 되어 서둘렀다.


남편 토마스는 간단하게 저녁 준비한다고 남아 있고, 우리 일행은 4시30분에 있는 수사님들 기도에 참석했다. 약 30명의 수도자 수사신부님들 대부분 연세가 드신 분으로 숙련되신 차근하고 낮은 음성의 합창 기도가 거룩하고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첫날이라 기도 책을 따라 할 수도 없고, 여기저기 찾다가 기도 시간이 끝났다. 며칠 피정 동안 단 한편이라도 따라 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녀님들은 라틴어를 알아듣겠지만 우린 어차피 이해도 못하고, 수사신부님들이 드리는 거룩한 목소리만 들어도 기도가 될 듯하고, 첫날 저녁 기도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숙소로 돌아오자 남편 토마스의 솜씨인 chicken stew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수녀님들께서 깜짝 놀라시며 요리솜씨가 어쩜 이렇게 좋으냐고 아낌없는 칭찬을 하시면서 맛있게 많이 먹었다. 토마스는 어색한 표정으로 “16년간 캐네디언 레스토랑을 운영한 조그마한 경험”이라며 빙그레 웃었다. 저녁식사 후부터는 침묵으로 들어간다고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라는 김 수녀님의 말씀에 이어, 손 레오 수녀님은 몇 년 전 우리 예수성심성당의 두 수녀님(홍 루피나 수녀님과 김수녀님)을 모셔다 드리려 다녀가셨다 하고 총원장 수녀님이라 하셔서 깜짝 놀랐다.


말씀도 적으시고 그간 쌓으신 수도자의 덕과 겸손의 향기가 온몸에서 풍기셨다. 김수녀님의 안내로 돌아가면서 간단히 자유 기도를 바치고는 침묵으로 들어간다 하셨고 수녀님들은 피곤한지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속으로 ‘부족한 저희를 이곳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이번 피정 동안 하느님을 더욱 가깝고 뜨겁게 만나고 싶습니다. 내 마음을 당신께로 돌려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변함없이 머물게 도와주십시오.’하고 간단한 기도 중에 뜨거운 눈물이 갑자기 핑 돌았다.


밖을 보니 사슴들이 여기저기 뛰노는 평화로운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정신 없이 쳐다보면서 이곳을 왔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이 절로 나왔다.


우리도 방에 들어가서 짐을 풀어 정리하는데 4일간의 피정이라 우리 둘의 옷도 신발도 간단하고 ‘삶의 리듬’(인생 철학 에세이. 박도식 지음), 토머스 모어 기도묵상 작은 책, 신구약합본성서(해설판 공동번역 성서 국제가톨릭성서공회 편찬)등이 전부였다. 


쓰기성경은 그 동안 내가 매일 써왔고, 토마스도 가끔 쓰기도 해서 하루도 빠질 수 없어 각자의 묵상 시간 때 쓰기로 했고, 마침 방에 조그마한 책상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성서와 일기를 쓰는 동안 초저녁 잠이 많은 남편은 벌써 코를 골며 깊이 잠들었다. 먼 길 신경 쓰며 운전하고 저녁식사 준비도 했으니 피곤도 할만하다. 토마스 모어 묵상을 읽으니 좋아서 더 읽고 싶지만, 새벽기도 시간에 늦지 않게 나도 일찍 침대에 들었다. (2007년 10월 3~6일, 3박4일간의 제네시 침묵 피정 때 쓴 일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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