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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 김치맨
kimchiman2017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다. 살아간다는 건 마치 흐르는 듯 마는 듯 조용히 흐르는 강물과 같이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 좋은 젊은 시절이 다 가버린다. 문자 그대로 젊은이는 쉽게 늙어버린다(小年易老). 


 김치맨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20년전 서울에 갔을 적에 어느 꼬마가 “할아버지!”라 불러서 깜짝 놀란 적 있다. 한창 나이 50에 할아버지 소리를 듣다니? 객지인 토론토에서 살면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는 반백에다가 주름살투성이니 천진난만한 어리아이 눈엔 영락없이 노인네로 보였을 게 아닌가?


 평균수명이 짧았던 20세기에는 스무 살도 안돼 시집 장가가는 조혼이 일반화돼 있었다. 동갑내기 조부모님은 큰아들인 부친을 21살 때 보셨고, 부친 역시 만21세 때에 큰아들 김치맨을 득남했다. 그래서 조부모님께서는 만 42살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다. 


 1974년 말에 20대 후반의 젊은 총각 시절에 토론토로 홀로 군복무 후 학업도 채 마치지 못한 채 이민 떠나온 김치맨이다. 이민 올적엔 살기좋다는 캐나다에 와서 돈 많이 벌어 고국의 부모님께 보내드려야겠다 했는데 그게 맘대로 안됐다. 특별한 기술이나 장사해서 돈 벌 재능도 없으니 별도리 없이 공장을 6년이나 다녔지만 혼자 벌어 나 살기에도 급급했다. 


 7년전 아버님을 사별하신 우리 어머님은 나이 18세에 가난한 초등학교 선생과 결혼하셨다. 없는 살림에 우리 5남매를 키우시고 모두를 대학까지 보내신 어머님은 평생을 가난과 고생 속에서 사셨다. 아버님께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끝으로 교직에서 은퇴하신 후 두 분은 토론토에 사는 아들 넷을 따라 이민 오셨다. 


 돈벌이나 사업에는 재능이 없는 선생댁 아들들! 장남인 김치맨은 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바동댔지만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로 돌아가고, 그 여파로 두 차례에 걸친 가정파탄을 겪었다. 그런 형편이니 부모님께 효도는커녕, 마음만 아프게 해드렸고 걱정만 하시게끔 해왔다. 김치맨은 불효자다. 핑계를 대거나 변명을 할 수도 없다.


 우리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타자로 나선 야구선수는 날아오는 공을 향해 배트를 휘두르느냐 마느냐의 선택을 순간적으로 해야 한다. 골퍼가 홀안에 공을 넣기 위해서는 몇 번 골프채로 어떻게 쳐야만 할까? 골프채 휘두를 적마다 고민하며 결단을 내린다. 김치맨도 43년 캐나다의 삶에서 숱한 선택을 거듭해왔다. 그런데 무능해서인지 운이 안 따라주어서인지 하는 일마다 깨졌다. 


 사업들에서의 실패는 두번의 이혼이라는 쓰라린 인생실패들을 결과했다. 나이 50에 세번째 새 가정을 꾸려 토론토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동네들을 전전하며 편의점을 차리며 새출발을 했지만 쪼들리는 생활을 지금껏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멀리 계신 토론토의 부모님을 문안과 봉양은커녕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다.


 김치맨은 그동안 동창회, 향우회 등 모임과 행사에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런데 지난 9일 열린 호남향우회 야유회엔 모처럼 참석했다. 해마다 여름철에 가져오던 온가족 야유회 대신 향우회에 모두 참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왕할머니 9순 어머님과 모두 60이 넘은 네 아들, 그리고 손자, 손녀, 증손자, 증손녀까지 모였다.


 7년전 작고하신 부친과 어머님께서는 오랫동안 블루어 토론토한인노인회의 열성 회원이셨다. 아버님은 노인회 이사, 감사 직책 등도 맡으셨고 이사장도 하셨다. 그리고 어머님께서는 노인회 이사로 오래 봉사하시고 있다. 어머님께서는 연만하시고 거동도 좀 불편하시지만 노인회 행사들엔 꼭 참석하신다. 


 이달 30일(토)에 블루어 크리스티공원에서 워커톤및 한가위축제가 개최된다. 이 행사는 한인노인회(회장 최승남), 토론토한인회(회장 이기석), 온타리오한인교회협의회(회장 하영기 목사) 및 코리아타운BIA(이사장 이승진)가 공동주최하는 축제이다. 노인회는 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한다. 워커톤(Walk-A-Thon)은 그 운영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운동이다. (관련기사: www.budongsancanada.com/WebPage.aspx?pageid=58&blog=budongsancanada&idx=61090)


 어머님을 모시고 워커톤 행사에 참가하고 돕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형편이 못된다. 문득 가게 지하실에 10년 넘게 묵혀있는 태극기가 생각났다. 그 태극기들은 2004년경 김치맨이 시작하다 중단한 태극기보급운동을 위해 상당량을 수입해 온 것이다. 그동안 친지들에게 나눠주었지만 아직도 꽤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태극기 100개를 어머님께 드려 어머님께서 기증하시도록 했다. 곱고 먹음직스러운 쟁반위의 조홍감도 유자도 아닐지언정 잠시라도 어머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하는 불효자 김치맨!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아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그리고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어라 커늘 짐조차 지실까] 송강 정철 선생의 가르치심이 생각나는 일요일 아침이다. (2017.09.17)

 


 

▶이민 1세부터 2세, 3세가 9순 왕할머니와 함께(호남향우회 야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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