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김보경 칼럼

심리학자, 토론토대학교 철학박사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2 전체: 14,909 )
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2)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화엄사법계는 인간으로 하여금 사사무애법계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안으로 뛰어 들도록 요구한다. 사사무애법계란 우주만물이 생동하며 서로 하나가 되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게 하는 지금 바로 이 세상이다. 사람은 다만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불교에는 화엄사법계와 더불어 유식삼성(唯識三性)이라는 가르침도 있다. 이것 역시 인간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세 가지 단계로 되어있다. 유식삼성의 첫째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다. 이는 사람의 지각과 판단은 마치 “어스름한 밤, 길 앞에 가로 놓인 새끼줄을 보고 뱀을 보았다고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어떤 것도 진실한 모습 그대로 볼 수 없음을 지적한다. 


둘째의 의타기성(依他起性)이란 연기(緣起), 즉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현상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게 되기도 하고 또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의타기성은 화엄사법계의 이사무애법계에 해당된다. 


셋째의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사물의 형상이나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까지도 그것은 모두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어떤 것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그 본질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게 된다”는 것과 같이 “빈 것”임을 지적한다. 


원성실성 역시 사람이 단지 유식삼성을 머리로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자신의 본질을 회복하여 비로소 모든 번뇌망상으로부터 해방되는 길, 진리 안으로 들어가라고 촉구한다. 


화엄사법계나 유식삼성은 공통적으로 지금 우리가 자신의 본심이라고 믿고 있는 마음이 망상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진실한 모습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동시에 우리가 자신의 본성에 일치되는 방향을 취함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설정해 준다. 


화엄사법계나 유식상성은 인간 사회나 우주를 유기체로 보고 있다는 점과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과학과 심리학과도 연관되며, 또한 사람의 몸을 창조주가 거하시는 성전으로 비유하거나 사람을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 비유하는 성경말씀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사무애법계나 원성실성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서의 성도의 모습을 보게 된다.


8. 깨달음 


깨달음이 무엇인지는 화엄사법계가 설명해 준다. 우선 인간 사회나 우주자연을 갖가지 꽃들이 모인 화원으로 본다. 사회나 우주의 한 쪽 자락을 끌어당기면 전체가 딸려 나오는 거대한 그물로 보거나, 여러 모양과 색깔의 유리 조각들이 모인 결과인 모자이크로 보거나, 만다라(Mandala)로 보는 것도 화엄법계에 해당된다. 


깨달음이란 자신이 아름다운 화원을 이루는 한 송이의 꽃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자기라는 것은 없어지고 전체의 부분으로서의 자기만이 있을 뿐이다. 그가 있으므로 화원이 있고, 화원이 있으므로 자신이 산다. 즉 자신이 사사무애법계의 일부로서 자기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 곧 깨달음이다. 


깨달음의 경지가 무엇인지는 바울 사도가 성도를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로 비유함에 판박이로 나타난다. “그리스도”란 “세상을 구원하실 분”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는 분이다. “그리스도”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스도”는 생명과 창조의 원천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사람의 “몸이 성령으로 채워진 성전으로 기능하는 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인간이 우주자연의 부분으로 남아 있는 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가 몸에 붙어 있는 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