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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칼럼

심리학자, 토론토대학교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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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인간의 본질(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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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공의 지혜는 현실과 직결되어 있다. 사람은 공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비록 자신의 현상학적 경험으로서는 자신이 전체와는 분리되어 있는 것과 같이 느끼고, 인간이 자연이나 환경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고 또한 자유로워야 하는 존재로 보이게 되는 것이지만 실은 한 발자국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둥치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생존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인간은 그렇게 허망한 생각에 잠겨있다. 인간의 이성이니 인간중심이니 인본주의니 하는 것이 모두 인간의 몸을 창조주가 거하시는 성전이라 하거나 인간을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라고 하는, 실제를 부인하고 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자기라는 것이 없는, 공으로 붙어 있음으로써 포도나무가 가지가 가진 지혜를 조금의 손실도 없이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이 포도나무 가지에 싱싱하게 움트는 새싹이며 아름다운 꽃이며 열매다. 이를 공의 지혜라 한다. 공의 지혜야 말로 창조며 생명이다. 


포도나무에 튼튼히 붙어 있는 가지는 어떤 것도 “억지로 애쓸 것”이 없다. 포도나무 둥치에 붙어있는 그대로 한 없이 자유롭고 또한 완전하다. 이러한 경지는 우리 자신들로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거나 항상 체험하고 있다. 허망한 생각만 일으키지 않으면 마음은 항상 편안하다는 사실의 체험이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 위에 다시 생각이 일어나 결국 그 생각의 종착점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은 행동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트레스라고 부르기도 하며 긴장과 불안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또한 번뇌망상이라 하기도 한다. 그와는 반대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심신이 안정되고 스트레스나 불안과 연관되어 일어나는 신체적 질병까지도 치유된다는 사실을 안다.


불교에서는 생각과 더불어 일어나는 것을, 탐진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세 가지 사람을 죽이는 독소, 삼독(三毒)이라 부르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을 때 얻게 되는 것으로, 계정혜, 질서와 고요함 그리고 “모든 것을 알게 하는” 지혜라 부른다. 우리가 탐진치에 빠져 있을 때는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탐욕으로 밝아진 눈은 “산을 산으로도 보지 못하게 하고, 강을 강”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 분노로 역시 그렇다. 분노로 휩싸인 마음은 자신과 이웃을 해치고 자신을 해친다.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 역시 자신을 망친다. 그러나 계정혜가 일으키는 기적은 경이롭다. 


계는 법칙과 질서로, 부분과 부분 그리고, 지체와 지체를 한 몸으로 묶는 지혜가 된다. 계를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이다. 예수님이 십계명을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고치신 것과 같다. 정은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으로 모두가 평화를 얻고 심신의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혜는 곧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모든 것을 아는 지혜”가 된다. 그것은 머리나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주자연과의 통합적 관계에서 우주자연과 공유하게 되어 있는 지혜를 몸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됨을 말한다. 


계정혜는 삼학(三學)으로 배워가야 할 학습과제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우주나 자연에 속한 지체로 인간이 본심으로 가진 적응기제다. 계정혜는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그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공식이 된다. 


예를 들어 시험을 앞에 둔 학생이라면, 우선 계는 자신을 시험에 집중하도록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는 기초가 된다. 둘째 정은 심신을 고요하게 하고 주의를 집중하게 하는 방법으로 준비한 만큼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심리적 태도가 된다. 그리고 셋째 혜는 시험에서 자신이 보여주게 될 지혜다. 


계정혜, 사랑과 평화 그리고 모든 것과 소통하며 공감하게 하는, “일체지(一切智)”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로 보거나, 우주를 갖가지 꽃으로 장식된 화엄(華嚴)의 세계로 보거나, 인간을 우주의 부분으로 보는 유기체관에서는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없는, 공통분모가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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