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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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41)-“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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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21. 연기(緣起)의 이법(理法) 


불교는 이전 경험으로 학습된 마음, 분별망상을 소멸 또는 탈 학습시킨다고 하는 면에서 왜 선 수행과 같은 독특한 방법을 적용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구체적으로 내어놓고 있다. 연기의 이법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연기란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우주자연의 원리’로, 불교에서는 “연기를 본 자는 부처를 보고, 부처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할 만큼 연기는 불교사상의 핵심이다. 


연기란, 예를 들어 나무에 달렸던 사과가 지구인력에 의하여 땅으로 떨어지게 되고, 산소와 수소가 만나서 물이 되고, 왜 본래 청정했던 마음이 이전 경험으로 더럽혀지게 되었는지 등을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연기의 법칙, 연합의 법칙, 인과의 법칙으로 설명하면서, 동일한 법칙에 따라 생기게 된 분별심을 동일한 원리를 이용하여 제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분별망상이 일상생활에서 생긴 유전연기(流轉緣起)의 결과라면, 그렇게 생긴 분별망상을 없애는 방법으로도 역시 동일한 연기의 이법을 적용하되 이번에는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소멸되게 해버리는 환멸연기(還滅緣起)를 적용한다. 지금의 관점에서 말하면 불교가 견성을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물리학적 또는 화학적 법칙을 적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불교의 연기법은 동양에서 인간을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는 우주와 통합된 관계로 보는 것과도 병행하고, 서양철학에 있어서의 연합주의(Associationism)와도 병행한다. 또한 연기의 이법은 현재 연합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학습이론으로서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이 개체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으로 어떻게 학습되는가를 설명하는 법칙과 일치되기도 한다.


연기의 이법은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볼 때 도출되는 법칙이다. 연기를 기독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요한복음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한 것과 같은,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은 없다는, 총체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유기체로 비유될 수 있다면 연기의 이법 역시 그러한 세계의 법과 뜻에 일치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에는 사법인(四法印)이라는 네 가지 명제(命題)가 있다. 사법인은 연기를 바탕으로 한다. 첫째는 제행무상(諸行無常)으로 모든 것은 연기하는 것, “이것이 변하면 저것도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둘째는 제법무아(諸法無我)로 모든 것은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정된 자기’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며, 셋째는 일체개고(一切蓋苦)로 모든 것은 연기로 계속 변하여 가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고통이 아닐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넷째는 열반적정(涅槃寂靜)으로 연기하는 모든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은 ‘비어 있는 것’, 즉 공(空)이므로 사람 역시 공의 본질인 무위(無爲)에 머물게 할 때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사법인은 우주자연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한 몸에 속한 지체와 지체들이 서로 무아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 법인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모든 것을 각각 ‘자기라는 고정된 실체를 가진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욕심이 생기고 분노가 생겨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우리는 연기의 이법과 연관시켜 분별망상이 일으키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두 가지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기초적 단계로서 지금의 과학기술자들이나 학습이론가들이 예시하는 것과 같이 물리학이나 화학의 법칙, 즉 연기의 이법을 적용하여 인간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기도 하고, 또한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하여 사람의 마음이나 행동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학습하고 발달해 가도록 통제하거나 조종할 수 있다. 이 방법에는 자타나 내외나 선악이라는 지식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둘째는, 고차적 단계로, 인간 역시 우주자연의 법칙, 연기의 이법에 의하여 일거수 일투족이 통제되게 되어 있는 것이므로, 연기의 이법에 자신을 무아로 일치시킴으로 본래 우주와 통합된 본질로서 자신이 가진 자연지 또는 기본지가 자신의 분별망상에 의하여 어떤 방해도 받지 않도록 놓아 둘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전자를 연기의 이법을 적용한 방편에 속한 것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깨달음’으로 자신이 우주의 본질인 연기의 법에 자신이 합류되도록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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