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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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35)-“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16)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아버지는 오늘도 대문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아들을 보자 끌어안으면서 기뻐하고 그에게 비단 옷을 입히고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면서 아들의 특권을 되돌려준다. 


잃어버렸던 소를 찾게 되면 이전의 것은 모두 잊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집에 돌아온 탕자 역시 이전의 것은 잊어버려야 한다. 만일 그가 계속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또한 아버지를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아버지가 집으로 다시 돌아온 아들에게 바라는 바가 아니다.


아들이 아들로서의 특권을 되돌려 받았다면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를 향유하며 아버지에게 본래 보기 좋았던 아들로서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율법을 완성한다는 것도 그렇다. 사람이 율법에 매여있다는 것은 아직도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에서 후회하며 아버지의 용서를 빌고 있는 상태다. 그에게는 아직도 탕자로서의 흉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율법의 완성은 아들이 아버지의 품에 안겨 아들로서의 특권을 얻게 된 때를 말한다. 


그는 이제 이전의 아들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아담의 망심은 사라지고 아담의 본심을 회복한 것이다. 그는 이제 율법에 매여 선으로 악을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본심으로 선악이라는 관념조차 없이 선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교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발견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면서도 그들은 아직도 탕자가 돼지를 치면서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가 그를 종으로라도 부리며 먹을 것이라도 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계신 곳을 멀리서 바라보며 아버지의 용서와 자비를 빌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를 주종의 관계, 귀천의 관계, 미추의 관계 이상으로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밝아진 그 눈, 자신의 벌거벗고 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된 그 눈, 두려움으로 떨며 나무 사이에 숨게 만든 그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아담과 이브가 낙원으로부터 쫓겨난 이후 동침하여 낳은, 두 아들 중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죽여 버린 카인의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과 행동에는 선과 악, 성과 범, 귀와 천이라는 분별심으로 특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외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행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일깨워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온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 곧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아들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율법이란 아직도 선악이라는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담의 후예들에게 하나님이 하나의 방편(方便)으로 내려준 것이다. 이제는 그 때가 지나고 예수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이 온 것이다. 인간의 본심을 회복한다는 것은, 곧 그 안에 최고의 선(善)이 본심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예수님의 피와 살이 자신의 피와 살이 된다. 예수님의 숨이 자기의 숨이 된다. 이제는 자신의 생각으로 선함을 억지로 성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본심을 방해하지 않음으로 보시하면서도 보시한다는 관념이 없는 참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게 된다. 

 

18. 일체지(一切智)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하거나 “너희 몸은 성전”이라고 하거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거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성서의 본의는 무엇인가?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라는 ‘지식의 열매’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알게 됨으로써 남자에게 있어서는 노동의 고통, 여자에 있어서는 산고(産苦)라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두 가지, 즉 아담/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하는 것과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를 따먹고 눈이 밝아졌다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말인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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