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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칼럼

심리학자, 토론토대학교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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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26)-“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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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물이 곧 파도’인 것과 같이 고요한 마음에 바람이 일어나 파도가 일면 그것은 곧 지옥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 내부의 등(燈)에 밝은 불이 꺼지지 않고 타고 있으면 그것은 곧 은혜가 되고 지혜가 된다. 사망과 부활의 관계 역시 그렇다. 


바울 사도가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선 경우가 바로 소위 자신이 자랑하던 지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에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선과 악을 분별하고 누가 선하며 누구 악한 사람인가를 율법에 따라 정죄하는데 있어서는 그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며 율법을 무시하는 예수의 언행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지만 그가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그는 ‘문득’ 율법에 앞서는 사랑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그 후로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을 대변처럼 버린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성령으로 태어난 것이고 성령으로 하나가 되고 성령을 숨 쉬면서 살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을 우주와 통합된 존재로 보고 또한 인간이 우주와 본래 공유하게 되어있는 본질로서의 지혜에 의존하여 살게 되어있다는 사실에서 보는 경우라도 틀린 것이 아니다.


아담의 망심에 의존하여 예수님을 보면 예수도 미친 사람이고 바울도 미친 사람이다. 인간의 생각과 판단은 진리와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부모의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태어나지만 예수님을 형제로 영접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누구나 예수님과 동일하게,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얻게 된다. 


선에는 대승경전(大乘經典으로 금강경(金剛經)이 있다. 금강경은 “보살은 보살이면서도 보살이라는 관념이 없고, 보살은 보시하면서도 보시한다는 관념이 없다”고 설한다.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던 성인들의 모습에서도 그러한 보살행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반야의 지혜, 무념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여 모두가 성령으로 하나가 되고 성령으로 숨을 쉬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지은바 된 것이 없다. 


13. 체(體)와 용(用)


인간의 몸이 오장육부라는 서로 다른 모양과 성질을 가진 기관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를 만들 듯이 하나님이 창조한 천지만물들 각각 서로 다른 구조와 기능을 가지면서도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빛은 어둠을 밝히기 위한 것이고, 해와 달은 낮과 밤을 위한 것이고, 궁창은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하늘은 공중에 나는 새들을 위한 것이고, 물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를 위한 것이고, 모든 곡식과 열매들은 사람과 동물들이 먹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사물마다 서로 다른 구조와 기능을 선(禪)에서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 부르기도 하고 체(體)와 용(用)이라 부르기도 한다. 성서에서는 사물마다 서로 다른 본래면목이 흩트려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 이면에도 어둠으로 혼돈된 상태에 있었던 천지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질서와 평화를 되찾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태초에 하나님이 계획한 인간의 체와 용은 무엇이며, 인간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인간의 본래면목이 무엇인가를 창세기는 명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몸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인간은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코 안에 숨을 불어 넣으심으로 생기를 얻게 되었으며, 또한 아담,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에 이름을 부쳐주며 돌보라고 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책임과 기능을 준 것이다.


그리고 성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각각의 사물이 지은바 그대로의 본래면목을 상실하게 되었을 때 저주를 받도록 되어 있음을 똑똑하게 보여준다. 예로서 씨앗이 땅에 떨어져 충실한 곡식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쭉정이만 되면 추수할 때 불에 타 없어지게 될 것임을 지적하기도 하고, 무화과나무에 잎만 무성한 채 배고픈 사람에게 내어줄 열매가 없으면 저주를 받아 마르게 될 것임을 말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돈이 적다고 하여 그것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대로 내어 놓는 종을 “게으르고 악한 종”으로 저주를 받아 쫓겨나게 되어있음을 각성하게도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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