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3 전체: 110,474 )
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23)-“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4)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본래 무념으로 자유스러웠던 본심이 선이나 악이라는 관념에 집착되어 자승자박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전에는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고, 이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였으나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 이제는 벌거벗은 몸을 나뭇잎으로 가려야 했고, 하나님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어야만 했다.  


 아담의 자손인 우리의 마음 역시 그렇게 이전 경험으로 고정된다. 본심이 무엇에 엉기어 망심이 된다. 아담의 본질은 하나님의 본질과 다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무모한 생각에 엉켜 버림으로써 본래 완전한 그들의 본심을 상실해 버린 것처럼 우리의 본심도 있는 그대로만 유지하면 모든 것이 온전하게 되게 되어 있는 것을 생각을 일으킴으로써 불행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이는 아담이 저지른 죄, 원죄(?)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도 아담과 같은 본심을 가지고 있으나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어떤 인연으로 생각이나 행동이 고착되어 본래의 유연성과 가변성을 잃어버리게 됨으로써 각자 서로 다른 성격으로 굳어져 버리고 또한 각자 서로 다르게 자신과 사물을 지각하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고 또한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은 사회적 고립을 의미하기도 하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보상하려는 마음은 그런 척함과 같은 위선을 하게하고 또한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보상하기 위하여 경쟁하게 하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든다.


이것은 곧 한 몸에 속한 지체들로 서로 의존하게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파괴하는 반역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그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아담과 이브에게 진노하시며 그들에게 고통의 저주를 내리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담의 본심과 예수님의 본심이 서로 다르지 않았으나 아담은 뱀의 유혹에 빠진 것이고, 예수님 역시 사탄의 시험을 받았으나 그 시험을 이겨냈다. 예수님 역시 인간의 마음과 다름없는 마음을 가졌으므로 수많은 괴로움과 갈등을 느꼈으나 그것을 이겨내셨다. 아담의 본심, 예수님의 본심, 인간의 본심이 모두 같다. 문제는 어떻게 본심을 더럽히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을까에 달려 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한 하나님의 외아들이기 때문에 인간과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예수와 인간을 성범이나 귀천이나 미추로 분별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음과 동시에 자신을 역시 “사람의 아들(人子)”로 말하면서 세상에서 천대받은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형제자매로 항상 그들과 함께 하신 것이나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인간 누구나 예수님 자신과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신 것처럼 인간의 조상 아담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숨으로 생기를 얻게 되었다고 하는 점에서 보면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인간 사이에 자타나 내외나 선악이라는 분별은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이 세상에 온 목적이 바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자신과 하나님을 분별하게 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담을 쌓게 된, 그 경계를 넘어뜨리기 위한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육으로 난 인간은 본래 악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믿거나 또한 아담의 원죄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고정설이나 숙명설로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믿으면서 마치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이 ‘십자가’에 절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신이 십자가를 진 것같이 각자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자신을 갈라놓게 하는 인간 자신의 욕심과 어리석은 마음을 내려놓고 태초로부터 하나님이 인간의 본심으로 넣어 주신 성령으로 다시 하나가 되고 또한 성령을 숨 쉬게 됨으로써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구할 수 있다는 복음이 된 것이다.


십자가의 의미는 죄를 지은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자신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게 하는데 있다. 즉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믿음”의 종교가 아니라 인간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성부와 성자가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이, 인간 역시 성령으로 성자와 성부와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