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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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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과 서(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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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죄인이라는 생각을 넘어 삶 자체가 죄스럽고 짐스럽게 버겁던 나날이었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나가도 자꾸만 그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는 듯 가슴 쓰린 통증이 짓누르던 생활에서 홀연히 벗어나 대지에 두발 딛고 우뚝 선 상쾌함이 용솟음쳤다. 


벽에 걸려있는 밀레의 만종이 푸근한 대지의 향기를 안개처럼 흩뿌리고 있었다. 저녁노을을 등지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농부의 아내가 자신인 듯 평안과 감사가 끓어올랐다. 


‘아멘’ 기도가 끝났는데도 두 손을 깍지 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영’을 팔 굽으로 툭 쳤다. 기도는 필요하다. 정신세계에서 찌꺼기를 걸러주고 새롭게 쇄신하기 위한 전능자와의 대화로서 기도는 절대 필요하다고 확신하였다.


 ‘프레드’ 목사와 ‘훈’은 밤늦게까지 리빙룸에서 한담을 하고 있었다. 음양학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주장과 목사님의 개혁신학종교관이 어떻게 합일점을 찾았는지 다 듣지 못하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날 ‘프레드’와의 대화를 이렇게 전해주었다. 


“한국의 일반 목사들 하곤 격이 다르지. 학위를 받고 공부를 많이 한 목사로서 서슴지 않고 자기비판도 할 줄 알고 주장이 명확하더군. 이론적인 종교로서야 모든 종교가 다 합리적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활인의 종교로서는 기독교의 박애정신이 으뜸이라고 하더군.”


청교도들에 의해 이룩된 미국은 사랑의 실천신앙으로 개척된 나라임을 되새기게 하였다. 200여 년 전 새로운 신앙의 자유를 위해 메이플라워(Mayflower) 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뉴잉글랜드의 혹독한 겨울과 싸우고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 박애운동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세계인류가 하나님 앞에 똑같이 사랑받을 존재임을 삶 속에서 솔선하고 있었다. 


오래 전 성가대, 주일학교반사로 봉사하던 신앙의 그루터기가 비장된 보배처럼 빛을 발하며 새로운 삶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에 왕성한 힘을 실어주었다. 

 

호숫가 별장 ‘투굿투큇’(TUGUDTUQUIT)


커피향이 코끝에 넘실대서 눈이 떠졌다. 벌써 8시, 늦잠을 잤나 보다. 집에서는 6시만 되면 벌써 깨어서 수선을 떨 텐데 조용한 걸 보니 아마도 어제의 여정에 애들도 몹시 피곤했던 모양이다. ‘릴리안’이 애들은 자기가 봐줄 테니 염려말라며 옆방에 재워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정말 푸욱 잘 잤다. 아빠는 이미 일어나 나간 듯하였다. 퍼뜩 새 정신이 들어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달려갔다. 


 “하이 ‘수지’ 굿 모닝. 잘 잤어요?” ‘릴리안’이 웃으며 인사하였다. 


“엄마!” ‘영’이 달려와서 허리를 얼싸안는다. ‘현’은 크리브 안에서 맘. 맘. 소리를 질러댔다. 두 아이를 씻겨서 똑 같은 모양의 셔츠와 바지로 갈아 입히고 머리까지 곱게 빗겨 놨다. ‘영’의 얼굴엔 베이비로션이라도 발랐는지 콧잔등이 반짝거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떻게 내가 그처럼 세상 모르고 잘 수 있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친정집에 다니러 온 착각이 들었다. 내 방에서 푹 자고 나온 듯 가벼운 기분이었다. 친정부모 같은 ‘릴리안’과 ‘프레드’. 하나도 낯설지 않고 스스럼이 없어졌다. 


마음대로 집안을 돌아다니고 수선을 떨면서 응석 어린 억지를 부려도 격의 없이 다 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없이 편안하고 안락한 마음이 햇솜처럼 포근하게 온 몸을 감싸주었다. 


“고마워요”라고 밖엔 할 말이 없었다. “천만에 말씀. 문제없어요.” 화답이었다.


“ ‘타이용’ 저기 언클 ‘프레드’에게 가봐요.” “오케이”


 언클 ‘프레드’와 앤트 ‘릴리안’이라는 호칭이 당연한 듯 경쾌하게 후다닥 뛰어갔다. 


 식당전면 창으로 내다보이는 뒤뜰은 20여 미터 저쪽부터 깊은 상록수림으로 둘러있었다. 군데군데 새 모이통을 매단 정원수 사이로 석상을 세우고 화단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7월의 밝은 아침햇살에 날개만 파닥이는 작은 새들이 모이통 주위를 부지런히 날고 있었다. 


“하이 ‘수지’, ‘톰’ 굿 모닝.” 또그르르 구슬 굴러가는 맑은 소리가 울려왔다. 


“ ‘톰’ 이라고 옆집 친구가 붙여준 이름이래요.” ‘페이스’가 깔깔거리며 설명하였다. 


 “그새 자기소개를 정식으로 한 모양이군.” 모두들 소리 내어 웃었다. ‘현영’은 출생신고 때 영문이름을 ‘헨리’라고 기입했지만 ‘태영’은 영문 이름이 없었다. ‘언클’, ‘앤트’, ‘톰’, ‘헨리’… 새로운 명명식의 아침이었다. 


 식탁상석에 앉은 ‘프레드’ 목사님이 반절짜리 신문을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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