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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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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과 서(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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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게일’이 어느 날 무심히 들려준 이야기도 있다. 8월에 이사를 가기 위해 집을 내놓고 한 중국인과 계약이 거의 성사되려는 때였다.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아이비엠 일을 한다는 이 중국인 부부는 아주 조촐하고 교양도 있어 보였다. 


하루 저녁 이웃집 사람들 몇이 찾아왔다.


“집을 중국인에게 팔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집을 자기 마음대로 팔고 사는 거야 자유이지만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중국인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으니 중국인들께 집을 팔지 않는 것이 살던 마을 이웃에 대한 온정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해 매매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도 너희 집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미안해.” 


 약간 빼딱한 음성으로 되받았었다. 


“오. 너도 그런 생각이냐. 도대체가 모두들 멍텅구리 돌대가리들 생각인 걸. 그들은 타민족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동족끼리도 다른 고장에 가면 질시를 받을 사람들이야.” 


‘게일’이 극구 변명을 하고 기분을 가라앉혀 주었지만 미국엔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텃세와 인종적 우월감이 미국인들의 생각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 ‘릴리안’이 사는 이 동네는 아무래도 그보다는 더 할 것 같은 초조감이 생겼다. 


 “저건 무슨 차에요?” 


“글쎄 아주 옛날 차 같은 데…”


앞이 둥글고 차체가 높은 구식의 검은 색 자동차가 드라이브 웨이를 기어 올라왔다. 소리도 요란스럽게 크르릉, 크르릉 하는 차가 집 앞을 지나갈 때 ‘숙’은 놀란 얼굴로 아빠를 돌아보았다. 까만 양복에 흰 컬러를 세운 사제복의 ‘프레드’ 목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마미 대 디 왔어요.” ‘페이스’가 소리지르며 뛰어나갔다. 


“하. 하. 하. ‘프레드’ 목사도 걸작이군 그래. 이제 봤더니.” 아빠가 웃었다. 지금까지 하던 우울한 생각들을 단숨에 날려버린 홀가분한 웃음소리였다. 


1950년대의 구식 ‘닷지’ 차를 아직도 끌고 다니는 인간성이라면 하나도 걱정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거기다 대면 메뚜기 차는 오히려 새 모델이었다.


“녹이 슬어서 그렇지 어때. 이차 엔진은 아주 좋은 거라구.” 


 눈을 찡긋하고 어깨를 재며 문으로 나갔다.


“하이. 닥터 ‘쏭’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내일부터 며칠 쉬려니까 어찌나 할 일이 많은지 다 정리하다 보니 이렇게 늦어졌군요.”


 “닥터 ‘쏭’ 차를 안에 넣어요.” 


“아. 우리 차는 밖에 두어도 됩니다. 다 낡은 차인걸요.”


“네? 하. 하. 새 차가 안에 들어가야지 헌 차가 들어가서야 되겠습니까.” 그도 닮아가는지 껄껄 웃더니 기어코 닥터 ‘쏭’ 차를 안에 넣게 하고는 들어왔다. 


“오호. 하이. 타이용! ‘헨리!” 


만면에 웃음을 띠고 악수를 청하였다. ‘숙’이 손을 잡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애들이 시끄럽게 해서 참 미안합니다.”


“노오. 난 아이들 아주 좋아합니다. 애들 떠드는 소리야말로 삶의 소리 아니겠습니까.” 


“노오. ‘수지’ 우리 집도 그리 조용하기만 하진 않아요. 피아노가 꽝 꽝 거리구, ‘푸 씨’가 짖어대구…” 곁에서 ‘릴리안’이 감싸며 위로해 주었다. 


“옆집 ‘마가렛’네엔 이제 막 한 살 된 어린애도 있어요. 이 플레이 팬 그 집서 빌려왔지요. 플레이 팬을 리빙룸 한가운데 펼쳐놓고 ‘현’을 그 안에 넣은 뒤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하얀 테이블보를 씌운 식탁에는 은수저와 은그릇들이 빳빳하게 다려서 접은 하얀 리넨냅킨과 함께 제자리에 반듯하게 차려있었다. 목사님 댁의 오랜 관록이 밴 정중한 손님맞이 식탁이었다. 


 “디 어 갇. 당신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멀고 먼 한국에서 온 이들 젊은 가정을 우리 가까이에 불러주사 우리로 하여금 주 안에서 모든 인류가 형제 됨을 알게 하여 주심을 깊이 깨닫고, 더욱 감사 드립니다. 어머니의 모태를 떠나듯 먼 이곳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들 젊은 가족 모두를 주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여 주시고 당신의 사랑이 충만하기를 비옵나이다. 아 멘” 


 ‘장 발장’이 은 촛대를 훔치던 목사님 댁에서의 저녁 식탁이 언뜻 떠올랐다. 기도를 들으면서 서럽도록 경건한 감동을 받았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속삭임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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