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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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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변경선 동과 서(44)-슬픔의 치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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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일주일이 넘도록 매일 울었다. 우유를 먹이다가도 눈물이 흐르고, 함께 TV를 보다가도 돌아보면 어느새 눈물이 온 얼굴에 번져있었다. 슬픈 일을 봐도, 기쁜 일을 봐도 모든 것이 절망이라는 감정 하나에만 매어 있는가 보았다. 


애써 평온을 찾으려 하고 명랑을 가장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슬픔은 몸 밖에서 안으로 기어 들어갈 뿐 슬픔자체는 조금도 떨어버릴 수 없이 온 몸에 퍼져서 어디서든 그 슬픔은 취각처럼 맡을 수 있었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귀찮아 보였다. 아마 아이들만 없다면 그대로 어딘가에 쭈그리고 앉아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일어나 먹이고 입히는 것이 천만다행한 일이었지만 때로는 오히려 그것들이 더욱 슬프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시시각각 죽음의 고통으로 몰고 가는 무저항의 어머니와 생존의 욕구를 빈틈없이 울어대는 어린 생명들 사이에서 삶의 처절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영’이 불안한 얼굴로 아빠만 부르며 따라다녔다. 소파에서 자던 것 거두어 이층으로 올라왔다. 애가 울면 같이 깨고 우유를 먹이고 진자리 갈아주는 동안 옆에 앉아서 지켜주었다. 


일주일 동안 그러다 보니 머리가 빙빙 도는 듯하고, 앉았다 일어나면 눈앞에 노란 점들이 어른거렸다.


 “이러다간 안되겠어.” 결국 둘은 똑같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건강한 조력이 필요한 것이다. 아빠마저 약해져서야 가족을 지탱할 힘이 없어질 뿐이다. 


“자 오늘 저녁엔 드라이브나 나가자.” 


마음 내켜 하지 않는 ‘숙’과 애들을 전부 태워가지고 어둑한 거리로 나왔다. 아직은 임시면허 소지 중이니 특별히 조심을 해야 할 때라서 밤 운전은 피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네온사인이 휘황한 거리에 나오면 잠시 모든 것을 잊고 점차적으로 마음의 평정을 회복할 것이라 기대하였다.


도시의 겨울밤 풍경은 불야성의 천국이었다. 건물 안에서 가로등에서 퍼져 나온 불빛이 어둠을 살라먹고 따뜻한 열기로 온 누리를 데워주고 있었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거리는 따뜻하고 다정한 친밀감으로 마음을 감싸주었다.


 이윽고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하였다. 빨리 돌아가자고 하였지만 예정한 코스를 다 돌아갈 심산이었다.


“ ‘현’이만 잘 안고 있어” 그대로 달렸다. 지나치는 차에 탄 사람들을 무심히 스쳐보았다. 네온이 껌벅거리면 코가 큰 실루엣의 알록달록한 옆모습이 확 떠오르다 사라졌다.


쿡 쿡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면서 마음은 조금씩 평온에 잦아들었다. 내 얼굴에도 감성의 네온이 빨갛게 파랗게 퍼덕이고 있을 것이다. 깜깜한 밤하늘 아래 펼쳐지는 번잡한 도시의 인생무대는 나 또한 주어진 배역에 충실한 연기자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였다. 

 

교통사고


 휴식을 취하면서 재생되듯 밤거리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어어, 엇, 별안간 급한 소리와 차 바퀴 긁히는 소리가 찌~익 나면서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가 뒤로 튕겨왔다. 쾅, 하고 부딪치는 둔탁한 반응이 차 앞에서 울렸다. 


사고로구나! 직감한 순간 온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아빠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한동안 핸들을 잡고 넋이 빠진 듯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앞 차 문이 열리더니 중년부부가 다가왔다. “오우. 애기들 모두 무사합니까?” 얼결에 고개만 끄덕였다. 충돌하기 직전에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앞차의 뒷부분은 우리 차의 범퍼와 맞닿아 있었다.


 길옆에 끌어다 놓고 자기 차를 한 바퀴 둘러 본 신사는 별로 파손된 곳은 없는 것 같다며 그냥 돌아가려고 하였다.


 “아 여기가 깨졌군요.” 오른 쪽 테일 라이트가 깨져 있었다. 순간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치는 듯하였다. 자동차보험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임시면허 소지기간인데 이제 운전도 고만인가 보구나 하는 절망이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였다.


깨진 주위를 이리저리 만져보던 그 신사는 잠시 무얼 생각하는지 잠잠하였다.


“실은 한 20일 전에 내가 차 사고를 한번 당했습니다. 그 후 차를 바꾸었지요” 자기 차의 미터기를 보여주었다. 1천 마일도 못나간 새 차였다. 그는 사진관을 경영하고 있다며 아빠의 직업이 무어냐고 물었다. 


“딱 터 ‘쏭’. 나는 또 차 사고를 보험에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행히 딱 터 ‘쏭’ 애들도 모두 무사하고 내 차도 이것만 갈아 끼면 깨끗할 것 같으니 이것 수리비만 지불해준다면 그대로 잊어버리고 싶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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