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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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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변경선 동과 서(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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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사람본위 실리주의가 우선인 이 나라에서 무엇을 못 할까마는 한 도시에만도 수없이 많은 거리를 저렇게 소금을 뿌리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마다 김장철만 되면 소금 값이 폭등하고 품절되었다고 조바심을 치게 하는 나라에서 온 ‘숙’의 눈엔 이해되지 않는 경이의 세계였다. 


“저렇게 길에다 소금을 퍼버리다니” 


“무슨 짓은 못하겠어. 무조건 다량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미덕인데. 자꾸 써야 자꾸 생산하구 자꾸 생산해야 그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살 거 아냐.”


 그 말을 들으니 언뜻 닥터 ‘라 안’의 말이 떠올랐다. 


“모든 면에서 미국은 스케일이 큽니다.” 


 땅덩이도 크고, 자원도 많고, 힘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됨됨이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는 우수하다는데 반경이 좁은 시야에서 허덕이는 사람들. 내 동족을 잠시 떠올렸다. 하지만 원인은 어디까지나 자연조건의 차이일 뿐이라고 애써 우기고 싶어졌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은 더 지루했다. 똑같은 현상의 반복은 단조롭고 변화를 느낄 수 없어 시간은 더디게 기어가는 듯했다. 그런 매일을 우체부만 기다리며 지냈다. 


“지금쯤 수술을 마쳤을까… 경과는?”


하루에도 몇 번씩 비참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허우적거리고 기어오르는 감정의 기복은 고통스럽기까지 하였다. 벌써 1월도 다 가는데 이렇게 소식이 없는 것은 혹시 불길한 징조는 아닐까. 애써 떨어버리고 나면 어느새 또 그 검은 그림자에 싸인 자신을 발견하고 고개를 흔들곤 하였다. 


누구라도 좋으니 곁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덜 할 것 같았다. 종일을 가도 ‘영’이의 애기 목소리, ‘현’의 울음소리뿐이니 꼭 밀폐된 공간 속처럼 마음이 답답하였다. 


미시스 ‘정’이나 미시스 ‘전’은 직장에 나가니까 유일한 돌파구는 미시스 ‘황’과의 전화 통화였다. 몇 십 분간 이야기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데 그것도 잠시, 끊고 나면 이내 더 답답해지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가 나와 똑 같은 괴로움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식은 이해의 폭을 좁게 해서 더욱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때로는 자신들은 그런 처지에 있지 않다는 안도의 한숨처럼 들려 그들의 위로가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래서 마음에 고통이 있는 자는 죄인이라고 하는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매일 밤 기도 드리는 습성이 생겼다. 두 애들이 잠든 뒤 내리 덮이는 잠을 쫓으며 전능자의 옷자락을 움켜잡고 잡아 흔들듯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건강. 건강을 주시옵소서. 모든 난관을 뚫고 이기고 나갈 수 있는 힘. 건강한 정신이 솟아나는 건강한 육신을 주소서. 영육 간에 강건한 힘을 주소서. 어머님과 우리 모두에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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