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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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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변경선 동과 서(40)-새해 새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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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복 


1968년 1월 1일은 맑고 청명하였다. 새 출발이라는 산뜻한 희망이 보람찬 성취로 이어지리라는 기대감으로 마음은 한없이 부풀어서 그대로 두둥실 날아갈 듯 가벼웠다. 


텅 빈 학생아파트 촌은 조용하고 한가하였다. 하얀 눈 덮인 잔디밭은 바람이 햇빛을 마주잡고 쓰레질을 할뿐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고 눈부셨다. 학생들이 돌아오려면 아직 한 주일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딩동~ “웨 스! 어떻게 벌써…” 아빠의 놀란 소리에 ‘영’이 달려 나갔다. 커다란 박스를 무겁게 포개어 안고 선 그의 얼굴에 웃음이 넘쳐흘렀다. 


“어머니, 아버지가 빨리 가보라고 하셔서.” 아침 6시에 떠나 전속으로 달려온 길이라며 오히려 미안해하였다.


프레드 바움가드너(Fred Baumgardner) 목사님은 알바니 근교 스케넥타디(Schenectady) 개혁교회(Reformed Church) 담임목사였다. 코넬대학을 졸업한 ‘웨슬리’가 버펄로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생으로 오게 되어 ‘훈’과 룸메이트를 하였었다. 교회 반주자이기도 했던 어머니 ‘릴리안’(Lillian)은 미술에도 조예가 깊고 무척 명랑하고 자상한 분이었다. 린’(Lynn)과 ‘페이스’(Faith) 두 여동생이 있었다. 


 내복부터 겉옷, 잠바, 양말에다 모자, 장갑까지 두 아이의 옷들을 차곡차곡 담은 위에 핑크색과 베이지색 순모담요 두 장이 포개있었다. 폭신한 온기가 따스하게 온 몸으로 전해왔다.


예쁜 포장상자에는 집에서 구운 여러 모양의 컵케이크와 성탄과자가 가득 하였다. ‘영’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환성을 질렀다. 금, 은색으로 장식한 화려한 성탄 카드를 꺼냈다.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의 삶이 번창하고 창대하고 평안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기어코 눈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너무 멀리 고향에서 떨어져 있었다. 단둘이 밀며 끌며 걸어야 하는 허허벌판인줄 알았다. 어머니와 릴리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날짜변경선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몰려왔다. 


“하나님이 당신을 언제나 영원히 축복하시기를…”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웨 스, 점심은 어떻게 했어요.” 


“괜찮습니다.” 무언가 좀 우물쭈물 망설이듯 한 표정이다.


“같이 식사 좀 할까요?” 


“실은. 터키하고 김치하고 참 잘 맞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얼굴을 붉혔다. 


그만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세시음식은 양배추김치와 생선전, 고기볶음이었다. 떡국도, 떡 만두국도 아니고 빈대떡도 잡채도 없는 설날 밥상이 이렇게 맛있고 좋았던 적은 그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 같았다. 


“웨 스. 김치 생각나면 아무 때나 와요.” 


 
 새 소망 


새해가 되면서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다. 처음 계획대로 포스닥 풸로우만 끝내고 돌아갈 것이 아니라 주위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기라성처럼 둘러있는 미국에서 공부를 더하고 싶어진 것이다.


의학을 해가지고 기초의학에 머무는 것은 융통성이 없는 처사라고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지만 자기는 의학에 뜻이 있는 것이지 임상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포스닥 펠로우만 마치고 돌아간다는 것은 얕은 지식의 기초 의학자 밖엔 안 된다고 역설하였다.


닥터‘홍’은 교실이 비었으니 하루라도 속히 돌아와서 일을 해야 하니 일단 귀국했다가 후에 다시 가던지 하라며 연수연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주임교수 닥터‘라 안’도 닥터‘홍’의 제동에 주춤거렸다. 


닥터‘게일’과 같이하는 프로젝트는 새로운 연구논문이어서 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던 터라 여기서도 ‘훈’이 필요하였다. 연구주임 닥터‘퐐 히’와 여러 번의 회의 끝에 결국 학위과정에 받아주기로 결정하였다. 인재를 더 크게 키워서 한국의학에 기여하도록 하자고 닥터 ‘홍’을 설득한 것이다. 


그런데 예상 밖의 문제가 또 생겼다. 펠로우의 월급은 $400인데 대학원학생의 월급은 $250 내지 $300이라는 것이다. 이제 대학원에 갈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린 고민거리가 되었다. 식구는 늘었는데 급료는 줄고, 공부는 하고 싶고, 현명한 결론을 찾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포기하던지 말던지 가부간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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