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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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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과 서(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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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자격지심을 달래는 일에 힘겨워하면서 다독거리던 심사가 어느 날 사화산이 재생하듯 폭발하고 말았다. 그날따라 기저귀 두드러기가 난 ‘현’이 밤새 보채는 통에 잠을 한숨도 못 잔데다 밖에서 놀던 ‘영’이 진흙구덩이에 넘어져서 재킷에서부터 신발 속 양말까지 온통 흙투성이를 해가지고 동네가 떠나가게 울고 들어온 터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로 속이 상해 있었다.


 저녁식탁에 앉은 아빠가 하는 말이 이번 주말에 친구들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원래 친구를 좋아하는 성격이 미국인들한테도 예외가 아니어서 거의 매주 주말에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손님만 오면 잡채니 불고기니 잔손질 가는 식단을 장만하느라 아침부터 서둘러야 저녁에 늦지 않게 차릴 수가 있었다. 


 청소도 특별히 해야 되고 옷이라도 모두 깨끗이 갈아입고 정돈 하노라면 애 우는 소리가 종일 끊일 새가 없는데 퇴근길에 친구들과 들어서는 아빠는 “원더풀‘ 소리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듯하였다. 철이 없어도 분수가 있지.  


 모두 고맙고 신세를 진 사람들이라 거절할 게재도 못 되지만 알아서 좀 천천히 갚아도 될 텐데. 내심 불만이 부글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워하는 아빠를 위해 정성을 다해 대접하곤 하였다. 


 “그 왜 닥터 ‘아 알’ 말이야, 애 하나 가지고 와이프가 쩔쩔매나 봐. 아프다고 애를 베이비시터한테 보내고 누워있지 않나, 살림도우미가 와서 집안을 치워주지 않나 법석이지. 겨우 하나 가지구서 말이야.” 


 순간적으로 속이 확 뒤틀리는 것이었다. 


 “자기 와이프는 어디서 황소 한 마리 데려다 논 줄 알아요?” 아무생각 없이 자기 이야기에만 열중해 있던 아빠가 후딱 놀라서 어이없이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더욱 울화를 돋우었다.


 -하나 가지 구 쩔쩔매는데 둘 가지고는 어느 정도일 거라고 생각이나 해 봤어요? 아무 말 없이 조용하니까 그 저 저절로 다 되는 줄 알 구. 나간 새에 집에서 와이프가 쓰러져도 모를 거야. 혼자 아래층에서 자구 나가서 저녁에나 들어오니“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애는 우리들의 애 인데 나라고 편하기만 할리 있어?” 혼이 나간 중에도 모기소리만 하게 항의를 했다. 


 “언제 애들 우는소리 한번 들어봤나 말해 봐요. 둘의 앤데 왜 나 혼자 고생하게 만드는 거에요.” 고개를 푹 숙인 아빠는 어금니를 짓씹고 있었다. 


 “그만 둬. 친구들 오지 말라고 하면 될 거 아냐.” 


 “시간 정해서 오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와이프나 애들 핑계대고 취소하려 구요? 와이프나 애들은 그렇게 멋대로 이러쿵저러쿵해도 괜찮은 거에요?” 


 어느새 울음으로 변해 있었다. 함부로 말을 뱉어 내면서도 진정할 수 없어 씨근덕거리는 ‘숙’의 손을 아빠의 커다란 손이 탁 덮쳐 잡았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으니 정말 그만 해.” 


“이게 뭐냐 말이에요. 아빠는 그래도 학교에 나가면 어른을 상대하고 대화를 하고 기분전환이라도 할 수 있는데 난 이게 뭐에요. 흐흑. ” 그냥 테이블에 엎드러져 울음을 터뜨렸다. 


쌓이고 쌓인 불만이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좌절감의 축적이었다. 차라리 실컷 울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받은 ‘숙’의 기습은 아빠의 가슴을 두 방망이로 두들기듯 쾅쾅 울렸다. 


“자 ‘영’인 고만 올라가 자자.” 


영문을 모르고 눈만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는 ‘영’을 데리고 올라가서 양치질을 시키고 잠옷으로 갈아 입혀서 제방에 들여보내고 내려오더니 유모차에 누워 손가락을 빨고 있는 ‘현’을 안고는 이층으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이리 줘요. 그 앤. 할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헐려구, 애는 안고 그래요.”


‘현’을 휙 채어가자 잠시 덤덤히 서있던 아빠는 순간 아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재워줄게 이리 줘. 아하하하.”


아빠는 소파에 털석 주저앉더니 데구루루 구르는 소리로 웃었다. 우유병을 챙겨 들고 ‘현’을 안고 이층으로 올라가던 ‘숙’이 그러는 아빠에게 눈을 흘겨 주었다. 하지만 눈꼬리는 옆으로 가지 않고 위로 벌어지면서 슬그머니 멋쩍은 웃음이 되고 말았다.


“참 잘 했어. 뭉쳐두지 말구 그렇게 뱉어내라구. 내가 너무 편한 아빠였는지 몰라. 하지만 ‘숙’이 집을 지켜주니까 난 걱정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늘 부르는 ‘마미’ 대신 ‘숙’이라고 부르는 아빠도 실은 몹시 속으로 놀라고 당황했던 게 분명하였다. 팔은 ‘숙’의 어깨에 두르고 나직이 얘기를 계속하였다.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마음속에 우주가 들어 있어도 남이 모르는 거야. 참는 것도 좋지만 속으로 병드는 건 금물이지. 기왕에 미국인들 하고 생활할 바엔 인간적으로 아는 게 좋지 않겠어. 물에 기름 돌듯 하지 않으려고 한 일인데 그렇게 힘든 줄은 미쳐 몰랐어.” 


흥분이 가신 뒤의 기분은 오히려 허탈하였다. 왜 그렇게 이성을 잃고 떠들었는지 미안쩍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한편 마음은 한 없이 후련하고 편안하였다. 난생 처음 황소로 시작한 언쟁은 김빠진 싱거운 웃음으로 끝났지만 서로의 가슴 밑바닥에 푸석하니 쌓여있는 외로움은 털어낼 수가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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