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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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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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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우울한 나날


 11월이 되면서 벌써 거리는 크리스마스 준비로 부산하였다. 온갖 카드를 화려하게 진열한 상점들은 크리스마스 대매출로 손님을 끌기 위한 갖가지 전략을 있는 대로 다 짜내고 있었다. 신문광고나 TV에선 군침이 흐를 정도로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선물을 쉽게 장만할 수 있는 묘안들을 선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일 년에 한번 가난한 사람도, 버려진 사람도 하나같이 누군가를 생각하고 또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기대하고 보낼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이었다. 한 겨울에 만물이 소생하듯 온 국민이 구석구석까지 크리스마스로 부산한데 홀로 나만이 동떨어져 강 건너 불구경하듯 덤덤하였다. 아니 어쩌면 불구경조차도 흥미 없는 듯 기진맥진하고 경황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어린애들 뒤치다꺼리하는 게 전부이니 종일토록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언어기능이 마비되고 신체의 활동이 모두 퇴화되어 버리는 듯하였다. 때가 되면 먹고, 자고, 아이들을 청결하게 간수하는 지극히 기초적인 본능 외에 사색에 전념하거나 아름답다거나 감동할 수 있는 정서적 기능은 불투명한 구름 속에 묻혀 있었다.


 항상 몽롱하고 귀에서는 파리날개소리인 듯 잉잉거리고 눈은 시어서 햇빛에 나서면 눈물이 흘렀다. 저녁 설거지만 끝내면 두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가서 씻기고, 갈아 입히고 한바탕 소란을 치르고 재워놓은 뒤 침대에 몸을 길게 뻗노라면 허리와 다리 어깨 뼈마디가 뚜두둑 뚜두둑 소리를 내었다.


 후~ 하는 한숨과 함께 이대로 내일 아침까지 푹 잘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기도처럼 바라지만 밤마다 서너 번씩은 애기 우는 소리에 전기에라도 쏘인 듯 펄떡 일어나 앉아야 했다. 


 어느 날 밤. 애기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침대에 걸터앉아 애기침대에 기댄 채 한 손으로 우유병을 물려주었다. 잠깐 그치는 듯싶던 애기가 부스럭거리며 다시 울기에 젖꼭지가 빠진 줄 알고 자꾸 밀어 넣어주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계속해서 우는 애가 이상해서 자세히 들여다 보니 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기 얼굴이 왜 이래?, 온통 시커먼데 하얀 점 같은 것이 두어 개 희미하게 보였다. 후딱 일어나 전등을 켰다. 말문이 막혔다. 애기얼굴은 저 쪽에 있는데 뒤통수에다 대고 젖꼭지를 밀어 넣었으니 뒤집지도 못하는 애가 더욱 애타서 울었을 것이다. 비록 약한 촉광이긴 해도 방안에는 작은 실내등이 켜져 있었는데 얼마나 졸리면 눈을 뜨고도 검은 것과 흰 것을 구별하지 못했을까? 기가 막혔다. 


 “이제부터 아빠는 아래층 소파에서 자요. 나 혼자 애들 데리고 이층에서 잘게요.”


 책을 읽다가 그대로 의자에서 세상 모르고 잠든 아빠에게 말했다. 


 “혼자만이라도 좀 푹 자야 집안에 제 정신 가진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줄곧 같이 자버릇한 ‘영’은 막무가내로 혼자서는 안 잤다. 하긴 텅 빈 방에서 조그만 애를 혼자 재우는 것에는 단련이 되어있지 않아서 할 수없이 두 개의 크리브(애기침대)를 양 옆에 나란히 붙여놓고 잠을 잤다. 애기가 울 때마다 같이 잠을 깨야만 했으니 쇠붙이가 아닌 다음에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슨 수로 견디어 낼 재간이 있겠는가? 시커먼 커피를 몇 잔씩 마셔도 염치 불고하고 아무데서나 꾸벅꾸벅 졸았다. 


 “둘이 다 잠 못 자고 고생할 필요 없잖아요. 한 사람으로 될 일을 가지고 말이에요.”


 그 뒤로 아빠는 아래층 소파에서 잤다. 새벽이 되면 언제 가는지도 모르게 나가니까 아빠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저녁 먹을 때 잠깐 뿐이었다. 기껏해야 두어 시간 되는 동안에 할 얘기가 많을 텐데 ‘영’과 ‘현’이 더 바쁘게 수선을 떠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식탁으로, 크리브로 몇 번씩 교대로 왔다 갔다 하고 나면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금방 뭐라고 했는지 기억할 수도 없었다.


 종일 시달리고 나면 피곤에 지친 온 몸에서 땀이 솟듯 짜증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 삶이 내 의사대로 영위되는 것이 아니라 귀 따갑게 울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움직이는 듯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게 뭐야” 혼자만이라도 조용하게 공부하고 잠을 푹 자라고 우겨놓고서 곁에 없는 고지식한 성격을 탓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맞대하면 말문이 닫혀버렸다. 


 피곤이 닥지닥지 붙어서 몸놀림조차 힘들어 하는 아빠를 보면 울컥울컥 쌓아온 불만이 모래성같이 무너져 내렸다. 나야 아무도 안 보는 집에서 죽을 쑤던 밥을 짓던 상관없이 내 멋 대로지만 외국인들 틈에서 비벼대며 긴장을 해야 되니 얼마나 심신이 고달플 것인가. 


 가장이니 더욱 마음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릴 것이다. 무조건 참아야지, 너그럽게 참아야지, 될수록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지, 아빠는 아빠의 일에 열성을 다하고 나는 나의 일에 충실하면 될 것이다, 다짐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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