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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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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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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3. 일부변경선을 지나다

 얼마를 지났을까? 깜깜하던 유리창이 갑자기 새빨갛게 물들더니 암실 문을 확 열듯 졸지에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뭐야. 뭐.’ 갸름한 유리창에 일제히 몰려들었다.

 ‘야아!-’ 삽시간에 비행기 안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지금 막 일부변경선을 지나왔다고 하였다. 어제아침이 지금 밝아왔다는 말에 모두들 입만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시계를 드려다 보니 2시가 조금 못 돼 있었다. 거칠 것 없이 툭 터진 창공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표현할 길 없이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맑고 파란 하늘에 빨간 송이구름들이 몽실몽실 떠있고, 그 사이로 황금빛 태양이 밑에서부터 비쳐 오르는 경관은 너무도 장엄하여 모든 감각이 일시에 마비된 듯 공백상태가 되었다.

 둥실 둥실 떠다니는 빨간 목화더미사이를 맨발로 사뿐사뿐 걸어보고 싶었다. 새빨간 발자국을 찍으며 돌아다니다. 두 손바닥 가득 담아 볼에 대고 비비고 싶은 유혹이 저절로 손을 앞으로 뻗게 하였다. 솜털처럼 가벼운 날개가 돋아나 파란하늘, 눈부시게 빛나는 여명사이를 파르르 사르르 날아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날자가 하루 달라지는 궁창의 예식은 눈이 아리도록 찬란하고 황홀하였다. 일부변경선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이 부어주는 축복의 선물이었다.  딸그락. 딸그락. 울안에 갇힌 한 떼의 못난 수탉들처럼 떠들썩하던 비행기 안은 스튜어디스들이 아침밥을 날라 오자 절정에 달했다. 지금 이곳 시간은 아침 8시라는 것이다.

 ‘와 하하하-.’ 그만 모두들 함성이라도 지르듯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이윽고 그림엽서에서만 보았던 금문교가 눈 아래 내려다보이더니 비행기는 삐익 삐익 갈라지는 금속성을 내며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앉았다. 세관검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저-. 이거 뭐라고 그래요.’ 옆 검열대에서 검사를 받던 예비신부가 얼굴이 빨개져 가지고 옷소매를 잡아 다녔다.

 검열대위에 짐을 잔뜩 풀어놓은 세관원이 ‘숙’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무언가하고 건너가 본 ‘숙’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 병에 꼭꼭 눌러 담은 고추장이 비행기 바닥의 뜨거운 열기로 터져서 자개화병, 재떨이, 고무신... 사방에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말은 안통하고 진동하는 고추장냄새에 창피하기는 하고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고 있었다.

 ‘이건 집에서 만든 한국고유 식품인데 잘못 가지고 와서 이렇게 넘친 것입니다.’ 설명하는데 뒤에서 기웃거리던 ‘김’ 청년이 불쑥 튀어나오며 ‘당신 이것 맛좀 보시겠소.’ 하고 참섭을 했다.

 ‘아니 아니오. 빨리 가지고 가시오.’ 세관원은 빨리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커다란 종이봉투 하나를 내주었다. 가방 속엔 물 고운한복에 두루마기, 고무신, 구슬 백 등 혼수 감이 하나 가득 채워 있었는데 고추장으로 범벅이 되었으니 딱하기 한이 없었다.

 공항구내로 나오니 이건 꼭 서울운동장 같았다. 검둥이, 흰둥이, 노란둥이... 사람은 어쩌면 그리도 많고, 왜들 그리 분주한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피부가 새까맣고 눈이 퉁방울 같은 흑인포터가 잽싸게 곁에 오더니 가방을 들어 주었다.

 ‘김’ 청년은 이곳에서 버스로 자기 갈곳으로 떠나고, 토론토로 가는 애기아빠와 결혼하러가는 예비신부는 50분후에 떠나는 시카고 행 비행기 터미널로 헤어져 갔다.

 ‘버펄로’ 행 비행기는 또 연발이었다. 두리번거리는 ‘숙’을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으며 ‘숙 이야! 반가워’하는 소리가 울렸다. 2년 전에 미국에 와서 결혼 한 친구 ‘영옥’이가 남편과 돌이 갓 지난 아들을 스트롤러에 태우고 공항에 마중나와 있었다.

 처음 만나는 그의 남편은 ‘버클리’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그들의 집까지는 거의 두 시간 정도 달려가야 한다는데 마중 나와 준 ‘영옥’이가 무척 고마웠다.

 ‘밤 열한시에나 비행기가 뜬다는데 아예 우리 집에 가서 자고 내일 낮 비행기로 가. 아빠에게는 내가 전화를 걸어 드릴게.’

 이년 만에 만난 친군데 또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을 거라며 남편 까지 옆에서 거드는 바람에 그대로 결정하고 그들의 차에 올라탔다.

 한국은 무더운 삼복더위였는데 여기는 벌써 얇은 스웨터 차림들이었다. 그리고는 이게 제일 더운 날씨라고 하는데는 새삼 지역적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해안 도시인 이곳도 바람이 몹시 불었다. 툭 터진 비행장 앞 광장에는 칸나 꽃이 무리지어 타고 있고, 그 가운데 시원한 분수가 기세 좋게 물을 뿜어대며 대지의 열을 식히고 있었다. 스카프로 아무렇게나 머리를 싸맨 키 큰 여인들이 거칠 것 없는 자세로 활기차게 행보하는 모습들이 공연히 나를 움츠러들게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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