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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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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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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칠면조 통구이가 얼마나 특별한 식단인지를 그때는 몰랐었다. 몇 년 후, 미시스 전’의 어머니가 어디서 구했는지 콩나물무침, 두부찌개에 김치 깍두기까지 만들어 주어서 실컷 얻어먹기 전까지 ‘훈’은 내내 닥터 ‘전’네를 시시한 S대 졸업생들이라고 몰아붙이곤 하였다. 


 정말 배추도 무도 볼 수가 없었다. 소금에 절여도 뻣뻣한 캐비지에 씨까지 막 빻은 성근 고춧가루로 적당히 버무려 놓으면 빛깔은 허연데 맵기는 보통 맵지가 않았다. 벌써 볼품부터가 발갛게 잘 익은 김치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아니 영양학 전공했다면서 그 것 두 못해?” 억지까지 부렸다. 


 “글 세. 좀 들어봐요. 내가 대학에서 무얼 배웠는고. 하니 ‘시금치 뿌리엔 ‘프로비타민A'인 카로틴이 많으니 잘라버리지 말고 요렇게, 요렇게 삼각형이 되게 다듬어서 살짝 데쳐야 영양분 손실이 없어요.’ 하는 거였거든요. 여기 와 보니까 뿌리 붙은 시금치는 팔지도 않으니 어떡해요.” 결국 마주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한국인들은 그 허연 김치문제를 해결하는 비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파프리카’라고 꼭 빨간 후추 가루 같은 것이 맵지는 않고 배추를 발갛게 물만 들여서 고춧가루를 적당히 섞어 김치를 담그면 제법 비슷한 맛의 김치가 되었다. 


 다 먹고 나면 ‘파프리카’ 찌꺼기가 그릇 밑에 잔뜩 가라앉아 있고 후추 맛 같은 뒷맛이 좀 남기는 하지만 김치 병을 거뜬히 해결해 주었다. 어른들이 밥을 먹는 날에는 ‘영’에겐 김밥을 싸주거나 식성을 뜯어 고쳐서 여기 식단에 맞추어 가는 방법도 차츰 몸에 배어 갔다. 이런 골치 아픈 자잘한 일들은 주위에 얼마든지 있었다. 
 자동장치들


 어느 날 부엌에서 일하는데 밖에서 ‘영’이 우는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뛰어가 보니 자전거를 타고 놀다 넘어져서 무릎이 베껴지고 피가 조금 내비치고 있었다.


 “괜찮아 ‘영’인 장사지” 애를 달래서 일으켜 가지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손잡이를 비틀고 쾅쾅 쳐봐도 끄떡없었다. 차고문은 안으로 잠겼으니 그리로 들어갈 수도 없고 한참 쩔쩔매는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이문이 자동문이 아닐까. 안에서는 열리고 밖에서는 열 수 없는 자동장치가 돼있는 문이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열쇠는 둘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그게 빽 속에 들어 있으니 큰일은 큰일이었다. 이대로 ‘훈’이 퇴근하기까지 밖에서 기다릴 수도 없고 날씨마저 음산한데 어찌하면 좋을까. 쩔쩔매는 엄마를 보며 ‘영’은 울던 것도 잊고 겁에 질린 눈이 둥그레 가지고 엄마옷자락을 잔뜩 움켜잡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용기를 다 하여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처음 만난 리처드엄마가 반색을 하였다. 문이 잠겼는데 전화를 좀 쓸 수 있겠느냐고 하니 쾌히 승낙을 하였다. 


 “헬로.” 전화를 받은 사람은 ‘훈’이 아니었다. 급하니 말도 더 더듬거려졌다.  


 “오! 당신 ‘수지’로군요. 나 ‘게일’입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쏭’은 지금 어디 갔는지 자리에 없는데 나라도 도움이 되면 말씀해주세요.”


 잠깐 망설였으나 어차피 사태는 급한 거니까 그대로 전화를 끊을 수는 없었다. 


 “저. 내가 밖에 나온 사이에 문이 잠겨 버렸어요.” 여기까지 말하자 “아하. 열쇠는 집안에 있구요. 하하하하. 내가 ‘쏭’을 찾아서 데리고 가지요.”


 보는 이도 없는데 얼굴이 새빨개져 버렸다. 아마도 그런 멍텅구리는 나만이 아닌가 보았다.


 “이 그. 마누라 하나 잘 못 두어서 큰 망신이야.” 헐레벌떡 달려와서 문을 열며 놀렸다. 


 “여기 좀 봐. 이 쇠 꼭지를 안으로 누르고 문을 닫으면 잠가지는 거고 이걸 또 한 번 눌러서 밖으로 튀어나오게 해두면 자물쇠가 열려진 거야. 밤에 문을 잠글 때는 이걸 누르고, 낮에는 열어두도록 하라구.”


 그제야 방마다 다니며 문손잡이의 한 가운데에 붙은 작은 쇠 꼭지들을 모두 눌러보았다. 그것은 하나의 장식이 아니라 열쇠를 걸었다 열었다 하는 중요한 자동장치였고 손잡이마다 달려 있었다. 


 “쳇! 자동은 알면 편하고 모르면 자동 아닌 것보다 더 불편하네.” 씁쓸하게 웃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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