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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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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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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이즈음 ‘훈’은 운전을 배워야한다며 교실 친구에게서 61년도 ‘밸리언트(Valiant)’차를 사왔다. 차를 처음 가지고 오던 날 기대에 차서 종일 기다리던 ‘영’과 ‘숙’은 차고에 들어서는 차를 보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흰색 차였는데 앞과 네 바퀴주위는 벌겋게 녹이 슬어 더러는 떨어져 나가고 모양도 구식이라 납작한데 뒷바퀴 두 개는 때 아닌 스노타이어를 달아서 꼭 엉거주춤하니 엉덩이를 쳐들고 앉아있는 메뚜기 꼴이었다.


 그렇더라도 75달러는 거저라며 좋아하였다. 생리학연구실에 실습파견을 나와 있던 내과의사 닥터 ‘만자-리’는 마침 새 차를 사게 되어 헌차를 물려주면서 친구에게 돈을 받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자동차 정비소에 가서 전체안전정비를 해 왔노라며 미안해하였다. 


 그나저나 운전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헌차가 오히려 마음 편할 수도 있으니 면허를 어서 얻어서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연습이나 많이 할 생각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이니 연습 시간이 여의치 못했다. 


 더구나 연습 면허만 가지고는 면허소지자의 동승 없이 혼자서는 연습도 못하기 때문에 기껏 시간을 만들었다가도 동승자가 없어 연습을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마음은 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가끔 와서 도와주던 ‘웨슬리’와 ‘게일’이 의논하여 야간운전학교에 등록시켰다. 10월이 운전학교개강이니 그때까진 시간이 좀 있었다. 


 연습하는 아빠 차 뒤에 타고 나갔다 온 ‘영’이 문에 들어서면서 바쁘게 엄마를 찾았다. 


 “엄마. 엄마. 말이야 ‘웨슬리’아저씨차를 타면 쌔-애-앵 쌔-앵 하고 차가 달리는데 아빠가 운전하면 덜컹하고 내가 이렇게 자빠지구 또 이~이렇게 넘어 지구 그래.”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급정거를 할 때마다 앞으로 콱 쏠려서 넘어지고 급커브를 돌때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굴러가는 모양을 실제로 시늉을 해가며 보고를 해서 허리를 잡고 웃었다. 


 이즈음에 큰 문젯거리는 식생활이었다. 아침엔 주로 토스트와 계란이고 낮에는 샌드위치를 먹으니 저녁에는 색다른 것이 먹고 싶었다. 거의 매일저녁 소고기나 닭고기를 구워서 소금을 쳐서 먹거나 국수 아니면 마카로니를 삶아서 으깬 감자와 곁들여 먹자니 물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밥과 국, 그리고 김치 깍두기가 따르는 밥상을 30년 가까이 대해왔는데 하루아침에 바꾸자니 여간 어렵지 않았다. 꼭 밥은 못 먹고 반찬만 먹은 것 같은 식단이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엄마 나 밥 줘.” 비프스틱을 잘게 썰어 접시에 담아 주었더니 ‘영’이 불쑥 말하였다.


“이거 밥이잖아.” 


“아니. 아니. 이런 것 말구 밥알 있는 밥말이야.” 심술이 나서 금방 입이 뿌루퉁해 졌다. 


 밥알이 있는 밥을 찾는 ‘영’도 어지간히는 싫증나고 물렸는가 보았다. 시장에 가면 작은 상자에 들은 쌀을 조금씩 살 수는 있지만 밥을 해 먹고 난 뒤에는 더 답답하고 감질이 났다. 맵고 짜고 그런 반찬이 곁들여야 될 텐데 그렇지가 못 하니 고국에서 먹던 밥맛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철없이 ‘훈’은 쑥갓 넣은 생선조기 국에 깍두기 생각이 간절하다며 푸념이었다. 애써 만든 음식을 많이 먹어주지 않는 것만도 서운한데 미각 따라 고향까지 그리는 이들을 바라보면 ‘숙’의 마음마저 언짢았다.


 “그 김치 좀 안 먹고 못사나?” 했다가 시답지 않은 소리 그만하라고 시어머님께 핀잔을 받던 그였는데 잎사귀가 넓적한 푸른 채소는 다 사들고 왔다. 그걸로 김치를 담가보라는 거였다.


 한번은 한국인 댁에 저녁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부부가 다 S대학 선배들인데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곳으로 이주한지 2년 정도 되었다는 닥터‘전’댁은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과 세 살배기 딸 남매를 데리고 큰 집에서 아주 여유롭게 살고 있었다. 


 그날 밤 늦게 집에 돌아온 ‘숙’이 무척 부러워하자 퉁명스럽게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치사하게 한국 사람이 미국 물 좀 먹었다구, 김치 깍두기도 안 대접하구...“ 그만 웃음이 폭발하였다. 


 큰 칠면조 한 마리를 통째로 오븐에 구워서 몇 가지의 야채와 후식으로 오렌지 젤로를 내놓은 것이 그날의 메뉴였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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