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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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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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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같은 한국아이가 제 말을 못 알아듣고 영어로 묻는 데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며칠 만에 만나는 한국아이가 무척 반가웠을 터였다. 그 반가움이 꺾인 ‘영’의 기분은 ‘숙’ 마저 우울하게 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암벽이 자취를 들어내는 듯 일종의 좌절감마저 엄습하였다. 지구의 동쪽과 서쪽 끝의 거리는 발걸음으로만 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공원에 도착하니 반가운 일행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세의대 생리학과 주임교수 ‘홍’박사는 멕시코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기가 학위를 받은 학교를 찾아보고 ‘훈’도 만날 겸 방문하였다고 한다. 


 ‘홍’박사와 함께 회의에 참석한 경북의대의 ‘이’박사님 그리고 연세의대 X-레이 과장으로 버펄로에서 2년 기한으로 연수중인 ‘안’박사는 모두가 닥터 ‘정’과 동기생, 혹은 1년 선후배사이였다.


 “아니 미국사람도 시간 안지키나?” 만나자 대뜸 불평을 터뜨린 건 닥터 ‘홍‘ 이었다.


 “아유우 죄송해요. ’에디‘를 베이비시터에서 찾아 데려오느라 늦었어요.” 미시스 ‘정’이 눈웃음을 치며 간드러지게 사과를 하였다. 


 “저녁이나 어서 좀 먹여주시오” 일행은 웃으며 떠들썩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미시스‘송’ 오시느라 고생 많았지요? 태영이 까지 데리고. 학교에서도 기다릴 텐데 얼른 뭐 하나 배워가지고 속히 귀국해야지요.” 닥터 ‘홍‘이 말했다.


 “하 하. 저 사람 또 시작이군. 아니 어제 온 사람보고 빨리 귀국하라는 얘기부터 하니 원.” 닥터 ‘안’이 호기 있게 너털웃음을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연세로나 직위로나 안정되고 말쑥하니 세련된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몹시 즐거웠다. 비록 닥터 ’안’의 핀잔을 받기는 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고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닥터 ’홍’의 일깨움도 기쁘기 한이 없었다. 새삼스레 감격스러움까지 일으켰다. 


 떠나 온지 이제 겨우 열흘 밖에 안 되는데 벌써 이름 지을 수 없는 서러움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던 참이었다. 
 “돌아가야지요.” 공연히 목소리가 목에 걸려 갈라졌다. 


 “아니 벌써 홈씩이야?” ’훈‘이 돌아보며 놀려댄다.


 홈씩, 이제는 낮과 밤이 제자리에 돌아왔다. 밤이 되면 자고, 아침에 일어나도 낮에 졸리지가 않았다. 그런데 차츰 맑아지는 마음에 선명하게 그려져 가는 사실 하나가 서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멀다. 미국에서 한국은 너무 너무 멀다.


 호숫가의 저녁바람은 한 여름인데도 몹시 떨리게 했다. 얇은 스웨터를 걸치고 나온 ‘숙’은 몸을 움츠리고 앉아 벌벌 떨었다. 폭포는 어디 근처에 있는지 공원 앞 넓은 주차장엔 형광등이 하얗게 들어와 있을 뿐, 숲속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우~ 우~ 몰려왔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제는 잊어야 된다고 애써 다짐하던 그 부드러운 공기. 어머님의 손길처럼 그것은 어깨를 다독거리는 편안한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주었다.


 “야! 이거 정말 근사한데” 그때까지 맥주병을 들고 둘러앉아 새 소식에 바쁘던 그룹들이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그것은 노리끼리한 생고기 타는 냄새가 아니었다. 달콤하고 향긋한 불고기냄새, 갈비 굽는 냄새였다.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경탄의 눈으로 코를 찡긋거리는 가운데 기세 좋게 먹어대던 김치, 깍두기, 도라지나물, 그 불고기 맛은 일생 잊을 수 없는 자랑스러운 성찬이었다.


 “‘홍‘선생님 이건 중매 턱이에요.” 고기접시를 나르던 미시스 ’정’이 불쑥 한마디 했다.


 “아니 결혼은 언제 하구서 이제야 중매 턱이야.” 닥터 ‘홍’이 총알처럼 되받았다.


 몇 년 전, 2년 연수과정으로 버펄로대학에 와있을 때 친구와 제자를 중매 들었다고 한다. 


 “아이 근데 무슨 그런 중매가 다 있어요.” 곱게 흘긴 눈꼬리를 치떴다 내렸다하며 불만의 화살을 날렸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닥터 ‘정’이 어떤 사람이냐, 물었다고 한다. 


 닥터 ‘정’은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니 결혼을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고 답하셨다 한다. 얼마나 주변머리 없으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니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했으면 될 걸 그리 했을까, 모두들 폭소를 터트렸다. 


 “아 결혼을 할지 안할지 자세히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하시오, 하시오 하고 권해.” 닥터 ‘홍‘은 끄떡도 없었다. 


 “아이 안하긴 왜 안 해요. 닥터 ‘정‘이 제 마음에 꼬~옥 들었는걸요.” 정말 배들을 움켜잡고 웃었다. 아무데도 특출나게 예쁜 곳이 없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세련되고 조화된 멋을 풍기는 그녀를 바라보노라니 왠지 자신이 감각 없는 나무토막처럼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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