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shon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www.budongsancanada.com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31 전체: 223,220 )
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13)
jsshon

 

(지난 호에 이어)
 숲속의 해는 더 빨리 지는지 벌써 어스름한 땅거미가 내려앉은 오솔길을 서둘러 걸었다. 두 남자들은 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옥수수 익는 냄새가 투명한 초가을 대기 속으로 그리움 같이 번지고 있었다. 


 종이 접시에 핫도그니 햄버거 같은 것을 덜고 옥수수 한 개 얹어가지고 양지 쪽 긴 의자에 가서 앉았다. 게일’이 와인 한 병을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이건 홈 메이드에요.’ 플라스틱 컵에다 짙은 보라색의 와인을 조금씩 따라 돌렸다.


 ‘아. 그 포도들이 전부 와인 만드는데 쓰이는 겁니까?’


 볼품없이 작은 알맹이들이 머루같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포도나무를 떠올렸다. 


 ‘그 포도로 만든 건 사실인데 그걸 다 와인을 만들지는 못하고 취미삼아 하루 나와서 한 너 댓 병 만들지요.’ ’게일‘이 어께를 으쓱하며 대답하였다. 


 ‘도대체 이 농장이 왜 이렇게 황폐 합니까?’ 의아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훈‘이 물었다. 


 이 농장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게일’의 아버지가 사두신 것이라 했다. 아버님 생존 시에는 그래도 해마다 봄이 되면 대청소도 하고 페인트칠도 새로 하며 정성들여 가꾸었는데 ‘게일’이 결혼하고부터는 홀어머니마저 발길이 뜸해지게 되고 의사인 ‘게일’과 초등학교 교사인 ‘낸시’가 점점 바쁘게 되어 여름 한 철에 한두 번 올까 말까하다는 것이다. 


 이제 집은 고치느니 그대로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아주 헐어버리고 새로 짓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되고 애초부터 농사는 지을 줄 모르니 많은 인건비 들여 농사지을 생각은 전혀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요즈음은 농민들이 작물가격 안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오기 때문에 이 농장은 작물을 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정부에서 비경작료를 받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숙’과 ‘훈’은 서로 얼굴만 멍청하니 바라보았다. “한 뼘의 땅이라도 갈고 심자” 라는 표어를 내걸고 학교운동장, 경찰서마당, 심지어 집 모퉁이 할 것 없이 무, 배추를 심었었다. 한 주일에 한번 씩 실습을 하는 학생들을 따라 그런 밭에 나가 진땀을 흘리던 때가 엊그제인데 너무 많아서 심지 말라고 돈까지 주는 나라가 있다니 이건 무슨 동화의 나라이고 지상천국일까? 


 그러니까 이 농장은 가끔 이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서 소풍이나 나오는 여름 피서지이고 사과도 포도도 저절로 났다 저절로 없어져 버리는 ‘에덴동산’이라는 이야기였다.


 어디에다 쏟아야 좋을지 표적을 알 수 없는 답답한 울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신의 은총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천만에 아니다. 적어도 가진 자와 못가진자에게는.

 

 나이아가라 폭포


 베이지 색 스테이션 웨곤 하나가 집 앞에 서더니 뒷문을 열고 ‘훈’이 내렸다. 이어 앞문을 열고 한국인 부부가 내렸다. 나이아가라까지 안내하기위해 닥터 ‘정’이 픽업하러 온 것이다. 


 ‘오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지요?’ 닥터 ’정‘이 먼저 인사를 했다. 상이병원에서 일하고 계신 40문턱의 퍽 인자하고 부드러운 그에게선 삶의 여유와 품위가 감돌았다. 


 ‘아 휴우~ 언제 오셨어요? 닥터’송‘이 여~엉 전화도 안주시고 해서 토~옹 몰랐어요.’ 어딘가 ‘데보라’를 닮은 얼굴표정과 목소리를 끌며 미시스 ‘정’이 수선스럽게 인사를 했다. 


 빨간 바지에 녹색 스웨터가 멋지게 어울리는 그녀는 닥터 ‘정’보다 열 살 정도는 더 젊어 보이고, 그 많은 나이 차 때문에 더 어린 몸가짐을 가지게 된 듯 보였다.


 웨곤의 맨 뒤 칸에서 갑자기 까르르 웃는 소리가 났다. ‘영’ 또래의 사내아이 하나가 ‘영’을 보고 의자 뒤로 숨바꼭질을 하며 좋아라 웃어댔다. 


 ‘‘에디’ 조용히 해요. 우리 아들이에요.‘ 


 ‘‘영’이야 ‘안녕’하고 인사해봐 네 친구야.‘ 


 ‘나 태영이야’


 ‘왓? 마미 얘가 지금 뭐라 그랬어.‘ ’에디‘가 맨 앞좌석의 엄마를 크게 부르며 소리쳤다. 


 깜짝 놀란 것은 ‘영’이었다. 고개가 후딱 뒤로 돌아갔다. 분명히 한국 사람인데 얘는 한국말을 못하는 구나.

제 딴에도 이해할 수가 없었던지 눈이 휘둥그레 한참 바라보더니 말없이 돌아앉아 버렸다. 


 아무리 ‘에디’가 뒤에서 떠들고 장난을 걸어와도 아빠와 엄마 사이에 꼭 붙어 앉은 ‘영’은 모르는 체 씰쭉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제프리’와 놀 때는 저렇지 않았다. 비록 제가 하는 한국말을 영어로 대답해도 조금도 이상해 하거나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