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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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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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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늘상 있던 일의 반복처럼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태들을 아무 감흥 없이 무덤덤하게 바라보노라니 스르르 졸음이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결론이 없는 어려운 문제를 쉬지 않고 생각할 때 마침내 밀려드는 권태로움이 마비증처럼 온몸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어지러이 돌아가는 바람개비처럼 색채도 시끄러운 소리도 ‘숙’에겐 모두가 움직이지 않는 정물이고 판화에 불과했다. 


 -바로 지난주에 보트여행을 다녀왔는데 또 이렇게 덥지 않아요. 아휴 지독해,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데보라‘가 온 얼굴의 근육을 있는 대로 모조리 움직이며 간드러지게 불평을 했다. 말 할 때는 한 손을 펴서 파리채로 파리를 치듯 공중에서 찰싹거리며 몸을 비트는 것이 습관인 듯싶었다. 


 ‘우리는 다음 달이나 돼야 갈 것 같아요 ’게일‘이 너무 바빠서’


 ‘낸 시’가 한쪽 어금니로 감자튀김을 씹으며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아이들이 휘저어놓은 물에 눈부시게 반사된 따가운 햇살이 매니큐어를 한 ‘데보라’의 빨간 발톱들을 비추고 있었다. 


 ‘우리도 잠깐 들어갔다 나올게요’ ‘낸 시’가 미안한 듯 말하더니 둘이는 아이들 쪽으로 시원스레 헤엄쳐 갔다. 


 곧이어 와-하는 함성과 더불어 이들은 애들과 어울려 물싸움을 시작했다. 갑자기 억울한 일을 당한 듯 눈물이 울컥 솟았다. 이런걸 보지도 못하고 일생을 사는 고향의 부모형제들이 너무도 불쌍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는데-’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햇살을 피하던 ‘숙’은 무엇엔가 밀려나 괄시를 받는 것 같은 서러움이 엄습했다. 지금은 가난한 조국이 불쌍하고 그 가난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자기를 길러낸 부모님이 가슴 아프게 가엾은 생각이 났다. 그 속에서 감정이 옹졸하게 길러진 자신마저도 화가 나도록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국에서 한국까지의 거리는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점점 멀어져 가고 그만큼 멀리보이는 내 조국은 점점 작아 보이는 것이었다. 

 

 피크닉 


 일요일이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 맞는 이 날. ‘게일’은 모처럼만에 자기네 농장으로 피크닉을 갈 계획을 세웠다. 


 ‘’뭐? 농장? 그래 농장에 무얼 심었는데?“


 돌아가신 아버님은 의사였으니까 분명 농사꾼은 아닌데 피크닉을 갈만한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는데 놀라며 ‘훈’이 물었다. 


 ‘가보면 알아.’ ‘게일’이 그 큰 눈을 껌뻑거리며 웃었다. 


 ‘낸 시’는 큰 아이스박스를 들어다 놓더니 쏘시지, 빵, 햄버거고기, 콩 통조림, 피클 같은 것을 주섬주섬 주워 담고, 큰 상자에 맥주와 콜라를 잔뜩 집어넣어 맨 위에 예의 그 크림과자를 한 상자 얹어 가지고 차에 실었다. 


 ‘버펄로’시내를 벗어나서 동남쪽으로 약 반시간 정도 달리면 벌써 인가가 드믄 시골길이 어디를 가나 소박한 모습으로 나른하게 앉아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들에는 사람도 없고 소도 양도 없는 텅 빈 목장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 사이사이로 굽이진 광활한 언덕은 끝 간 데를 모르게 이어지는 옥수수 밭이었다. 


 어쩌다 만난 작은 농가에서 옥수수를 한 광주리 사서 실은 자동차는 포장이 되지 않은 시골길을 한식경은 더 털렁거리고서야 목적지에 닿았다. 잡목이 무성한 언덕길을 들어서긴 했는데 무성한 수림에 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게일’은 무얼 찾는지 두리번거리더니 그냥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가만 있자 여기지 아마’ 허리를 구부정하니 잡초가 수북하게 자란 길가를 오르내렸다. ‘아 여기야 여기’ 잡초더미를 양 옆으로 가르며 소리를 질렀다. 나지막한 나무기둥 두개를 세워놓고 쇠사슬로 가로지른 입구 표시 뒤로 차바퀴 자국이 두 줄로 난 오솔길이 나타났다. 굴 속 같은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퇴락해서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집 한 채가 나타났다. 


 집의 몇 배는 될 것 같은 헛간건물이 묵직한 쇠 자물통을 매달고 집 옆에 붙어있었다. 문설주 주위에는 거미줄이 몇 겹이고 쳐져서 늘어져 있고 유리창엔 흙먼지가 비에 튀겨서 부옇게 더께가 끼어 있었다. 집 주위로 줄지어 선 키 작은 전나무울타리사이엔 제멋대로 피고 진 껑충한 풀꽃들이 잡초와 엉겨서 너저분하고 사방에서 축축한 흙냄새가 이끼 낀 곰팡내를 내뿜고 있었다. 


 ‘맙소사. 진작 좀 와봤어야 할 걸. 마미가 몹시 바쁘신 모양이군.’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서있는 ‘숙’의 앞을 ‘게일’이 지나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 친구가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두 손을 움켜잡고 서성대던 ‘훈’이 한심하다는 듯 ‘숙’을 돌아보았다.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잡아당기니 습기에 불은 문짝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발로 두어 번 꽝 꽝 차더니 힘껏 확 잡아 다녔다. 끼이익 끼 이 익 돌쩌귀 갈리는 소리가 고막을 거슬리면서 힘겹게 열렸다. ‘낸 시’가 어디서 벽돌 짝을 하나 주어다가 문틈에 괴어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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