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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Headach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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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다음 소개하는 차들은 생활하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예로 들었다.


1) 감잎차

고혈압으로 두통이나 편두통, 현기증 증상 등이 있을 때 아침 저녁으로 마신다. 
*만드는 법: 감잎 15g, 옥수수 수염 30g을 끓인 후 즙은 걸러낸다.


2) 국화차


신경을 많이 써 항상 머리가 무겁거나, 기억력이 감퇴될 때 국화차가 좋다. 특히 감기로 인한 두통에 좋다. 
*만드는 법: 물 3컵에 말린 국화를 12g정도 넣고 끓이다 불을 줄여 30분 정도 은근히 끓여 하루 3회씩 꿀을 타서 마신다.


3)계피차


계피차는 중추신경을 흥분시켜 머리를 맑게 하고 두통과 신경을 안정시키는데 효과가 있다. 
*만드는 법: 계피를 강한 불로 20분 정도 끓인 후 계피는 건져내고 다시 푹 끓인다. 이때 생강을 넣고 끓이면 더욱 좋다.


4)결명자차 


눈을 밝게 하고, 눈병에 좋고, 변비, 두통, 고혈압, 장 기능이 쇠약해졌을 때 좋다. 설사를 할 때에는 먹지 말아야 한다. 
*만드는 법: 결명자를 주머니에 넣고 누런 물이 진하게 울어날 때까지 끓인 후 꿀을 넣고 끓여서 마신다.


이러한 민간 요법은 두통을 예방하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는 약간의 효과가 있지만 실질적인 치료에는 그리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자신이 만성 두통으로 고생을 하고있다면 반드시 의사를 찾아 정확한 원인을 알고 치료 받기를 권유한다.

 

두통에 관한 화타와 조조의 일화

 
두통편을 마치면서 재미있는 예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의에서 두통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명인 조조와 화타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위험할 수 있는 수술법인 조조의 머리를 쪼개서 치료하겠다는 대담한 발상이 <삼국지연의>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편두통을 심하게 앓던 조조는 화타가 명의라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들여 자신을 치료하게 했다. 편두통이 발발할 때마다 화타가 혈도에 침을 놓으면 바로 차도가 있어 조조는 늘 화타를 곁에 두고 치료를 맡겼다.


그러나 조조가 두통이 더 심하여 견딜 수 없게 되자 진맥한 화타가 조조에게 수술을 권한다.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도 위험한 두개술 이었다.


"대왕의 머리가 아픈 것은 머릿속에 바람이 일기 때문입니다. 병의 뿌리가 골을 싸고 있는 주머니 안에 있으니 약으로는 고칠 수 없습니다. 마비탕을 드시고 잠든 후에 머리를 쪼개 그 안에 바람기를 걷어내야 합니다." 화타가 말한 마취약인 마비탕은 당시의 마취제다.


조조는 암살의 공포로 평생을 떨었던 사람이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치료법으로 머리를 쪼갠다는 말을 들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예상대로 화타를 옥에 가뒀다. 측근들이 살려줄 것을 간청했지만 조조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결국 화타는 죽임을 당했다. 화타는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하며, 자신의 의술을 적은 책을 친구 옥리에게 건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옥리도 법을 두려워하여 책을 불태웠다고 한다. 그 후 조조는 자신의 병세가 깊어지는데다 아들까지 요절하자 뒤늦게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이왕 화타와 조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더 자세한 배경 설명을 보충하면… 화타는 조조와 동향인 패국 초현 사람으로 젊어서 외지로 유학해 학문에 힘썼으나 천하대란을 만나 관직에 출사하지 못했다.


화타는 박학다식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의술에 밝았으므로 의업을 생업으로 삼게 됐다. 양생술과 침술은 물론 마취약을 사용한 외과수술에도 능했다. 화타는 본래 유학을 공부한 선비였으므로 의술로 먹고 살게 된 것을 내심 부끄러워했다.


화타가 조조를 치료하게 된 것은 조조가 북방을 제패하고 한창 교만해졌을 무렵이었다. 당시 사인들의 여론은 조조가 역심을 품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 대세였다.


화타는 역적 조조의 수명을 연장해 주는 일에 자신의 재능을 사용해야만 하는 일이 싫었다. 화타는 휴가를 내어 집으로 돌아간 후 아내가 병이 났다는 이유로 원대 복귀하지 않았다. 조조가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고 심지어 직접 편지를 써서 돌아오라고 명령했지만 화타는 이리저리 핑계만 댈 뿐이었다. 


조조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화타가 알량한 기술을 믿고 감히 천하의 조조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매우 화가 난 조조는 사람을 보내 몰래 정탐하게 했다. 만약 정말로 화타의 아내가 병이 들었다면 치료비를 보태주고 휴가를 연장해 주돼, 거짓말이면 바로 붙잡아 들이라 했다. 결국 화타는 체포돼 죄를 시인했다. 조조가 그를 죽이려 하자 순욱이 만류했다.


“화타의 의술은 진실로 솜씨가 좋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참고 용서해 주십시오.”


조조는 약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걱정할 것 없소. 천하에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은 없어져야 하오.”


화타가 죽은 후 조조는 편두통이 낫지 않자 스스로 자위하며 말했다.


“화타만이 이 병을 고칠 수 있었음에도 그 간교한 놈은 스스로 중한 대우를 받고자 내 병을 키웠던 것이다. 죽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놈은 나를 위해 이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조는 가장 총애하던 아들 조충이 중병에 쓰러진 후에야 화타를 죽인 일을 깊이 후회했다.


“내가 화타를 죽인 것이 후회된다. 내가 이 아이를 죽게 한 것이다.”


조충은 자를 창서라고 했고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리했다. 오륙 세의 나이에 사리판단이 거의 성인에 맞먹었다고 한다. 조충의 지혜에 대해 유명한 일화가 있다. 손권이 큰 코끼리를 선물하자 조조가 그 무게를 재고 싶어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조충이 그 방법을 설명했다.


“코끼리를 큰 배 위에 태우고 배가 물에 잠긴 곳을 표시한 다음 같은 점에 이를 때까지 물건을 실은 후 그 무게를 재어보면 코끼리의 무게를 알 수 있습니다.”


조충이 이미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조조는 이처럼 영민한 조충을 후사로 삼을 뜻이 있었으나 그는 불과 13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조충의 사망이 적벽대전 직전인 건안13년(208년)이었으니 화타가 죽은 것은 그보다 이전이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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