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kim
작은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에이젼트 Jaiki Kim
Broker 김재기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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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김원호를 그리며
jakim

 

 늦여름부터 부동산이 뜸하다 보니까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이 별로 없다. 집사람 출근할 때 일어나 빈둥거리다 아폴로(우리 아들 개)와 베더스트까지 산책하고 들어와 컴퓨터로 신문도 보고, 책도 보고, 느지막하게 출근하는 나날이 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자꾸 게을러진다.


 할 일도 없는데 ‘부지런해야지, 부지런해야지’하고 아무리 다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어 아침에 집사람 대신 가게(세탁소 디포)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헬퍼가 없어 둘이서 가게를 하는데 일도 쉽고 시간도 짧지만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이것도 힘에 부친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오전, 이번 주에는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가게에 나가 문을 열고 컴퓨터를 켠 후 기계적으로 주머니 속에 있던 전화를 들여다보니 Missed Call 이 떴다. 내 친구 원호다. 반가운 마음에 원호 가게로 전화를 하니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다. 원호의 처 Mrs. 김. 


“저 김재기입니다.” 하면서 속으로 ‘아니, 왜 원호가 전화를 받지 않고 Mrs. 김이 받나, 이상하다’ 하는데 “남편 전화로 전화를 했더니 안 받아서 문자를 보내고 있으니 보세요” 한다. 목소리도 맥이 없는 것이 영 께름칙하다.


 문자를 보니 원호가 천당으로 갔단다. 아니, 이런! 내 친구 원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알아보니 두어 달 전에 간에 암이 있는걸 알았단다. 키모테라피를 했는데 별 소용없이 나의 친구는 떠났다고 한다. 


 내가 세네카에 다니기 시작한 1년 후인 1978년 9월 원호가 세네카에 들어왔다. 같은 동갑내기고 성격은 서로 판이 하지만 외로운 캐나다에서 둘이 친하게 지냈다. 내가 좀 외향적이고 튀는 스타일이라면 원호는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가끔 여학생들이 김원호씨는 왜 저렇게 심각해요? 하고 물어올 때도 있었다. 


 둘이 만난 첫해(다음해?) 겨울 자기가 가르쳐줄 테니 스키를 가자고 했다. 그래서 둘이 가방을 싸 들고 베리로 향했다. 여관을 잡고 들어가니 TV에 굵직한 체인을 감아 놓았다. 거기서 둘이 멀리 여행 온 듯이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놀다가 다음날 아침 호슈벨리 스키장으로 향했다.


 스키를 빌려서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 내려오는데 원호는 전에 몇 번 탔는지 처음에는 좀 가르쳐주다가 답답한지 후다닥 내려가 버리고 나는 그 초보자 코스를 내려오는데 무려 반나절을 보냈다. 원호가 지나쳐 내려가면서 나보고 제대로 타고 내려가라고 놀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오후에는 내가 많이 쳐지기는 했지만 두어 번 같이 내려올 수 있었다. 그 후에 나는 스키협회에 가입해 회장까지 해 보았고 지금도 스키를 타고 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 원호와 나의 약혼녀(지금 집사람)는 학교를 다녔다. 직장에서 몬트리올로 2주간 출장을 가라고 하는데 그때 세네카 다니던 중국계 애들이 집사람을 좋아해 가끔 작업을 걸려고 했었다. 내가 고민을 하자 원호가 “야 원자씨 아무 걱정마, 내가 보호해줄테니까” 해서 마음놓고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학교 끝나면 집에까지 자기 차로 바래다 주었단다. 마치 호위무사처럼.


 학교 졸업 후 내가 결혼할 때 원호는 내 결혼식의 들러리가 돼주었다. 그리고 그도 얼마 후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생활 터전이 나는 토론토에서 동쪽인 벨빌로, 그는 서쪽인 키치너로 향했다. 한참을 바삐 살다가 어느 날 친구가 그리워 내가 키치너를 방문했고, 그 후 어느 날 그가 자기 부인과 아이 둘을 데리고 벨빌 우리집을 방문해 하루를 묶고 갔다. 


좋은 친구가 왔으니 그날 우리 집안 분위기가 무척 좋았고, 그의 딸과 아들, 나의 딸과 아들이 서로 사촌이라도 만난 듯이 즐겁게 보내고 다음날 아쉽게 작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어느날 그의 딸 미나가 해외 한민족 글짓기 대회에서 당당히 대상을 받았다는 뉴스가 한국일보에 1면 톱기사로 실렸다. 너무 기뻤다. 마치 내 자식이 받은 것처럼. 


 그리고 몇 년 후 원호에게 전화를 받았다. “재기야 내 딸 미나가 천당을 갔어, 내일 환송식 하는데 좀 멀지만 와줄 수 있지?” 너무 덤덤하게 마치 남의 초상을 이야기 하듯이 말해 잘 알아듣질 못해서 “뭐라고?” 하고 물었더니 뇌에 종양이 생겨서 미나가 그만 천당을 갔단다.


 그런 친구에게 내가 무슨 할말이 있을까. 딸의 장례식에서도 울지도 않고 덤덤하게 앉아있는 원호를 보며 이질감도 경외감도 느껴봤다. 하지만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 후 내가 부동산중개업을 시작하자 좋은 중개인이 되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한다는 나의 친구 원호, 그저 서로 만나기는 몇 년에 한번 정도였지만 만날 때마다 웃음으로 나를 포근하게 해줬던 나의 친구 원호, 사랑하는 딸을 가슴에 묻은 후 신학 공부해서 전도사가 된 나의 친구 원호, 그리고 나에게 “재기야, 하나님을 믿어야 돼” 하며 전도했던 나의 친구 원호,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던 나의 친구 원호.


 원호야, 이제 너를 가끔도 볼 수 없구나. 네가 가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보았으면 좋으련만, 또 본들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컨비니언스, 사진관, 음식점을 경영하며 열심히 살아왔던 너, 이제 모든걸 내려놓고 하나님 품에서 편히 쉬시라. (친구 원호를 보내고, 2017. 11. 28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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