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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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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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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빛이 아름다운 겨울날이다. 
 눈보다 더 찬란한 햇살의 유혹에 못이겨 대문을 나선다.

 

 도서관 옆 놀이터에선 토바게닝이 한창이다. 가파른 언덕을 타고 대포알처럼 미끄러져 내려오는 아이들의 즐거운 함성에 영 스트리트를 오가는 자동차의 소음도 묻혀버린다. 언덕 위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수다와 웃음이 푸른 하늘에 눈가루처럼 흩어진다.

 

 높다랗게 솟은 성당의 십자가가 자애롭게 지켜본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사이로 잉글랜드풍 집의 창문이 부러운 얼굴로 곁눈질이다.

 

 한겨울의 축제로 소란스런 로렌스 파크 언덕을 뒤로하고 알렉산더 뮤어 메모리얼 가든으로 들어선다. 
 갑작스런 정적에 흠칫 놀란다. 조용하고 화려한 겨울의 향연이다. 마녀가 지배하는 나니아의 세계로 뛰어들어간 루시처럼 두려움과 호기심에 가득 차서 탐색한다. 


 여기저기서 사자며 여우, 토끼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지난 여름 이 정원에서 사진 찍으며 까르르 웃던 친구들의 수다가 환청처럼 울려온다. 그들이 간 바다 건너 고국이, 또 따뜻한 캐러비안이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울까? 

 

 흰눈을 두텁게 껴입은 소나무와 전나무가 힘차고 당당하다. 짙푸른 잎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쏘아대는 직사광선을  되받아 치며 땀을 흘리고 있다. 


 가을날 뜨거운 색깔로 몸을 사른 단풍나무는 반짝이는 눈을 큰둥치와 잔가지로 조심스레 끌어안고 있다. 색을 허락하지 않는 겨울의 옹고집과 대결하여 안타깝게 부여잡은 흰색으로 햇살을 유혹해서 무지개를 만든다. 

 

 이토록 아름다운 겨울은 용감한 북쪽 나라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눈 속에 숨죽이고 숨어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다가 햇살 찬란하고 하늘빛 푸른 날이면 뛰쳐나와 겨울을 내것으로 만들고야 만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만 골라서 푹푹 빠져본다. 어디선가 커다란 소나무가 머리에 이고 있던 눈을 털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얼굴이 얼얼하고 가슴을 파고드는 찬공기로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나도 이렇게 북쪽나라 사람이 되어 옹골찬 겨울나기가 벌써 스무 해째다. 아직 내 앞에 남아있는 수많은 겨울과 겨루기 위해 가슴을 활짝 편다.


- 2015년 2월 어느 일요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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