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ekeounglee
이혜경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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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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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네들은 내가 처음 사우나실 문을 열었을 때부터 떠들고 있었다. 시더나무 향기 진한 뜨거운 사우나 박스 안에서 그녀들의 리드미컬한 언어가 뱀장어처럼 퍼득였다. 네이티브 스피커들에 대한 열망과 열등감으로 겨우 입 밖에 낸 나의 첫 마디는 “Excuse me!”였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비켰고, 난 미꾸라지처럼 그 틈새를 비집고 올라가 가장 뜨거운 고세 다리를 길게 뻗고 자리를 잡았다. 뜨거운 공기의 충격으로 살짝 얼어있던 팔과 다리가 고드름처럼 느껴졌다. 용광로 안에서 몸을 사르며 행복해했던 샘 맥기(“The Cremation of Sam McGee”의 인물)처럼 흡족하게 뜨거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 마셨다.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그녀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 왔다. 그냥 따끈하게 쉬고 싶을 땐 대화에 끼는 부담감없이 편안히 엿듣기만 해도 되는 편리한 방패– 자타가 공인하는 ‘언어장벽’이다.


 수영복 차림의 여자가 동그란 조약돌 같은 것으로 검고 탄탄한 다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무슨 의식을 행하듯 정성껏 때를 밀듯이 마사지했다. 왠지 너무 문지르면 안될 것만 같아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그녀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피부미용에 얼마나 좋은 지를 끊임없이 설명했다. 중년의 금발이 일층 계단 한구석에 걸터 앉아서 그녀만의 피부 미용 노하우를 피력했다. 희고 매끈한 팔다리가 자작나무 가지를 연상케 했다. 다리를 그냥 문지르는 것보다 크림을 바르고 마사지 하면 피부가 더 매끈해진다면서 바디샾이며 제품명까지 구체적인 정보를 주고 있었다. 건조한 피부 때문에 고민 중이던 나도 진주알 줍듯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풍만한 가슴의 여자가 수건으로 몸을 반쯤 가리고 들어 왔다. 밀가루반죽처럼 희고 커다란 가슴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가슴이 밋밋한 깡마른 여자가 들어와서 둘은 나란히 앉았다. 가슴 큰 그녀를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히도록 달려오너라란 이상화 시인의 "나의 침실로"란 시였다. 그네들도 서로 "Hi!"를 하면서 모두 풍만한 가슴의 여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특히 가슴 큰 여자의 풍만한 몸을 계속 힐끔거리는 작은 가슴의 여자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가슴 큰 여자는 유러피안 액센트로, 밋밋한 가슴의 여자는 베네주엘라 액센트로 대화를 시작했다. 


*작은여자: 가슴확대술(Breast Augmentation Surgery) 어디서 했어요?
*큰여자: 저는 가슴축소수술(Breast Reduction Surgery) 했어요.
*작은여자: (당황하며) 어머 그래요? 
*큰여자: 가슴이 너무 커서 등도 아프고 힘들었어요. 아이 젖먹일 때도 힘들었죠. 아이를 떨어뜨리기도 했어요. 
*작은여자: 그런데 흉터도 없어요.
*큰여자: (유방 아래쪽을 보여주며) 수술이 아주 잘되었어요. 아래쪽에 상처는 아직 있어요. 그래도 유방이 계속 자라서 조만간 한번 더 수술을 해야 해요.
*작은여자: 수술비 많이 들었어요?
*큰여자: 아뇨. 축소술은 무료예요. 의료보험으로 커버돼요. 
*작은여자: (흥분해서) 축소술은 무료군요. 확대하려면 최소한 $7,000은 드는데...  수술하려고 열심히 돈 모으고 있거든요.

 

 다리를 문지르던 여자가 끼어들었다. 그녀의 친구 중 덴탈 하이지니스트(Dental Hygienist)가 있는데 축소술을 했단다. 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큰 가슴으로 환자의 머리를 눌러 문제가 많았다고...


 건강이나 생활에 지장을 주는 수술은 의료보험으로 커버되지만 아름다움을 위한 수술비는 만만치않다. 그 아름다움을 위해 열심히 저축하고, 피부가 벗겨지도록 다리를 문지른다. 


 겨울 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자들은 예뻐지느라고 시간가는 줄 모른다. 편안하고 즐거운 수다 속에서 매시간 예뻐지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도 온몸에 오일을 듬뿍 발랐다. -사우나에서, 2015년 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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