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sj
(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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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던 인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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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사고 직후, 내가 차 사고를 낸 로버트 입장이라면 차 뒤 번호판과 면허증을 보자 하며 사진 찍을 때 오히려 살살 웃으며 부드러운 말로, “한 번 더 찍어, 잘 안 나올 수도 있잖아? 사진 찍는데 돈 들어가니? 세금 내니? 그리고 걱정 마!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고쳐 줄게, 렌트카 해줄게, 어쩌겠어, 미안해, 내가 일부러 그런 것 아니잖아, 걱정 말아”라는 소리를 적어도 다섯 번은 했을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면 고쳐줘야지 별수 있나, 돈 없으면 꾸어서라도 해 주어야만 하는 일, 내가 돈 내는 사람인데 잘못했어도 당당했을 나.


 로버트는 순한 양이 덜미를 잡힌 듯 길가 보도블록에 앉아 미소를 살짝 띠었지만, 땅 쪽으로 눈을 내려 뜨고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돈이 얼마나 나올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을 것이다. 


 남편이 와서 로버트와 악수하며 로버트의 등을 다독다독 “너무 신경 쓰지 마, 차 있으면 다 그런 거잖아”, 나 보고는 “다친 데는 없어? 몸은 괜찮아?”, 괜찮다고 하니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란다. 다 그런 거라면서.


 나는 얼핏 보았다. 남편이 로버트와 악수할 때, 로버트에게 눈을 찡긋 찡긋 하는 것을. 거기에는 ‘여자는 다 그렇잖아, 신경 쓰지 마’, 나는 그 의미를 안다. 그러나 그건 못 본 척 무시하기로 했다, 만에 하나 사태가 역전될까 봐.


 도망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내가 네 차 번호와 면허증을 몇 번씩이나 인증 샷! 너도 봤지? 남의 차를 받아 사고를 낸 너, 꼼짝 말고 내 차 고쳐 놔! 하는 모습을 은근히 암시했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역전 돼 봐야, 3300불. 네 잘못으로 내차 망가뜨렸다고 요샛말로 갑질을 한 나, 로버트의 그 심란했던 장면이 내 눈에 늘 걸려 있어서 나는 고통스럽다. 


 로버트와 눈이 마주칠 때면, 교통사고 나서 찰칵 찰칵 소리 내어 사진 찍던 일이 죄의식으로 다가와 나를 스스로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가 요리한 비후스튜를 그렇게 맛있게 많이 먹은 것은 뭐람? 나도 참 앞뒤가 잘 안 맞는 여자다. 


 사람 볼 줄 몰라, 로버트한테는 안 당하겠다고 내심 ‘나한테 딱 걸려 재수 없지? 할 수 없다. 잽싸게 도망가지 못한 너, 착한 결과다’ 하면서.


 지난번에는 어느 프라자에 차를 파킹해 놨는데, 어느 차가 내 차 운전석 옆 차문과 앞쪽 뒤쪽을 걸쳐 확 받아 긁어 놓았다. 누구 차가 그랬는지? 메모쪽지도 안 보이고 차 어디에 뭐라고 써 놓은 것도 없고, 알 수가 있나? 열 받아 뚜껑이 확 열렸다.


 두리번거리며 한 30여분 기다렸지만 내 차를 받고 도망간 차는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차 긁힌 것을 보니 빨간색이었다. 빨간색 차 앞 쪽으로 내 차 짙은 쥐색이 묻어 있을 것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보기만 해봐라. 그때는.  


 속으로 내 차 받고 도망간 인간에게 육두문자를 엄청 날렸다. 그때 변 밟은 심정으로 바디샵에 내 돈 천불을 갖다 바치고 고쳤다,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차 사고 내서 3300불 정도는 다 잊어버렸다는 듯, 로버트는 우리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며 항상 웃으면서 우리보고 아무 때나 오라고 한다. 한 시간 전에만 전화하고 오면 맛있는 것 해준다고, 차 고쳐주고 때때로 음식 대접까지 해주는 로버트는 무슨 마음일까? 전생에 무엇이었기에.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오는 걸까? 이 무슨 인연인가.


“Hi! Mr judge!, Hi! Helen! 언제든지 놀러 와!” 


 물론 우리가 아들처럼 생각하고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것을 로버트는 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역지사지로 도리질을 하는 내 머리는 스스로 계속 질질거리며 밀리는 기분이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마침표를 찍자. 찍었다 하면 나도 칼같이 마침표를 찍는 성격이다. 


 남편은 심심하면 와인 한 병 가지고 로버트네 가서 놀다 온다. 남편이 나보다 더 친해진 것을 보니 야릇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낸 차 사고로 남편에게는 아들 같은 친구가 생기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느 날은 닭을 아주 푹 고듯이 해서 닭요리를 했다는데 남편은 아주 맛있게 많이도 먹었다고 한다. ‘남자가 어쩜 요리도 맛깔스럽게 잘해! 한국식 비스므리 하게…’


 우리의 핸드폰이 뭐가 잘 안 되던지, 모르면 무조건 로버트한테로 간다. 로버트는 핸드폰의 안 되는 것 기능부터 설명하며, 이럴 땐 이렇게 하라고 자상하게 일러준다. TV의 뭐가 잘 안되면 우리 집으로 로버트를 부른다. 우리에겐 로버트가 착한 자식처럼 딱 안성맞춤이다. 


내가 찾던 인연인가.  


 로버트는 요즈음 외모가 상큼하다. 머리도 짧게 깎고, 수염도 싹 밀어서 아주 핸썸 해졌다. 늘 깨끗이 빨래한 옷으로 입고, 집도 정리정돈을 아주 깔끔하게 해 놓고 산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큐바 다녀오면서, 큐바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 있는 작은 지갑과 큐바 시가 한 개를 선물로 준다. 돈으로 치면 몇 푼 되나? 


선물을 만져 보며 그 마음이 갸륵하여 나는 또 감동 받는다. 걸 후렌드 라는 브라질 여자와 결혼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어 가는지. 잘 되어 가니? 자꾸만 물어 보기도 너무 참견하는 것 같고, 명목을 만들어라. 결혼식을 한다면 앞장서서 도와줄 것이다. 


 내가 수필집을 냈다고 책 표지를 사진 찍어 전화 메시지로 보냈다. 너를 만난 인연을 글로 썼다 하니, 환하게 웃는 얼굴로 축하한다며 자기도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 영어로 번역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말로 쓴 그 글들을 못 읽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201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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