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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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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장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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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달지도 않은 배토롬한 맛의 집장! 


집장을 아시나요? 고추장도 아니고 된장도 아닌, 청국장도 아니고 쌈장도 아닌, 집장이라는 것이 있어 우리 고향에선 일명 밥도둑이라 불린다. 

 

 

 


캐나다로 이민 와서 한 5년쯤 되었나? 토론토에 정착하고 xx몰 안의 커피샵을 운영했었다. 어느 날 가게에 세련되게 차려 입은 40대 중반의 아시안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왔다. 대번에 한국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명품핸드백 루이비통에 폴로 티셔츠, 화려한 장식의 청바지… “한국 분이세요?” 하며 반갑게 물었더니, 그분은 “네, 캐나다에는 언제 오셨어요?” 하며 대답과 동시에 미소 띤 얼굴로 되물어왔다. 


“한 5년 돼가요”하니까 “요즈음 비즈니스는 어떠세요?”하며 또 묻는다. 그 분의 음성과 억양이 꼭 내 고향 분 같아서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묻는 순간 그 여자 분도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똑같이 물으면서 우리는 서로 생각이 같았다는 듯 사뭇 깔깔댔다. 


 왜? 고향을 묻는가? 고향! 고향이 뭐길래.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왜 이렇게 약해지는 걸까, 마음이 확 끌리는 그 무엇이 있다. 고향이란 내가 태어나 자라난 곳을 말함인데, 고향사람이라고 하면 생판 남이라도 동기간 같은 어떤 진한 피 같은 것을 느끼게 됨은 무엇 때문일까. 


 같은 하늘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물줄기에서 나오는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음식들을 해먹으며, 같은 소재를 가지고 같은 이야기들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함께 가슴 아파하고, 좋은 일에는 함께 기뻐해주는 그래서 고향사람이 아니겠나. 


 이역만리 캐나다에 와서 충남 보령 사람을 만나다니 동기간을 만난 양 가슴이 설레었다. 서로가 이민생활의 애환들을 하소연도 하고, 별의별 얘기를 다 하다가 어느새 우리는 장항선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의 음식얘기에 다다랐다.  


호박지(늙은 호박으로 담는 호박김치), 나문재나물, 남포고구마, 꼴뚜기젓, 너무 맛이 있어 혀가 놀랜다는 곤쟁이젓 등, 역시 먹는 얘기로 꽃을 피운다.  


그분은 “우리 보령의 별미는 집장이잖아요? 늦가을이면 우리 동네 집집마다 배토롬한 집장에 밥 비벼 먹던 그 맛을 아시죠? 꼭 다시 먹어보고 싶어요.”하며 내가 긴 세월 동안 잊고 있던 추억의 집장 맛을 일깨워 주었다.


 배토롬하다는 말은 사전에는 없지만, 고향 분들은 집장 맛을 표현할 때면 으레 배토롬하다는 말을 쓴다. 내 고향에서만 쓰는 독특한 사투리이다. 


 “맞아요. 저도 많이 먹었었어요. 배토롬한 집장 맛이 기막히지요. 여름에 먹던데요, 우리 할머니께서는 메주가루에다 보릿가루, 콩가루 등에 찰밥을 버무려, 전날 떠 놓았던 정화수를 붓고 걸쭉하게 반죽하여, 썬 무지, 고추 등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하여 항아리에 담으시던데, 노골 노골하며 달짝지근하고, 심심한 듯 감칠맛 도는 집장을 담그셨지요.” 나는 추억의 집장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갔다.


 “두엄 속에 넣어두는 기간이 있던데, 8일인가 9일인가? 저는 잘 모르지만 너무 빨리 꺼내면 설어서 제 맛이 안 나고, 기간이 지나면 재 넘어 갔다 하여 시어져서 못 먹는다고 하데요. 중요한 건 꺼내는 때를 꼭 맞추어야 폭 익어서, 잘 발효되고 알맞게 숙성되어 배토롬한 맛의 집장이 된다고 하데요. 영양도 만점이래요. 정말 먹고 싶네요.” 나는 말하면서도 예전에 집장을 먹던 맛이 입 속에서 달갑게 맴돌고 있었다.


 농사 짓는데 거름(비료)으로 쓰기 위해 여름에 풀들을 잔뜩 베어다가 쌓아서 썩히는 두엄이 있다. 풀들이 썩는 두엄 속의 열기를 이용해 파묻어 두었던 집장 항아리를 두엄을 헤치고 꺼내는 날은 이웃들과도 정을 나누는 작은 잔칫날이다. 


할머니는 그 항아리에서 집장을 퍼서 다른 항아리들에 옮겨 담고, 그 중에서도 조금 큰 항아리는 큰집(우리 집)것, 좀 작은 항아리는 작은집 것이라 해 놓고, 가까운 친척들과 이웃들에게도 한 사발씩 나누어 준다. 내 고향의 풍습이다.


항아리 속에 붙어 남아있는 집장을 모두 긁어내는 일은 우리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할머니는 항아리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집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큰 어미야, 저쪽도, 요쪽도” 하시면서 나무주걱으로 싹싹 훑게 하신다. 


 집장은 할머니가 평생을 정성으로 담던 빈틈없는 정확함이 들어있음을 엿보았다. 요즈음 흔히 있는 말랑 말랑한 플라스틱으로 된 알뜰주걱이 그때 있었더라면 항아리 속을 긁는데 얼마나 좋았을까. 고무장갑이나 일회용 플라스틱 장갑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느새 작은 어머니는 밥 한 사발을 가져와 항아리 속에 부어 밥으로 집장을 닦아내다시피 주걱으로 비벼내면,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캐나다 땅에 나와 산지 어언 삼십여 년, 환갑을 맞이하는 이 나이에 나는 나의 세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또 전수시켰던가? 어렸을 때 보았던 것들이 나이가 들어가도 이렇게 눈 속에 각인이 되어 지워지지 않거늘, 자녀들에게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닫는다.


외국 땅에서의 뿌리 교육, 무엇을 전수시켜야 할 것인가, 캐나다는 다문화로 이루어진 사회, 복합문화 속에서 아차 하면 남들보다 뒤떨어지게 된다. 이민 1세들이야 몸으로 고생하며 산다 할지라도, 2세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포로로 붙잡혀 오지 않았는데 노예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가 선택하여 온 캐나다 땅, 내 자녀들이 우뚝 서야 한다. 온갖 음란물과 마약, 총기가 노출되어 있는 북미, 아차 하면 이민 와서 고생한 보람이 물거품이 된다. 한 순간도 자녀들에 대한 마음을 놓으면 안 될 것이다. 


외국 땅에서 사는 한인 2세, 내 자녀들은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장벽을 넘어야 하고, 사춘기를 겪으며 자각의 고통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그들을 감싸 안으며, 마음 문을 열고 소통해야 한다. 


올바른 정신으로 똑바로 살도록 해야 한다는 교육이 이제는 집장보다 더 소중하다는 말로 풀이된다. 


 머리카락이 음식에 빠진다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긴 흰색 광목 앞치마를 친 두 며느리에게 집장은 이렇게 담아야 한다고 자상하게 말씀하시며, 보령의 별미인 집장을 전수시키려고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


배토롬한 맛의 집장은 충남 보령의 꼿꼿한 자존심이며, 보령에서 만이 먹어 볼 수 있는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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