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sj
(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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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던 인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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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는 자그마한 키에 길지는 않지만 검은 수염이 덥수룩한 쿠바인이다.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려 활짝 웃는 모습이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이름 모를 긍정과 평안함을 보았다.


 그와의 만남은 그의 차가 내 차의 오른쪽 뒷바퀴 부분을 받음으로서 시작 되었다. 토론토에 있는 * * 한국식품점을 다녀오다가 큰 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동네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속도를 줄이는데, 옆길에서 그의 차가 급히 나오려다 부딪친 차사고 이다.


 그는 자기의 잘못을 즉시 인정했고, 보험처리는 원치 않는다며 현금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보험료가 올라가면 5년 동안 내리지 않기 때문이리라. 결국 9일간에 걸쳐 내 차를 고쳤고, 렌트카 대금과 메카닉에서 나온 금액을 합하니 캐나다 돈 3천300불이 나왔다. 남편과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로버트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했다. 얼마나 속이 쓰렸겠나. 이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로 위로를 할 것인가. 내가 잘못을 안 했으니 미안하다고는 할 수 없고, 참 안됐다는 마음에 가슴까지 아려왔다.


 로버트는 41세로써 쿠바에서 이혼하고 현재 14세 된 아들과 캐나다에 온지 5년이 되었다고 했으며, 음식에 넣는 어떤 케미칼(화학 물질)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차사고가 난 그 즈음에 쿠바에서 3개월간 방문으로 아버지가 자기 집에 와있다고 했다.


 요즈음은 사귀는 사람이 생겼는데 브라질 여자로 자기보다 두 살 아래이며, 그녀도 이혼했고 4살 된 남자아이가 있다면서, 직업이 준 간호원 인데, 정식 간호원이 되려고 한다며 흐뭇해 했다. 결혼은 내년쯤으로 예상한다고 했고, 캐나다에서 정식으로 간호원이 되면 수입이 좋고, 은퇴 후 연금이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며칠 전에 본 영화 ‘Fate of the Furious’(분노의 질주) 8편의 첫 장면들은 쿠바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쿠바에서 온 로버트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쿠바라 하면 재즈의 나라로 노래 ‘관타나메라’가 들리는 듯, 옛날 차들로 가득하고 거리에는 가난해도 정열로 사는 쿠바인들, 오랫동안 공산국가로 살아와서인지 열심히 살지도 않지만 욕심도 없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낙천적이고 항상 웃으며 춤과 노래를 즐기는 쿠바인들, 로버트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겠지. 


 로버트는 어떻게 쿠바에서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 토론토로 와서 살게 되었는지? 그 연유는 모르겠다. 다만 작은 회사에 다니면서 아파트에 살고 있고, 아들 하나 뒷바라지에 온 힘을 쏟으며 산다는 것 외에는.


 내 상상으론, 넉넉지 않은 경제에 차 사고를 내어 그에게는 거금 3천300불이란 돈을 썼으니, 자기가 잘못은 했지만 얼마나 속상한 일이겠나,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서두르지만 않았더라도, 그 차(헬렌 차)가 빨리만 가 주었어도, 그 사건이 안 일어났을텐데, 좋은 일은 아니니 한국여자라는 헬렌(홍성자)을 어쨌든 다시는 보기도 싫을 것이었다.


 로버트를 향한 마음이 간절했다. 비싼 수업료 내고 배운 교통상식인 평생 서두르지 말기를, 이런 일이 너에게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이번 사고를 나쁘게 기억하지 않기를, 하여 차사고 때문에 나간 그 큰 돈, 그 이상으로 너에게 보상해 줄 것임을.


 나이가 자식뻘이 되니 자식 같은, 혹은 동기간 같은 느낌이 왈칵 다가왔다. 로버트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무슨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 가슴 밑바닥에 자리 잡고 앉은 지는 차 사고를 낸 그 순간부터였다. 그를 현실적으로 도울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꽉 차면서, 여러 날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어 안부 전화부터 했다.


 “로버트 잘 있었니? 나 헬렌이야, 기억하니? 한 달 전에 너 차사고 낸 일? 코리언여자....” 하니까 얼른 알아듣고 반가운 목소리로 “헬렌 뉴욕 잘 다녀왔어요?”하고 묻는 게 아닌가? 좀 시끄러운 곳에서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의 음성은 밝았으며 존중하는 말임을 감지했다. 


 메카닉으로 차를 찾으러 가서 기다릴 때, 잠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웃을 수는 없고, 그냥 서 있기가 멋쩍고 할 말이 없어서, 나 이 차 가지고 손주들 보러 뉴욕 다녀올 거라고... 그랬더니, 그걸 기억하고 안부를 묻지 않는가. 


 “응 잘 갔다 왔어, 너 지금 집에 있니?” 


 “아니요. 밖에 있어요” 


 “언제 집에 들어가니?” 


 “한 시간 후 쯤요” 


 뜻하지 않게 반갑게 대해주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로버트에게 헬렌은 반가운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 전화를 해보았는데, 그의 긍정적인 목소리가 나로 하여금 안도의 숨을 쉬게 했다.


 그때가 밤 9시 반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엇이라도 사다주고 싶은데, 받을까? 안 받을까? 어떻게 나올까? 성격이 급한 나는 내친김에 일단 결정했다. 안 받아도 할 수는 없지, 아무튼 시도해보자. 시도도 안 해 보고 나 혼자만의 상상으로 결론을 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만일에 안 받는다 해도 나는 한 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도 섰다.


 슈퍼마켓 롱고스가 문 닫을까봐 서둘렀다. 빵 베이글과 다른 빵들과 크림 치즈 등을 샀다. 밤 10시 반쯤 그의 아파트 앞에 와서 다시 전화했다.


 “로버트, 집에 왔니?” 


 “네, 왔어요” 


 “그럼 네 아파트 로비로 나와라. 내가 와 있다” 그가 반바지 티셔츠 차림에 조리를 끌고 나왔는데 어리둥절했다. 나는 웃으며 “베이글이야, 먹어 봐” 하니까 깜짝 놀라며 받아들고는 활짝 웃는 얼굴로 “땡큐! 땡큐!”를 연발하였다. 


 걸어서 5분 거리 되는 내 집에 오니 전화 메시지가 와있다. “아들하고 축구 하고 와서 배가 고팠는데, 아들하고 나하고 우리 아버지하고 치스 발라 베이글 먹고 있어요, 우리는 내일 아침으로 이 베이글 또 먹을 거예요, 진심으로 고마워요” 


 그의 마음은 환하게 열려 있었다. 한번 시도해 봤는데 적중했다. 1차는 성공이다. 역지사지로 나 같으면 로버트처럼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감사해요, 그렇지만 사양 하겠어요’ 속으론 ‘내 잘못으로 금쪽같은 내 돈 3천300불 들여서 차 고쳐주었으면 됐지, 내 아무리 어려워도 당신한테 빵 얻어먹게 됐어? 날 동정하는 거야? 사람 염장 지르지 말고 어서 조심해서 가세요. 뭐 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여기가 누구네 라고 감히 오나요? 다시는 오지 마세요.’ 라며 똑! 잘랐을 것이다. 


 그러한 나인데, 생각하면 할수록 로버트에게 애틋한 마음이 더 간다. 로버트라고 자존심이 없겠나? 인지상정인데, 교통사고 났을 때부터 해결하기까지 렌트카를 연장 하러 두 번이나 같이 갔다. 메카닉에서 차를 다 고치지 못했다고 두 번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메카닉에서 와보라 하여 또 같이 가봐야 할 때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자기 차로 내 차를 받아 사고 낸 미안함으로 그랬을까? 


 나는 로버트를 늘 생각하고 있었다. 빵을 준 후 3주정도가 되었을 때, 다시 전화하니 집에 있다고 했다. 불이 나게 수퍼마켓 Food basics 으로 가서 과일들을 샀다. 허니듀, 캔달로프, 토마토, 블루베리, 사과, 바나나 등.... 다시 로버트에게 전화했다. 


 “헬렌 왔어, 나와 봐” 그가 아파트 로비로 금방 나왔다. 플라스틱 봉지에든 과일들을 주니 땡큐! 하면서 또 환한 그 웃음에 우리 언제 커피타임 갖자고 한다. 나는 “너 시간 있을 때 전화 해, 어쩌면 아무 때나 오케이!” 


 그가 커피를 사겠다면 사게 해야 한다. 그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보다도 인정이 더 많은 남편한테 이야기를 하니 잘했다고 했다. 남편도 함께 만날 것이다. 그래야 떳떳한 인연이 된다. 


 내 마음 속에 밝은 해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전화했을 때 반갑게 대해주는 그의 마음가짐, 내 욕심 나의 바램 이었지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70을 눈앞에 두는 한국여자로서 인생 참 헛살았구나, 자존심을 내려놓기는커녕 나이 들수록 그 알량한 자존심을 더 꼿꼿이 세우고 살고 있으니, 인정만 있으면 무얼 하나? 인정은 있는데 도움이나 동정 받는 건 싫다, 그 무슨 언어도단이며 위선인가. 


 엄격히 말해서 나는 위선자다. 이 위선을 벗어 버려야 한다. 쓸데없는 자존심 내려놓는 일부터 그에게서 배울 점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못했고 안했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 그에게서 인생의 한 수를 또 배운다. 배우면서 살고, 살면서 배운다더니 죽을 때까지 배울 것이다. 로버트는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한 단계 위인 사람이다. 그 인간성, 그 인격이 부럽기까지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런 인연을 찾고 있었다. 인연이란 어떤 것일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스치고 지나갔나, 스쳐 지나간 인연은 무엇이고, 스치다 말고 붙잡든가 붙잡힌 인연은 또 무엇인가. 


 내 생각에는 인연이란 우연히 오는 것을 스쳐지나가게 내버려 두는 것은 인연이 아니라고 본다. 적극적으로 찾아 손을 내밀어 잡아야만 인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연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일,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선물 주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받는 사람의 태도이다. 어떤 사람은 “어머나, 저 이거 필요한 거예요. 사려고 했는데 어찌 어찌하다 못 샀어요, 너무 좋아요, 땡큐!” 하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존심이 강한 어느 사람은 무엇을 주면 흔쾌히 받지 않고 부담감부터 앞세운다. 무엇 때문에? 왜? 나에게 이런 것을 주느냐며 이유를 묻는다. 선물에 이유라니, 마음이 가서 주는데... 무엇을 준다는 일이 그래서 어렵다. 


 선물은 선물이다. 선물은 그냥 땡큐! 하고 받으면 된다. 기회가 안 오면 할 수 없고, 기회가 오면 선물 받은 분한테 다시 좋은 걸로 선물하면 될 것이 아닌가. 


 로버트가 땡큐! 땡큐! 하며 마음의 문을 열고, 내 마음을 어린 아이처럼 순진하게 받아 주어서 정말 고맙다. 눈물나게 고맙다. 로버트처럼 순진하게 사는 삶이 온 우주가 되는 것을 본다. 흥미진진할 우리들의 귀한 인연은 이제 시작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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