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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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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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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고 보니 충남 고향 분이시군요, 세상에. ”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편의점을 한다는 그녀는 가만히 있어도 왠지 피곤하다고 한다. 캐나다의 긴 겨울을 보내며 햇빛을 제대로 쏘일 수 없었으니 피곤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햇빛은 에너지의 근원이니까. 


 더군다나 하루종일 가게의 모터 소음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산소도 부족하고 오죽 피곤하랴. 우리 가게가 노스욕에 위치해 있는 몰 안에 있어서 그런지 한국 분들을 가끔 대하게 된다. 


 날씨 이야기로 빙빙 돌다가 으레 첫 인사가 “캐나다에 언제 오셨어요?”로 시작해서 “고향이 어디세요?”하고 서로 똑같이 물으면서 웃게도 된다. 


 “충남 보령이예요” 캐나다 땅에서 보령 사람 만나기가 쉬운 일인가. 동기간을 만난 양 왈칵 가슴으로 달려드는 뜨거움, 그 반가움을 어디에 비기랴.


 캐나다인 고객들이 “하이! 헬렌!”하며 인사를 한다. “하이고 뭐고 간에 나 고향사람 만났다”고 손사래를 치니, “그러냐! 너희 고향사람 만났으니 실컷 너희나라 말해 보아라” 하며 다정한 눈빛들을 보낸다. 


 우리는 충남 보령의 들바람에 몸을 싣고, 옛날 고향 이야기에 신바람이 난다. 이역만리 캐나다에 와서 고향사람을 만나다니 마음 문이 확 열리며, 가슴이 울렁울렁 그저 무엇이라도 막 주고 싶고, 고향의 논배미를 달리며 나를 어쩔 수 없게 만든다. 어떤 말이라도 속에 있는 보따리를 다 끌러 놓고 싶다.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 사이로 뛰어다니며 숨바꼭질도 하고, 통통하고 영글어 보이는 보리 이삭을 잘라 손바닥에 비벼서 후후 털을 불어 버리고 씹으면 껌처럼 진득진득해졌었지요?”


 “맞아요.” 


 “깜부기도 잘라서 얼굴이나 팔뚝에 시커멓게 문지르고 다녔지요?”


 “그랬지요.”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보릿대를 쭈욱 뽑아 피리를 만들어 불어 보기도 하고, 씹으면 달짝지근했다. 흙냄새 봄 향기 속에 쑥이며 냉이 뜯으러 다니고.


 “보령의 별미는 호박지이지요? 늦가을 늙은 호박으로 호박지를 담갔다가 추운 겨울날 뚝배기에 보글보글 지져 먹으면 오독오독하니 얼마나 맛있었던가요. 두엄속의 열기로 잘 익힌 집장에 밥 비벼 먹던 그 기막힌 맛을 우리가 죽기 전에 다시 먹어 볼 수 있을까요. 신사 절 올라갈 때 아름답던 벚꽃들도 이제는 노목이 되었겠지요, 성주산의 성주사는 아직도 있나요? 대천의 해수욕장도 많이 변해서 유흥가처럼 되었답니다”


 우리는 두 손을 붙잡고 추억의 보령군 지도 위를 걷고 있었다. 


 고향이 뭐길래. 고향? 고향이라는 두 글자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가? 고향이라는 말만 하면 잔잔하던 가슴이 왜 이렇게 동 동 동 뛰는 걸까?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같은 지붕아래,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같이 뛰어놀던 곳, 같은 하늘아래 같은 햇볕을 쏘이며,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물줄기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같은 땅에서 나오는 각종 곡식들과 채소, 과일들을 먹고, 같은 희망으로 같은 말을 하고 살아서 그런지, 동기간 같은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겪어 보았을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말투뿐만 아니라 억양은 물론 음성, 즉 목소리, 말의 소리만 들어도 고향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향사람, 고향사람 하는 것이 아닌가.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무조건 반갑고, 무조건 그립고, 무조건 가슴이 설렌다. 고향에 관련된 노래나 가요가 또한 얼마나 많은가? 


 나이 들어 고향을 떠나 이리 저리 이사를 수 없이 하고, 캐나다까지 이민 와서 살고 있어도 어릴 적 살던 고향을 못 잊어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본능이 아닐까? 


 여우도 죽을 때는 자기가 태어난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한다. 하물며 사람인 우리들이야 말해 무엇 하리. 참 고마운 일은 고향에서 태어나 평생을 고향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다.


 내 친척 중에는 나보다 항렬이 아래인데, 그 땅에서 태어나 평생을 초등학교 소사로 일하면서 환갑을 넘긴 조카가 있다.

요즈음은 호적초본이나 호적등본을 떼려면 서울에서나 부산에서도 얼마든지 뗄 수 있지만, 한 15여 년 전만 해도 고향 면사무소에 가서 본인이 직접 떼어야 했다. 그때마다 고향을 지키는 그 조카한테 부탁을 하여 면사무소에 가서 내 호적초본 좀 떼어 우편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 군말 한마디 없이 해주면서 안부까지 묻는다.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느냐고.


 그 조카는 고향 토박이 보증수표가 되어서 면사무소에도 다 아는 사람들이라 본인이 아니어도 떼어 주었다. 그렇다면 나만 그랬겠는가? 경주최씨 문중 사람들은 다 그를 통하여 그런 일을 했을 것이다.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그냥 좋게 말만하면 안 될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지만, 한국에 가게 되면 고향을 찾아가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척분들을 만나 따뜻한 밥이라도 사야겠다. 


 캐나다 토론토에도 충청향우회가 있어 다음달 8월 초에 야유회로 모인다 하니 어찌 아니 즐겁겠는가? 


 이건 뭐여? 뭐여? 하면서.


 한국 미나리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향의 봄바람이 다시금 가슴속에 폭풍처럼 불어 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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