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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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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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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님, 저 선배님 집에 금방 갈게요”


 아니 S가 갑자기 우리 집에 올 일이 생겼나? 반갑기는 한데 전화를 딱 끊어버린다. 왜 오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고 싶은데, 다시 전화하니 받지 않는다. 벌써 나갔나 보다. S는 핸드폰이 없다. 갑갑해도 궁금한 채 기다리는 수밖에... S가 우리 집에 오려면 운전하여 약 20 분정도 걸린다. 넉넉잡고 30 분이면 우리 집에 오겠지,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는다. 어떻게 된 건가? 오다가 무슨 일은 없겠지? 걱정이 된다. 금방 온다면? 금방이란 얼마의 시간을 말하는 것인가? 


 금방이란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30분일수도 있고, 어느 사람에게는 2시간 일수도 있고, 어느 사람의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일주일이나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곧 온다, 곧 이란 얼마의 시간을 말하는 것인가? 이따 갈게요. 이따 란? 얼마나 되는 시간인가? 


 저기 조금 가면 있어요. 저기란? 얼마나 되는 길이 인가? 조금은 얼마만큼의 길이 인가? 이런 말들은 사람마다 각각 생각과 기준이 다르다. 말로는 가벼운 뜻일지 모르나 시간이라는 의미가 숨어있으니 진중하고도 무거운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한국말은 참 애매하다. 


 몇 년 전 독일에 들렸을 때, 안내하는 분이 말하기를 독일에서는 분명한 시간을 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분 후에 온다. 1시간 후에 온다. 2시간 후에 간다. 정확한 시간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옳지 않은가? 이따가 온다. 이따 라니? 이따가 얼마의 시간을 말함인가? 


 기다리는 시간은 내 시간도 아니고 네 시간도 아니고 어쩌라는 시간인가? 아까운 시간이 흐른다. 어정쩡한 시간이다. 무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다. 몇 분인지? 몇 시간인지? 모르며 기다리는 시간은 책을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좌불안석이다.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한 채 새로운 미용실엘 가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을 하고 오는 건데 그냥 온 것이 나의 큰 실수였다. 미용사 보고 내 차례가 언제쯤 될 것인가? 물어보니 “잠깐이면 돼요”, 잠깐이란 매우 짧은 동안을 말함인데, 몇 분 후란 말인가? 대략 30분이면 30분, 1시간이면 1시간, 대강이라도 말해주면 좋을 텐데, 잠깐이라니, 기다리면서 자꾸만 채근하기도 미안하고, 1시간을 넘기다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냥 갈까, 다른 미용실엘 가도 예약을 안 하고 가게 되니 또 기다리게 되려나? 진퇴양난이었다.


 “잠깐이면 된다면서요, 잠깐이 얼마나 되는 시간입니까?” 하고 다시 물어보고 싶었지만 따지는 것 같고, 그 쪽에서 만일 그까짓 1시간 기다리시면서 뭘 그러세요? 보통 예약 안하고 오시면 2시간은 보통이예요, 한다면 생전 미용실에도 안 가본 사람처럼 내 꼴이 어떻게 되겠나? 2시간을 기다린다? 성질 급한 나는 신문을 보고 주간지를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어딜 나갔다 오면 또 순서가 뒤로 밀릴 테니까 그럴 수도 없고, 시간은 도대체 안 간다. 


 내가 바라는 바 있다면, 미용실측에서 솔직하게 대략의 시간을 말해주고 급하시면 다른 미용실로 가보라고 말해주면 좋지 않겠나?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보지만 사람은 다 각각 다르니까 어쩌겠나. 핸드폰에 사진과 동영상들을 만지작거리며 용량이 자주 초과된다 하니 이참에 지울 것은 지우면서, 미용실 의자를 쳐다봐도 이 사람 끝나면 저 사람, 저 사람 끝나면 이사람, 내 머리는 언제 하나? 그 빨리도 가는 시간이 미용실에서는 참 안 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세미 짜던 뜨개질거리라도 가져오든가, 책이라도 가져 올걸, 맨날 핸드백에 책 한권은 가지고 다녔는데, 오늘따라 왜 책은 빼 놓고 안 가져 왔는지, 꼭 그렇게 되는 걸 나도 나를 모르겠다. 


 애매한 우리말 때문에 이렇게 막연한 시간을 보내다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1시간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라든가. 여섯 분의 머리를 해야 되니 넉넉히 2시간은 걸릴 것 같아요, 라고 말해 주면 다른 미용실엘 가든가 2시간 정도를 알고 기다리든가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내 생각인데, 아마도 미용실에서 일하는 분들의 입장에서 두 시간 정도는 걸리겠는데요, 라고 말해주면 분명 다른 데로 갈 것이니 붙잡아 두려고 그러는 건지? 그렇다면 내가 또 오겠나? 아무리 내 머리를 예쁘게 해 놓아도 내 성격상 다시는 안 올 것이다. 


 속이 터지기 전에 얼굴을 두껍게 해가지고 물어보았다. 


 “제 머리 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나요?”


 “금방해요. 우리가 빨리 빨리 하거든요” 


 “아니 미용사님 보고 천천히 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제 머리를 하려면 시간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느냐구요?” 


 “곧 해 드릴게요, 저분만 끝나면 돼요” 내가 원하는 답이 안 나올걸 알면서 물어보기는 왜 물어 보나. 물어보는 내가 바보지. 


 곧, 금방이란 말이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한다. 이런 애매한 한국말의 문화 속에서 우린 때때로 얼마나 힘들고 애매하게 살아왔나. 


 예스, 노가 분명한 미국인을 비롯하여 백인들의 말에서는 냉정함이 포함되어 있다지만, 애매한 표현속의 한국말이 정이 많은 말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전자냐? 후자냐? 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다. 확실해야지 무슨 말인가.


 한 오십여 년 전의 일이다. 시골길을 가다가 주소를 가지고 어디 어디를 찾는다고 그 근방의 동네사람한테 물어보면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돼요” 한다. 조금이라니 200 미터인지? 500 미터인지? 몇 킬로미터쯤 되는지?

 

당최 알 수가 있나? 가도 가도 그곳이 나오지를 않는다. 이렇게 먼 길을 조금이라니, 조금이란 말만 믿고 한참을 가다보니 그 분이 말할 때는 턱으로 저쪽을 가리키며 가까운 느낌으로 말했는데, 내가 듣기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들었나? 그 분이 길을 일러줄 때 가깝다는 느낌으로 말을 했나? 참 돌아 갈수도 없고 조금이라는데, 인가는 안 나오고, 해는 저물어 가는데... 누가 문제인가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말이 문제인가? 근본적으로 우리 한국의 언어문화가 문제인 것 같다.


 한국말로 표현할 때 아름다운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가, 일각(15분) 꽃구름, 미리내, 물보라, 바람결, 바람꽃, 나비잠, 갈매빛... 등 천 여개의 단어도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에 이렇게 애매한 말들도 많다. 알아서 하세요. 적당히 하세요. 아침에 전화 드릴게요. 아침이라면 해뜨기 시작부터 해가 떠있는 동안인데, 몇 시에 전화를 해준단 말인가? 오전 몇 시라고 말해야 되지 않는가? 예를 들면 오전 8시에, 또는 오전 9시에, 라든가.


 알아서 하세요, 알아서? 엄청 애매한 말이다. 가능하면 정확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부터 가능한 한 정확한 말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엔 마음 상하고 말썽이 생기게 됨을 우리는 종종 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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